[취재석] '눈 가리고 아웅' 공직자윤리법, 제발 좀 바꾸자
입력: 2021.03.29 05:00 / 수정: 2021.03.29 05:00
여야가 LH사태 계기로 공직자 부동산 투기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국회의원 재산공개 제도 개선을 담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2일 민주당 제2차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TF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가운데). /남윤호 기자
여야가 LH사태 계기로 공직자 부동산 투기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국회의원 재산공개 제도 개선을 담은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2일 민주당 제2차 공직자 투기·부패근절 대책TF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가운데). /남윤호 기자

'공직자 투기 근절' 외치려면 투명한 재산공개가 첫걸음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재산은 많을수록 좋다.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많은 것처럼 마냥 부풀리고 싶다. 그런데 오직 한 곳, 정치권에선 반대다. '청렴함'을 공직자의 미덕으로 여겨온 탓인지 최대한 재산을 숨기려고만 하는 이상한 곳이다.

지난 25일 올해 '국회의원 재산 변동사항 신고내역'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국회의원 298명 중 247명(82.9%)의 재산이 1년 전보다 늘었다. 1억 원 이상 재산이 늘어난 의원은 168명(56.4%)이었다.

그런데 이조차도 재산 증식 규모가 상당히 축소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상 국회의원은 재산신고할 때 '공시지가' 또는 '실거래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시지가로만 부동산 가격을 신고할 수 있었는데 2018년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바뀌었다. 그런데 '실거래가'의 특정 시점이 정해져 있지 않아 공직자 재산신고 때 매입 당시 취득가격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재산내역은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이라 정부의 공시가 현실화 기조에 따른 공시가격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19.08%로 14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바 있다.

국회 공보에 따르면 박병석 국회의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반포아파트(196.80㎡)를 소유하고 있다. 가액은 39억6100만 원이다. 이는 지난해 1월 1일 기준 공시가격이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실거래가는 50억 원대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아파트를 신고했는데 지난해 재산신고 때처럼 또 2005년 매입 당시 가격인 6억7000만 원으로 기재했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최근 12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박덕흠 무소속 의원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동 웨스트윙 건물 203.12㎡ 중 101.56㎡를 소유하고 있는데 가액은 26억 원이지만 해당 아파트 호가는 40~50억 원대다.

지난해 6월 4일 21대 국회의원 부동산 재산 분석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주거개혁운동본부 본부장(왼쪽)과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 /이동률 기자
지난해 6월 4일 '21대 국회의원 부동산 재산 분석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주거개혁운동본부 본부장(왼쪽)과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 /이동률 기자

시민단체는 이미 줄기차게 정치권에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에도 "실거래가의 40~60%에 불과한 액수를 써내는 사실상의 재산 축소 신고"라며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현실화를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이후 "이번 사건을 공직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는 계기로 삼겠다. 국민 눈높이에 모자람이 없도록 부패근절 입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장 공직자 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것처럼 말했다. 여야는 국회의원 전원의 부동산 전수조사에도 합의했다. 이달에만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16건이 발의됐다. 이 중 9건이 위원장 대안 법안으로 묶여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부동산 관련 공직유관단체 직원을 재산등록의무자로 추가하고, 공직자 본인과 이해관계자가 부동산을 새로 취득하는 것을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나머지 7건 중에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자산을 신고하자는 법안,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 주식 직무관련성 심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자는 법안, 외국 재산 신고 의무화 법안 등이 있다. 부동산 가액 산정방법을 '공시지가 또는 실거래가격'에서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 중 높은 금액'으로 바꾸자는 법안도 나왔다.

다만 시민단체가 요구해온 '최근 실거래가격'으로 신고 기준을 재정비하거나 재산 취득 관련 세부 사항(취득 시점, 상속·증여 여부, 소득원 등)을 공개하자는 개정안은 아직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공시지가와 실거래가를 함께 등록하자는 법안도 내놨었지만 무산됐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 집주소까지 공개됐지만 최근 들어 공개 내역이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재산 공개는 국회의원 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고위공직자 재산을 파악할 때 1차적으로 파악하는 자료다. 하지만 현행 재산 공개 시스템으로는 재산을 공개하더라도 세부 정보가 없어 투기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보완이 필요하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더팩트>에 "공직자 재산이 축소 공개되는 점, 상세 사항이 공개되지 않는 점, 고지거부 문제 등에 대해 요구해왔는데 그런 점이 전혀 시정되지 않은 채 다시 공개됐다. 지금처럼 공직자 땅 투기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에서 국회가 솔선수범해주길 바랐는데 전혀 나아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해충돌방지법뿐만 아니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도 이번 기회에 급물살을 타야 한다. 가족 재산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명(재산 파악)까지는 더 나갈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원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아직 발의된 게 없는데 올해 나온 공직자재산 내역을 자체 분석하려고 준비 중이다. 발표에 맞게 입법 청원을 해서 의원들에게 법적 대안도 제시하려고 한다"고 했다.

공직자 투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투명한 재산공개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남용희 기자
공직자 투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투명한 재산공개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남용희 기자

여당과 정부는 지난 28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29일 발표할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을 논의했다. 모든 공직자 재산등록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부동산투기 부당이익을 몰수하기 위한 소급적용에도 나서겠다고 했다. 시장교란행위를 조사·관리·감독할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도 약속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윤리경영이나 공공성 등에 대한 배점을 높이는 등 경영평가 제도도 손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인에 대해서도 미공개 정보 이용 투기 등 부동산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향후 토지·주택 관련 기관의 취업이나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 등의 자격증 취득을 제한하기로 했다. 4대 시장 교란행위(내부 정보 활용 투기, 시세조작, 불법중개 및 교란, 불법전매 및 부당청약)의 경우 5배까지 부당이득을 환수하는 등 처벌도 강화한다. 다만 이처럼 '늘공(늘공무원)'과 '민간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자신들에게도 회초리를 들어야 공감을 얻을 것이다.

하나 더. 재산 내역을 담은 관보나 공보 파일 자체가 필터링이나 정렬을 할 수 없도록 PDF 파일로 공개돼 데이터 분석하기에도 불편하다. 재산내역을 공개했지만 파일을 보고 있자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마치 "제발 우리 재산 들춰보지마"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 자료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 마련도 절실하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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