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꼴찌 자화상<중>] 정해진 미래의 현실화
입력: 2021.03.22 05:00 / 수정: 2021.03.22 05:00
올해 대구·경북 대학들이 모두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가운데 대구대 신입생 최종 등록률은 전년보다 19%포인트 감소한 80.8%에 그쳤다. 이에 최근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신입생 모집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고, 직위 해제됐다. 대구대 전경. /대구대 제공
올해 대구·경북 대학들이 모두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가운데 대구대 신입생 최종 등록률은 전년보다 19%포인트 감소한 80.8%에 그쳤다. 이에 최근 김상호 대구대 총장은 신입생 모집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고, 직위 해제됐다. 대구대 전경. /대구대 제공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0명대 출산율 국가이다. 2018년 0명대 출산율 진입 후에도 매년 낮아져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인 0.84명까지 추락했다. 초저출산국으로 진입한 이후 19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230조 원이 넘는 재정을 투입했지만, 효과는 사실상 전무했다.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은 대체 어디에 쓰인 것일까. 그간의 정부 대책과 예산의 쓰임새를 살펴봤다. 초저출산 장기화로 인해 '결정된 가까운 미래'도 그려봤다. 나아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현실로 다가온 교육·지역·국방·경제 '위기'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심화와 더불어 기대여명 증가 등으로 급속한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2018년 고령인구 비중이 14.3%로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25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20.3%로 예상돼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촉발된 인구구조 변화는 사회, 경제 전반에 대대적 변화를 예고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초·중등 및 고등교육 인프라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노동시장 미스매치 심화로 청년층 선호영역(대기업, 공공부문)이 아닌 중소기업, 농업 등의 부문에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학교의 위기는 벌써 시작됐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예정됐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대대적 변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더팩트 DB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예정됐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대대적 변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더팩트 DB

◆줄어드는 아이, 시작된 학교의 위기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의 수를 기준으로 경쟁률을 추산한 '실질경쟁률'은 초저출산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는 2021년 1대 1이 될 것이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실질경쟁률은 4.5대 1, 수도권 4년제 대학은 2.77대 1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대에 가장 적게 태어난 2005년생이 대입을 준비할 2023년에는 경쟁률이 더욱 낮아져 각각 0.93대 1, 4.19대 1, 2.58대 1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학 권위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6년 저서 '정해진 미래'에서 이같이 예상했다. 예상은 일부 현실이 됐다. 올해 전국 4년제 대학 중 신입생 미달 규모가 100명 이상인 대학은 30곳이 넘었고, 이 중 18개 대학은 미달 규모가 200명을 넘었다.

정시 모집에서 미달이 발생해 지난달 말까지 추가모집에 나선 대학은 전국 162개, 총 2만6129명에 달했다. 국민대, 동국대, 명지대, 성공회대, 숭실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 서울 소재 대학도 추가 모집에 나섰다.

경북대, 경상대, 공주대, 부산대, 전남대 등 지방국공립 대학도 2087명의 미달이 발생했다. 추가 모집 전형 결과를 공개한 92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0.17대 1에 그쳤고, 모집 인원 대비 지원자 수는 11%에 불과했다. 수도권 대학만 추가 모집으로 미달 인원 대부분을 충원하고, 지방대는 대부분이 정원을 다 채우지 못했다.

대학 가기 쉬워진 시대가 이미 도래한 것이다.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선 희소식이다. 그러나 일부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을 제외한 대학의 입장에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조 교수는 2020년부터는 기존의 4년제 대학 중 50여 개가 필요 없을 만큼 학생이 줄어들고, 적어진 학생 수에 맞춰 전문대도 45개는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문을 닫은 대학은 18개 뿐이다. 이제 대학은 문을 닫거나, 학과 통폐합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거나, 교수를 줄이거나, 교수의 급여를 깎는 것 중 한 가지 이상을 무조건 선택해야만 상황이 됐다.

대학의 소멸 위기는 대학 관련자뿐 아니라 지역경제, 사교육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

초·중·고등 교육기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 학교시설이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초등학교 수는 6120개, 학급 수는 12만3517개, 학생 수는 269만3716명, 교원 수는 18만9286명이다. 학급당 평균 인원은 21.8명, 교원 1인당 평균 학생 수는 14.2명이다.

전국 중학교 수는 3223개, 학급 수는 5만2195개, 학생 수는 131만5846명, 교원 수는 11만1894명이다. 학급당 평균 인원은 25.2명, 교원 1인당 평균 학생 수는 11.8명이다. 전국 고등학교 수는 2367개, 학급수는 5만7153개, 학생 수는 133만7312명, 교원 수는 13만2104명이다. 학급당 평균 인원은 23.4명, 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는 10.1명이다.

국가통계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근 국제통계 자료인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초등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는 13.6명, 중등교사 1인당 평균 학생 수는 12.4명이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초등교사의 경우 더 충원할 여지가 아직 좀 더 남아있지만, 중등교사의 경우 5777명이 과잉인 상태다. 그렇다고 매년 수천 명씩 사범대학 졸업자들이 배출되는데(지난해 중등교육과 졸업생 5860명), 이들을 교단에 1명도 받지 않을 수 없어 교사 과잉 상황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저출산이 시작된 2002년 이후 출생남아들이 본격적으로 입대하는 내년부터는 군 병력의 대대적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팩트 DB
초저출산이 시작된 2002년 이후 출생남아들이 본격적으로 입대하는 내년부터는 군 병력의 대대적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팩트 DB

◆줄어드는 군 병력, 나라는 누가 지킬까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심화로 인구가 계속 줄어든다고 해서 군 병력을 쉽게 줄일 수 없다. 그러나 초저출산이 시작된 2002년생들이 만 20세로 군대에 갈 시기인 내년이 되면 국방 인력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2018년 59.9만 명에 달했던 군 병력은 내년에 50만 명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이에 국방부는 전투부대는 장교, 부사관을 증원해 전투력을 보강하고, 병력 자원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행정병, 운전병, 보급병, 정비병, 교육병 등 비전투 분야 인력은 민간 인력으로 충원할 방침이다.

문제는 앞으로 병력 50만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인구구조 변화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2002년 태어난 남자아이는 26만228명으로 이들이 통상적으로 입대하는 시기는 2022년이다. 하지만 출생남아는 이후에도 매년 감소해 2005년 22만 7592명까지 줄어든다. 이후 2006~2016년 20만 명대 초중반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2017년 18만4308명, 2018년 16만7686명, 2019년 15만5416, 2020년 13만9500명(잠정치)까지 급격히 줄어든다.

국방부는 2022년 말까지 상비병력 중 병사의 비율을 59.8%로 줄이고, 간부는 40.2%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간부 비율을 획기적으로 더 늘리거나 이스라엘처럼 여성징병제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인 국방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국방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 미스매치 심화

조 교수는 저서에서 초저출산 세대가 성년을 맞이하는 2022년부터는 이론적으로 청년실업 제로, 즉 실업이 '0'에 이르는 완전고용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원하는 직장은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청년들의 취업만 계산한 것으로 초저출산과 맞물려 진행되는 고령화까지 감안하면 넘쳐나는 일자리를 청년 대신 고령층이 차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2016년 20대 취업자는 366.4만 명(고용률 58.2%), 60세 이상 취업자는 384.8만 명(고용률 39.5%)이었다.

하지만 2020년엔 20대 취업자는 360만 명(55.7%)으로 취업자 수와 고용률이 각각 6.4만 명, 2.5% 줄었고, 60세 이상 취업자는 507.6만 명(고용률 42.4%)으로 각각 122.8만 명, 2.9% 늘었다.

한 채용 박람회에서 청년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는 모습. /더팩트 DB
한 채용 박람회에서 청년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피는 모습. /더팩트 DB

만약 경기가 좋은 상황이라면 초저출산이 취업 경쟁자를 줄이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경기는 소비시장, 생산시장, 세금 정책 등이 맞물려 돌아가는데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이 급격히 커지면서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소비시장 축소가 생산시장을 축소시키고, 그 결과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가운데 청년층과 고령층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

조 교수는 "저출산 세대의 인생은 그 윗세대보다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저출산 세대가 30대가 되면 부모 세대보다 월급이 많아져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지금의 30대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들 말하는데, 그들보다 저출산 세대의 미래가 더 어둡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현상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경제성장률도 점점 낮아질 것으로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출산율과 고령화가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합계출산율 0.25명이 감소할 경우 성장률은 0.95%포인트 감소하고, 고령인구 비율이 1%포인트 상승 시 성장률은 0.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을 감소하게 하는 중요한 두 요소가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우니나라의 경제성장력은 앞으로 점점 더 약화될 것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OECD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포인트로 예상했다. G20 평균 경제성장률은 6.2%이며,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 중 15위 수준이다. OECD는 예상한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올해보다 더 낮아진 3.1%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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