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은 18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재차 사과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 향해 비난…與, 2차 가해 차단 나서야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최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정치권 화두가 됐다. 피해 여성이 지난 17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에 진심 어린 사과와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의원들의 징계를 촉구한 이후 시선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쏠렸다.
민주당은 하루 만에 반응을 보였다.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은 18일 "다시 한번 당을 대표해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당이 부족했다"며 사과했다. 1월 27일 당 지도부가 사과한 이후 재차 피해자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더 이상 무거운 짐에 눌리지 않고 아무 불편 없이 일상으로 정상 복귀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불러 논란을 빚었던 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도 이날 오후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고 박 후보 캠프를 떠났다. 피해자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다. "저의 잘못된 생각" "자책감으로, 무력감으로, 통곡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와 같은 반성의 표현은 인상 깊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왜 조금 더 일찍 적극적으로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늑장 사과' '뒷북 사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고려한 '저렴한 신파극'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결국 뒤늦은 사과는 순수한 사과라 할지라도 시각에 따라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자초한 듯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했던 민주당 진선미·고민정·남인순(왼쪽부터) 의원이 18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선거 캠프를 떠났다. /더팩트 DB |
민주당의 사과가 '진심'인지 헷갈리게 하는 발언도 나왔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1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한 것과 관련해 "사건 초기에는 누구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그런 호칭을 썼던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종의 무죄추정 원칙에 입각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단순하게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른 배경 설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불가피'라는 말이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한 것을 합리화한 것처럼 읽힌다. 세 의원이 잘못을 인정한 것과 배치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이 모호한 것처럼 비친다.
과연 민주당이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대목은 또 있다. 피해자를 향한 극성 지지자들의 2차 가해에 민주당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부분이다. 도를 넘는 글들이 쉽게 목격되는데, 진보성향 커뮤니티에는 피해자를 향해 "증거를 가져와라" "억지 주장"이라는 등 비판 글이 적지 않다. 박 전 시장의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피해자가 충분히 압박을 느낄 만한 위협적인 글이나 욕설은 심각한 2차 가해다. 피해자가 오죽했으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2차 가해와 사실에 대한 부인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을까. 민주당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후보가 야권에 밀리고 있어 지지층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은 선거를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는 책임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배경에서 민주당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사실이다. 여러 비판에도 후보를 내고 선거를 치르는 민주당이라면 오히려 당 지지자들에게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