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LH 투기…스스로 '화' 키운 靑의 어설픈 대처
입력: 2021.03.15 05:01 / 수정: 2021.03.15 08:56
2년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LH 관계자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를 청와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작금의 LH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재인 대통령, 변창흠 국토부 장관, 조국 전 민정수석. /청와대, 국회사진취재단, 이동률 기자
2년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LH 관계자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를 청와대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작금의 LH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재인 대통령, 변창흠 국토부 장관, 조국 전 민정수석. /청와대, 국회사진취재단, 이동률 기자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허주열의 '靑.春일기']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도 못 막는 불행한 사태의 반복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고양시 창릉신도시는 지난번에 1차 발표 전 정보유출로 부동산 투기가 예상되어 지정이 취소된 곳과 겹치는데, 문제는 이 지역 땅을 '정부 관계자'나 'LH 관련자'들이 샀다는 이야기가 많이 돕니다. 이 소문과 관련 토지 거래내역 전수조사를 원합니다. 관련자들의 직접 혹은 친인척에게 정보가 제공되었는지, 그로 인해 실거래로 이어졌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취소되었던 지역이 다시 지정된 것을 일반 시민들은 쉽사리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철저한 조사로 의구심을 해소해 주길 바랍니다."

지난 2019년 5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3기 신도시 관련 전수조사 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은 3727명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답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분명히 이 글을 보기는 했을 것입니다. 보고도 무시했다면 '직무유기', 민정수석실에서 확인에 나섰는데 밝혀내지 못했다면 '무능'했던 것이겠죠. 참고로 당시 민정수석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만약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은 후행적 판단이고,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선택에서 교훈을 얻어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LH 전·현직 직원들, 일부 공무원들의 미공개 정보 이용 신도시 땅 투기 사건에 이 만약을 적용해 보려는 이유입니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알려진 이 사건은 안일했던 청와대의 대처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꾸려져 대대적 '수사'에 나섰고, 이와 별개로 청와대·국무총리실·각 지자체 등이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합동조사단은 1차 조사 결과도 내놨습니다.

청와대는 비서관급 이상 본인 및 배우자, 직계가족 368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투기 의심 사례가 '0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합조단은 국토교통부와 LH 임직원 등 총 1만4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7명'의 투기 의심자를 추가로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조사는 모두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 토지거래 내역 등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한 인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사의 신뢰성·효율성 논란, 행정력 낭비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지난 2019년 5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LH 관계자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글. /청와대 누리집
지난 2019년 5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LH 관계자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글. /청와대 누리집

결국 지난 12일에는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LH 투기 사건이 변 장관 LH 사장 재임 시절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됐고, 여론에 밀려 직을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변 장관은 지난해 12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재직 시절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인 특혜 채용 의혹,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 군에 대한 비하 발언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권이 임명을 반대했던 인사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힘을 앞세운 여당 주도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고,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 임명된 26번째 장관으로 기록된 변 장관은 과거의 일로 취임 3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변 장관 사의 표명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2·4 (부동산 공급)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 변 장관 주도로 추진한 공공주도형 주택공급 대책과 관련된 입법의 기초 작업까지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시한부 사퇴를 예고했습니다.

2년 전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정부 관계자, LH 관련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그때 제대로 조사하고, 필요한 조처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특수본의 대대적 수사에, 청와대·정부·지자체의 자체 조사 등 공권력, 행정력의 엄청난 낭비는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정권에 부담을 주는 일도 없었겠죠. 어쩌면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 장관은 장관이 되지 않아 그를 둘러싼 정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작은 징조가 있었을 때 제때 대처하지 않아 일을 키운 사례는 더 많습니다. 지난해 내내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었고, 당사자 모두가 정권을 떠나게 만든 '추미애 vs 윤석열 갈등', 문 대통령 임기 내내 폭등한 '부동산 문제', 민주당 소속 광역지자체장들의 릴레이 '성추문' 등은 모두 초기에 제때 대응했다면 논란이 더 커지지 않았을 사태들입니다.

집권 5년 차 성과를 내야 할 시기에 이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터지면 정작 해야 할 국정 과제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약속했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작은 징조에서 잘 대처해 일을 키워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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