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달리 부산·경남 지역은 대선판이 달아오르지 않은 분위기다. 보수진영 대권주자가 부재한 까닭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 윤석열 검찰총장. /이선화 기자 |
내년 20대 대선이 1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설 연휴 기간 밥상머리에 올라올 화두는 단연 '차기 대통령감'이다. 많은 이들이 연휴를 맞이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어떤 인물이 대통령으로서 경쟁력을 갖췄는지 곱씹어볼 시간이다. 역대 대선에서 '호남'과 '경남'은 각각 민주 계열 정당, 보수 계열 정당 대선후보가 가장 먼저 깃발을 꽂아야 할 본진이다. 그런데 최근 호남과 경남 모두에서 한 주자가 독주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일까? 대세가 기운 것일까. 설 연휴를 앞두고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정치권, 바닥민심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정권 심판' 바람 불지만 인물난 아쉬움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여권에선 '영남 출신·호남 지지 조합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통념이 있다. 호남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은 영남 지역에서도 30~40% 정도 표를 가져와야 이길 수 있다는 게 암묵적인 선거 공식이다. 실제 1987년 민주화 후 치른 7번의 대선 가운데 민주 계열 정당이 이긴 세 번의 대선 가운데 '영남 출신' 후보가 두 명이었다. 특히 민주당은 영남 중에서도 외부인과 젊은 층 유입이 많아 보수색이 옅은 'PK(부산·경남)' 지역을 공략해왔다.
그 결과 최근 연이은 선거에서 'PK=보수'라는 정치 지형이 깨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도지사 등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도 민주당이 석권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에서 역대 대선 후보 중 보수 후보와 가장 근소한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바닥 민심은 그때와 달리 차갑게 식어 '정권심판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야권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는 분위기다.
여권에서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남 표를 상당 부분 확보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다. 여권 PK출신 주자들이 사라지면서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선 이 지사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다는 여론조사들이 나온다. 2018년 8월 2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듣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 김경수 경남도지사. /더팩트 DB |
◆보수진영 대표주자 부재 속 이재명 선두
국민의힘은 작년 4·15 총선을 거치며 차기 대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황교안, 오세훈, 나경원 등 중진급 정치인이 낙선하면서다. 이 틈을 비집고 원희룡 제주지사가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원 지사는 대권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지역화폐' '기본소득' 등 주요 현안을 놓고 맞붙었다.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10월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주도하는 마포포럼 강연자로 나와 대선출마 의지를 밝히며 '완전 개방형 경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아직까지 지지율과 존재감이 미미한 상태다. 대권 재도전을 선언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복당의 벽에 막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차기 대권주자 대열에서 멀어졌다.
여권에선 PK 지역 대권주자들이 교통정리가 됐다. 서병수 전 부산시장을 꺾고 대권가도 속도를 내려던 김영춘 전 의원은 4·15 총선에서 낙선 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한다. 김부겸 전 의원도 차기 대선 출마 포기를 전제로 8·29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승부수를 던졌다가 떨어져 정치적 타격을 크게 입었다.
가장 유력한 PK 출신 대권 잠룡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드루킹 사건'(민주당원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후 차기 대권이 좌절됐다는 평가다. 본인도 "민주당 내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그분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잘 만들어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이재명, 이낙연 양강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표본오차 ±3.1%포인트에 95% 신뢰수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결과, 2020년 8월 2주 차에는 이 대표 선호도가 18%, 이 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율이 13%였다. 9월 2주 차에는 이 지사가 21%, 이 대표가 18%로 역전됐다. 윤 총장 지지율은 4%로 급감했다. 이어 12월 1주 차에 이 대표가 17%, 이 지사가 16%로 재역전됐다. 윤 총장 지지율도 14%로 크게 올랐다. 올해들어서는 1월 2주 차에 이 지사와 윤 총장 지지율이 17%, 이 대표 지지율이 6%로 나타났다. 지난 2월 1주차에서도 이 지사 지지율이 17%로, 11%인 이 대표와 윤 총장보다 높게 나왔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도 직결된 4·7 재보궐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며 동시에 자신에 대한 부산·경남 지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부산을 서부산의료원 조기 건립을 약속한 이 대표. /민주당 부산시당 제공 |
여권 대권주자들은 '경남' 지역에 대한 구애 행보도 이미 시작했다. 이 지사는 지난 5월에 '부산 친문' 이재강 전 부산시당 비전위원장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임명했다. 이 평화부지사는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지도 강하게 드러냈지만 최종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대표는 4·7 재보궐 선거를 준비하며 올해 들어서만 부산을 두 차례 방문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촉진 특별법을 이달 임시국회 내 처리하겠다며 승부수로 띄웠다.
윤 총장은 야권 대권주자로 떠올랐지만 오는 7월 임기가 끝나고 향후 행보가 불분명하다. 정치에 입문하더라도 국민의힘에 입당해 정치 행보를 함께 할 경우 그동안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 목소리가 크다. 윤 총장이 떠오르면서 국민의힘 내 대권주자들의 존재감이 더 없어진 점도 지적된다. 경남도의회 A 의원은 <더팩트>에 "윤 총장은 총장으로서 끝내야 한다. 대권에 도전하면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 정가에선 국민의힘 중앙당 지도부가 대권주자를 조속히 발굴하고 띄워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지난 1일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에서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을 예방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윤 총장. /이선화 기자 |
◆"정권심판론 형성됐지만 야권 인물난"
지역 민심은 기존의 보수색이 짙어지면서 '정권 심판론'에 대한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당의 두 대권주자에 대적할 만한 야권 대권주자가 부재하면서 대권 판세 자체가 달아오르지 않은 분위기다. 국민의힘 경남 지역 관계자는 "지금은 대권보다 보궐선거가 중요해 대권주자에 대한 생각은 염두에 두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론도 없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경남지역 한 의원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문재인 정부가 심하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이곳은 문 대통령 고향이 있는 곳이라 이전에는 '정치성향은 달라도 잘하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게 완전히 돌아서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리더'라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있다. 중앙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이재명을 거론하지만 지역에선 대권주자 개개인을 놓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괜찮기 때문에 누가 야권 후보가 되어도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정 후보가 좋다,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윤 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빨리 부각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경남 지역 국민의힘 의원은 "대권주자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 당원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좋은 후보가 나오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있는 정도"라고 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중앙당이 차기 대권주자 발굴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의힘 소속 A 경남도의원은 "국민의힘에서는 아직 대권후보가 안 나타나서 (지역 민심이) 누구라고 얘기할 수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빨리 (대표직을) 내려놓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저번 대선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바람에 문재인 대통령 쏠림 현상으로 간 것"이라며 "지금은 대선주자를 당에서 내세우려는 생각을 안 하는 리더가 문제다. 지금쯤은 (대권주자를) 해놓고 그 사람 중심으로 가줘야 하는 게 옳다고 보는데 김 위원장이 그걸 안 하니까 본인이 대권 생각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대권주자로 '70년대 생 경제 전문가'를 물색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당내 중진들이 김종인 비대위 체제 조기 종식과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을 요구했다가 수그러든 상황이다.
경남 지역에서 여권 대권주자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가는 분위기다. 민주당 소속 B 경남도의원은 "우리 지역에선 이 지사에 대한 관심이 좀 많이 보인다. 이 대표에 대해선 전체적인 평이 현 수준에 있는 정도이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지사에 대해서는 현재 경제적 조건이나 기존 정책들의 한계를 볼 때 적극적인 리더십이 지금 시대에 더 필요한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여야 대권주자들이 경남 지역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민주당 대선주자는 PK 출신이 나와 표를 절반 정도 얻으면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다고 분석하는데 현 여권 유력 주자 중에는 없다. 그래서 부산 경남에서 민주당 대선 주자에 대해 특별한 지지가 없지만 '호남 출신'에 대해서는 반감이 많은 분위기"라며 "이를 돌파하기 위해 이 대표는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위해 총대를 메고, 정세균 국무총리는 방역 문제로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부산 민주당 후보들과 연대하는 게 중요한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민의힘에는 지지를 호소할 인물이 없는 상황이다. 4·7 재보궐 선거가 끝나면 대선판이 바로 진행 될텐데 새 지도부는 차기 대권주자를 안팎으로 만들어내고 역동적으로 부각할 수 있는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후보가 걸러지느냐에 따라 부산·경남 민심도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