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헌정사 초유 '판사 탄핵' 추진…왜 지금일까?
입력: 2021.01.30 00:00 / 수정: 2021.01.30 00:00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용인하면서 본회의 표결이 가시화됐다. 지난 22일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부터), 강민정 열린민주당,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공동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용인'하면서 본회의 표결이 가시화됐다. 지난 22일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부터), 강민정 열린민주당,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공동사진취재단

당내 '탄핵 추진' 강한 기류 형성…野 "사법부 길들이기" 비판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여당 일각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사법 농단 개입 의혹' 판사 탄핵소추안 표결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당 내부에는 코로나19 위기 속 정치적 이슈 부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도부가 탄핵 추진을 용인하면서 사실상 '당론' 성격을 띄게 됐다. 최근 여권에 불리한 재판이 줄줄이 나오면서 당내 '사법부 견제' 여론이 무르익은 것으로 보인다. 보수 야당과 전문가는 거대 여당의 일반 판사 탄핵 추진은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29일 민주당에 따르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안은 내달 1일 제출한다. 탄핵소추안을 주도하는 민주당 이탄희 의원실 측에 따르면 발의 요건(재적 의원 3분의 1이상)을 갖추기 위해 의원들에게 법안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 받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이 1일 발의되면 국회법에 따라 2일 본회의에 보고되고, 설 연휴 전인 4일께 표결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코로나19로 인한 민심을 의식해 법관 탄핵은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소속 의원들의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했다. 다만 민주당을 비롯해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등 범여권 111명 의원이 탄핵소추안 참여 의사를 밝혔고, 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탄핵 소추안 발의를 인정하면서 의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인 151명 이상 찬성)을 충족할 것이란 전망이 높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결정한다.

당 지도부 및 중진 의원들도 탄핵소추안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묵과하고 탄핵소추 요구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국회의 직무유기가 된다"고 탄핵안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임 부장판사 탄핵 추진에 대해 "이번에 국민들이 180석을 민주당에 준 부분은 잘못된 것을 시정(是正)해 내라는 뜻"이라고 했다. 송영길·홍영표·정청래 등 당내 중진 의원들도 판사 탄핵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탄핵 추진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법무부의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낸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해 윤 총장이 업무에 복귀했을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이 나왔을 때 청와대 국민 청원 등 당 지지자들의 '법관 탄핵' 목소리가 들끓었다. 가장 최근에는 법원이 조 전 장관 아들 인턴 경력확인서 허위 작성 혐의를 받는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자 다시 '법관 탄핵' 여론이 높아졌다. 당 지도부가 헌정사상 초유의 일반 판사 탄핵 추진을 용인한 것도 이 같은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당내에선 '지금이 아니면 선거 국면에선 부담이 커져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탄핵 소추를 주도한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은 재판 독립 침해 회복을 위한다고 밝혔지만 보수야당과 법조계에선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4.16가족협의회, 4.16가족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임성근·이동근 법관탄핵을 촉구하는 이 의원. /남윤호 기자
탄핵 소추를 주도한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은 "재판 독립 침해 회복"을 위한다고 밝혔지만 보수야당과 법조계에선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분수대 앞에서 4.16가족협의회, 4.16가족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임성근·이동근 법관탄핵을 촉구하는 이 의원. /남윤호 기자

민주당은 임 부장판사 탄핵을 추진하면서 "재판 독립 침해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탄희 의원은 이날 "사법농단 판사 탄핵소추는 '헌법'을 위한 것이라며 "재판독립을 침해한 사람을 헌법재판에 회부하는 것은 국회의 헌법상 의무"라며 "재판에 회부조차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칼럼을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재판에서 판결문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민주당은 1심 재판에서 임 판사에 대해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를 탄핵소추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 야당과 법조계 등에서는 범여권의 법관 탄핵 소추가 오히려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 해당 법관이 다음 달 퇴직을 앞두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탄핵 제도의 목적과 기능이 헌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인데 임 판사 탄핵소추 사유는 중대하다고 볼 수 없어 이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더팩트>에 "탄핵은 공직에서 파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임 판사는 한 달 후 퇴직하는 데 탄핵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나. 탄핵 소추를 국회 내에서 한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서 한 달 내 탄핵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불법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는 별도의 재판을 통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탄핵은 중대한 불법이 있어야 한다. 임 판사 행위가 중대한 불법이라고 얘기하긴 어렵다. 중대한 불법이라면 1심 재판에서 무죄라고 판결할 수 있었겠나"고 강조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도 "탄핵은 기본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위한 것"이라며 "삼권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게 사법권이다. 그런데 지금 견제하겠다는 상대는 거대 여당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여당이 주장하는) '사법농단'도 이미 사법적으로 기소되고 현직 부장판사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는 법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살아있다는 의미"라며 "(그런데 탄핵은) 한번 들이대기 시작하면 판사들을 위축시킬 염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 야권도 '사법부 길들이기'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법관의 탄핵에 대한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2월 말에 이미 법관재임용을 신청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나는 법관에 대한 탄핵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며 "법관 개인에 대한 탄핵일 뿐 아니라 현재 형사 소송 중 1심 무죄 판결을 마치고 확정이 되지 않은 재판에 관한 건이다. 법원과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도 당연히 대두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판사 출신이자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나경원 전 의원도 "사법부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그 사법부마저 이제 친문권력 아래 꿇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결을 하는 판사들을 대놓고 위협해 길들이고 재갈을 물리겠다는 게 아니면 무엇이겠나"라고 비판했다.

2월 임시국회도 '법관 탄핵 소추안'을 시작으로 날카로운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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