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세요?] “5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입력: 2021.01.27 08:59 / 수정: 2021.01.27 09:33
공법단체 설립을 준비중인 5월 주요 3단체 지도부가 지난 5일 광주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법단체 임원은 공인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더팩트 DB
공법단체 설립을 준비중인 5월 주요 3단체 지도부가 지난 5일 광주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법단체 임원은 공인으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더팩트 DB

공법단체 전환 앞둔 5‧18 단체들…뼈를 깎는 자성으로 거듭나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무장 혁명을 이끌어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한 피델 카스트로가 1960년 유엔 연설을 위해 뉴욕을 방문할 당시의 일화다.

혁명의 피바람을 피해 쿠바를 탈출한 망명객을 비롯해 카스트로를 증오하는 미국인들이 '미국 땅에 발을 들이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공언했다. 이와 관련 미국행 비행기에 카스트로와 동승한 한 언론인이 ‘방탄조끼를 입고 미국을 간다’는 소문이 있다고 묻자 카스트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제복 앞섶을 열고 맨살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덕심의 조끼를 입고 있다. 선을 행하려는 가슴으로 무장한 혁명가를 누가 죽일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최소한 그날 비행기 안에서의 언급만은 심금을 울린다. 혁명과 같은 인류의 모든 진보적 활동의 정수는 도덕심이라는 신념의 발로임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회정의와 개혁, 그리고 고매한 가치와 이상을 내세운 그 어떤 혁명도 선악을 가리고 선을 쫓는 도덕률이 결여되었을 때 결국은 또 다른 악의 일부로 전락하고 말았음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 또한 그의 명저 ‘역사철학’에서 도덕적 목적론이 시간적 발전의 모습으로 옮겨지며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주창했다.

광주시민들은 근래 며칠 동안 당혹감에 휩싸이며 신열을 앓는 양 자조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5‧18 주요 단체 모 대표의 조폭 연루설‧가짜 유공자‧사업비리 의혹 등 비상식적인 일탈의 행적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솔직히 설왕설래한 5‧18 관련 단체 일부 구성원들의 일탈 행각은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시민사회가 귀를 막고 언급을 삼가 했을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틈만 보이면 아귀처럼 달려들어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모욕의 세월을 오래도록 살아왔기 때문이다. 5‧18 학살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극우 정치세력이 끊임없이 군불을 떼며 광주시민에게 지어진 빨갱이‧폭도의 멍에는 끈덕지고도 모질었다.

광주시민들의 이 집단 트라우마는 5‧18을 두서없이 감싸고, 더러 드러나곤 했던 진실의 균열들을 그저 메꾸는 데만 연연하는 몸짓으로 나타났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시민들의 목숨 값으로 이뤄낸 5‧18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의 뒤끝은 예상했던 대로 씁쓸했다. 이런 댓글들이 쏟아졌다. 터질 것이 터졌다. 진짜 유공자들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검증해야 한다. 민낯이 드러났다.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5‧18의 거듭남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5‧18 특벌법 개정으로 5월 주요단체들은 공법단체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법인격의 위상이 대폭 확장되고 도약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만큼 5‧18 관련 단체들 또한 뼈를 깎는 자성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문득 신동엽 시인의 대표시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래야 할 것이다. 5월도 이제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야 한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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