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무르익는 '손실보상제'…여야, 재원 마련에 '표심 떨어질라' 눈치만
입력: 2021.01.27 05:00 / 수정: 2021.01.27 05:00
여야 정치권이 코로나19 손실보상제에 입을 모은 가운데 재원 마련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심 경쟁이 가열될 경우 부실 입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남윤호 기자
여야 정치권이 코로나19 손실보상제에 입을 모은 가운데 재원 마련에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심 경쟁이 가열될 경우 부실 입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남윤호 기자

문제는 재정 확보…"예산안 재편" vs "재정 확장"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손실보상제' 재원 마련책에 여야 의견이 갈리고 있다. 4·7 보궐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이 표심 경쟁에 치우칠 경우 생산적 논의가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예산안 재편성'을 중점으로 하는 종합 입법을 예고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00조 원 규모의 손실보상법을 마련해 입법 드라이브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재정부담이 심화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시기 등을 시행령에 위임하면서 재정 당국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당을 강력 비판하면서 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 등으로 재정을 확보하는 등 대안을 내놓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6일 "550조 가까이 되는 금년 예산을 제도적으로 당장 재원으로 해놓고 재난지원금과 손해보상비로 쓸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린 국민의힘 코로나19 피해소상공인 손실보상 등 대책마련 간담회에서 "중구난방식의 정부 실책을 가지고는 코로나19로 발생하는 여러 경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어제(25일) 대통령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코로나19에 대한 손실보상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오라고 하는데, 나는 번지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기부는 그런 것들을 할 능력이 있는 부서가 아니다. 예산의 범위 내에서 조치하라고 하지만 부총리는 예산을 주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라며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통령이 보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사태를 제대로 극복해야 앞으로 코로나19 이후에 우리 경제를 정상화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촉구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생계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예산안 재편성을 주장했다. /남윤호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생계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예산안 재편성을 주장했다. /남윤호 기자

김 위원장은 예산안 재편성을 언급하면서 "기본적으로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국세청에 분기별로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국세청에 가면 그 자료가 다 있다"며 "예를 들어 코로나19 전에는 매출이 얼마나 되고,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문제로 매출 감소량이 얼마인가란 것을 근거자료로 보상의 기준을 어떻게 할 건지는 쉽게 정한다"고 국세청 자료에 따른 보상 기준 마련안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4월부터 "대통령이 고유 권한을 갖고 100조 원을 확보해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금 마련을 주장해왔다.

그는 "(여당이) 실질적으로 어떤 조치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전혀 기본 방향이 설정되지 않았다"며 "이제는 세금으로 충당할 여력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빚을 내더라도 극복하는 방법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간담회에서 거듭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생계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재원 마련책에 대해 "정부 예산을 구조조정해 기존 예산에서 조정할 수 있다면 지난해 4월에 말했던대로 장기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코로나19에 대처하라고 한 게 있지 않나"라며 "중요한 건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장기화될 것인지) 예견 가능했다. 지난해 본예산 편성 과정에서 정부가 전혀 그런 조치를 취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와서 예산이 어디 있느냐, 재원조달이 가능하느냐는 문제가 생겨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간담회 직후 이어진 정책워크숍에서도 국민의힘은 종합대책 추진 의지를 보였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우리 당의 중점 추진 법안은 감염병 예방법, 소상공인기본법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법안, 종부세법, 소득세법 등 서민부담 경감 법안, 그리고 공직선거법 등 정치개혁법안"이라고 했다.

손실보상제와 관련해 이 의장은 "우리 당은 소상공인을 위해 지난해 6월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감염병 예방법 등 관련 법안을 여러 건 제출했다"면서 "조만간 과감하고도 실질적인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내놓은 손실보상제에 대해선 "그동안 손 놓고 있던 여당이 재보선이 다가오자 손실보상 등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들고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예산안 재편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지만, 재보선을 앞둔 만큼 민심 추이를 주목할 전망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워크숍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비상 시국에 560조 원 가까이 되는 예산을 그대로 둔 채로 또 빚을 내서 보상하는 건 맞지 않다"며 "비대위원장께선 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서라도 액수를 확보하고 최대한 하는 데까지는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그런 재원 계획을 기재부나 정부가 먼저 내놓아야 저희들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본다. 보상은 하되 최대한 재원을 아끼고 모아서 불가피하다면 적자 국채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인데 그런 것들은 자세한 재원 대책을 가진 정부가 먼저 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우선순위를 다시 배정한 예산안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데 힘을 실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런 비상 시국에 560조 원 가까이 되는 예산을 그대로 둔 채로 또 빚을 내서 보상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남윤호 기자
전문가는 우선순위를 다시 배정한 예산안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데 힘을 실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런 비상 시국에 560조 원 가까이 되는 예산을 그대로 둔 채로 또 빚을 내서 보상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남윤호 기자

이미 지난해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위한 국채발행이 100조 가까이 이뤄진 상황에서 또 국채발행이 이뤄질 경우 재정부담을 향한 여론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국채발행은 결국 미래세대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정치권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예산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게 맞다"면서 "갑자기 전쟁이 나면 평소대로 예산을 집행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일단 (예산을) 집행중지하고 전쟁에 들어갈 비용을 우선 써야 한다.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이라며 "나머지 부분을 국가 유지에 필요한 부분에 나눠 쓰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국채를 발행해 집행하면 미래세대 부담으로 가는 거다. 정상적인 예산 집행이 아니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으면 그럴 수 있다. 그 뒤에 증세해 메우면 된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전시 예산 체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야 한다. 우리 정부 전체 예산에서 100조는 17% 정도 수준이다. 전체 예산에서 20%까지 줄이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려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려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떨어졌다고 하는 거면 그게 맞는 거다"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 손실보상제 취지에 동의하면서 정책 경쟁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입법 경쟁이 재보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심 경쟁으로 이어진다면 자칫 신중한 논의 없이 부실 입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여야 모두 선거를 의식해 정직하지 못한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예산안 재편성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선거가 앞에 있어 돈 푸는 것에 반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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