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송영길 "바이든-문재인 호흡, 트럼프보다 잘 맞을 것"
입력: 2021.01.25 05:00 / 수정: 2021.01.25 08:34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바이든·문재인 정부의 호흡이 트럼트 행정부 때보다 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중인 송 의원. /남윤호 기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바이든·문재인 정부의 호흡이 트럼트 행정부 때보다 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팩트'와 인터뷰 중인 송 의원. /남윤호 기자

"바이든 행정부, '전략적 인내' 하고 싶어도 못해"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바이든 대통령 취임사 다 외워야죠~."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주춤하던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구상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여당은 "김대중-클린턴 정부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 파트너십이 한미 동맹의 새로운 황금기를 열 것"이라며 기대 중이다. 상황도 양국 집권당에 유리하다. 한국의 민주당이 174석으로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고, 미국 민주당도 약 11년 만에 백악관, 상원, 하원을 모두 차지하게 됐다.

반면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바이든 정부가 "Anything But Trump" 기조를 외치며 트럼프 정책 뒤집기에 한창인 만큼 대북 외교 정책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는 "북한에 대해 접근과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라고 했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러시아, 이란, 중국과 함께 미국이 직면한 위협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점도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송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남윤호 기자
송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남윤호 기자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더팩트>와 만난 송영길 외통위원장(더불어민주당 소속, 5선)은 A4용지로 열 장이 넘는 분량의 따끈따끈한 취임사 원문을 프린트로 출력해 읽고 있었다. 그는 잘 알려진 '학구파' 의원답게 "바이든 대통령 취임사 다 외워야죠"라고 말했다. 놀라는 기자에게 옆에 있던 보좌진은 "충분히 외우실 분"이라고 거들었다. 바이든 대통령 전기도 이미 원문으로 읽었다고 한다. 취임사를 보는 그의 눈빛은 골치 아프지만, 흥미로운 추리 사건을 푸는 것처럼 초롱초롱했다. 국회 외통위원장인 그는 다섯 번의 국회의원과 한 번의 인천시장을 지내며 바쁜 가운데서도 틈틈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실력을 쌓아온 '외교통'이다.

송 위원장은 새로운 한반도 평화 동맹 파트너에 대한 파악을 끝낸 듯한 모습이었다. 바이든 시대 한미 동맹과 남북미 관계 전망,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과제 등에 대해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을 내놨다.

송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에 인도적 지원을 위한 대북 제재 해제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호 기자
송 위원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에 인도적 지원을 위한 대북 제재 해제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윤호 기자

그는 바이든 대통령 연설문 중 "흥분은 가라앉히고 서로를 다시 보기 위해, 서로를 다시 듣기 위해 반대진영을 적으로 대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는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았다. 그러면서 "그게 꼭 우리가 바이든 정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다.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에서도 미국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상대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핵 위협이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면서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그는 "북한이 사정거리 1만5000km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갖고 있는데 발사되면 뉴욕, 워싱턴 D.C까지 온다. 미국 본토가 노출됐는데 어떻게 그걸 전략적 인내할 수 있겠나. (상황을) 더 악화시키면 안 되니 중단시켜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 정부의 '톱-다운 방식'이 아닌 '보텀-업 방식'으로 부처 간 체계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시스템 외교'가 되리라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가 38년 간 상원의원을 한 데다 외교적 경험이 풍부해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보여주기식 '깜짝 쇼'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내정자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처럼 이란 핵합의 과정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바이든 행정부 핵심 외교라인인 만큼 북핵 문제도 실무 과학자들이 집중 회의해 성과를 낸 이란 핵합의 방식처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 위원장은 이 같은 집중 토의 방식이 "쉽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정부 때보다 북핵 해결에 주효할 것으로 봤다. 그는 "(북핵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서로 신뢰를 복원하는 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가 하나도 없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자랑처럼 얘기해왔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 지속되겠나. 북한은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니 이를 협상해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핵무기 무장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현재까지 여행 금지, 자금 동결, 정유 공급 제한 등 10여 개 넘는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 송 의원은 이에 대해 "대량살상무기나 핵무기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2400만 북한 주민 삶에 대한 제재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외통위원장실 책상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 원문에 놓여져 있었다. 송 위원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그의 외통위원장실 책상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사 원문에 놓여져 있었다. 송 위원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전열을 가다듬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추진하려는 우리 정부와의 호흡은 어떨까? 송 의원은 "바이든과 문재인 정부의 호흡은 트럼프 때보단 더 잘 맞을 것이라고 본다"고 예상했다.

다만 남북, 북미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송 의원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뭐든지 우리가 미국에 끌려갈 순 없으니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가야 한다. 미국이 우리 운명을 결정하게 둘 순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조치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과감한 제재 철폐와 예외 인정을 미국으로부터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위원장은 "타미플루(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북에 제공하려 했는데 트럭이 제재대상이라 무산되는 식의 형식적 제재가 아니라 탄력적으로 제재를 완화시켜 북한이 실질적인 신뢰가 생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추가 도발을 막으려면 으름장 놓고 협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대화할 수 있다는 신뢰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미 간 각각 평양과 워싱턴D.C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현장에 소통창구가 있어야 (양국 관계에서) 조기경보 기능을 할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은 이런 조치들이 취해지고 환경이 조성된 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게 송 위원장의 판단이다. 그는 "답방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선 이뤄지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일단 답방이 되려면 북미 문제가 풀리고 남북 관계도 대화가 돼서 김 위원장 방문을 우리 국민이 환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 답방을 기대한다'는) 대통령 말씀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 추진 움직임에 대해 지나친 것라고 일갈했다. /남윤호 기자
송 위원장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한 미 의회 청문회 추진 움직임에 대해 "지나친 것"라고 일갈했다. /남윤호 기자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 저변에는 '협력적 자주국방론'이 자리한다. 그는 "모든 나라가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자기 나라 국가안보를 외국에 의존하는 나라가 주권 국가라고 할 수 없다"며 "저는 우리나라가 한미동맹을 하되, 미국 없이도 자주국방할 수 있는 나라라고 본다. 우리나라 군사력으로 북한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노선'을 공감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지난달에도 국회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개정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갖고 해마다 핵무기 전달 수단을 발전시키면서 북한에는 핵을 갖지말라고 강요하나"고 말했다가 논란이 됐었다.

이에 대해 묻자 송 위원장은 역시나 직설적 화법으로 답했다. 그는 "고려할 요소가 많아 제가 직접 주장하진 않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럴 바에야 우리도 핵을 만들면 균형이 잡힐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미국이 계속 이것 저것 막는 것보다 남북한 둘 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가 둘이 합의해 동시에 핵 폐기하는 게 (비핵화 전략에서)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낮다는 이야기다"라며 "그러나 우리도 핵을 갖고 북한이 핵을 갖는다는 건 도미노 현상으로 NPT(핵확산금지조약)체제가 무력화되기 때문에 안 된다. 이를 막으려면 (지금 단계에서) 북핵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만 우리 원전에서 나오는 핵연료 재처리를 못 하게 막고 있는 것은 미국과 협상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주국방' 관점에서 미 의회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지적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도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미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 트위터도 영구 중단시키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데모하는 것도 막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한다면 그런 것들을 왜 막나. 국가안보질서에 문제가 발생하니 막는 것"이라며 "동맹 국가에서 주민 입법 청원을 통해 통과한 입법을 청문회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라고 했다.

송 위원장은 오는 2~3월 중 방미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파트너가 될 하원, 상원 외교위원장을 만나 방위비분담금 문제나 한미동맹, 북핵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송 위원장은 이낙연 대표의 임기가 끝나면 차기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남윤호 기자
송 위원장은 이낙연 대표의 임기가 끝나면 차기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남윤호 기자

송 위원장은 당내 '외교통'이자 5선의 거물급 인사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사임을 두 달여 남겨두고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지휘할 차기 당권주자에 대한 관심도 쏠리고 있다. 2018년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전 대표에 이어 아쉽게 2위에 그친 송 위원장은 올해 전당대회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집권5년차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재집권 발판 마련을 위해 신발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지원대책으로 '임대료 분담제(6개월 한시적으로 상가임대료를 임차인 50%, 국가와 임대인 각각 25%씩 분담)'와 '누구나집 프로젝트' 정책 구상도 내놨다. '누구나집'은 송 위원장이 인천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고안한 주거 정책이다. 민간임대공급자가 분양가를 책정하면 임차인은 10% 계약금만 내고 거주하다 8년 후 최초공급가로 주택을 구매할 권리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는 "우리 정부가 매번 공공임대주택 늘리는 이야기만 하는데 전부 국가 돈을 들여 어떻게 집을 짓겠나. 그것으로 자기 집을 갖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를 대체할 순 없다"며 "누구나집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10%를 투자하고 8년간 임대차가 끝나면 언제든 최초 분양가에 살 권리를 주기 때문에 투기적 수요가 확 줄어들 것이다. 주식시장에 비유하자면 선물시장 같은 것"이라고 했다.

당 대표 선거를 염두에 둔 정책인지 묻자 송 위원장은 "당 대표를 떠나 5선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를 넘어 국가적 과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며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고 다음 대선도 이기기 쉽지 않다. '누구나집' 프로젝트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당을 이끌게 되면 이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영길 의원은 누구? 1963년 고흥 출신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다 수감생활을 했다. 1985년 석방 후 인천에서 7년간 노동운동을 했고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0년 총선 때 당선된 이후 '인천계양구' 한 지역구에서만 내리 5선을 한 중진이다. 도중에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인천광역시장도 역임했다. 2017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친문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신북방외교도 선도하고 있다. 현재는 21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자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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