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왼쪽) 전 민주연구원장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객원 선임연구원 합류에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의견이 중요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두 사람은 양 전 원장의 CSIS 합류 결정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달 21일 풍산홀딩스가 소유한 건물에서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철영 기자·더팩트 DB |
류진, 문재인 대통령과도 오랜 인연…국내 대표 '미국통' 정평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 선임연구원 합류에는 국내 방산기업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적극 도운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두 사람의 과거 인연도 주목된다.
<더팩트>는 미국행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양정철 전 원장의 연수와 관련된 미국 CSIS측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합류 사실 여부와 류진 회장의 역할을 확인했다. 미국 CSIS 측은 13일 <더팩트>의 이메일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양정철은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보수는 받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전에 양정철이 햄리 소장에게 먼저 연락했으며 햄리 소장은 양정철 합류에 대해 CSIS 이사인 류진 회장과 논의했다"고 말했다.
양정철 전 원장의 미국행을 류진 회장이 도왔다는 CSIS 측 답변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도 제보를 통해 확인했다. 양 전 원장과 류진 회장은 지난달 21일 풍산홀딩스가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특별 장소에서 약 3~4시간 동안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도 눈길을 끈다. 해당 주택에는 '풍산역사관'(蘴山歷史館), '북아헌'(北阿軒, 북쪽 언덕 집) 현판이 있다. 등기부를 보면 지하 2층에 지상 3층 규모 주택 외 2필지를 풍산이 20년째 보유 중이다.
주민들도 해당 주택이 풍산그룹 소유로 알고 있었다. 근처 부동산 관계자는 "창업주 유품을 모시고 있는 것으로 안다. 관리인이 있다. 용적률이 90%밖에 되지 않아 가치가 떨어진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풍산그룹 소유의 자택으로 알고 있다. 파티를 여는 장소로 쓰는 것 같다. 상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자주 모인다. 시끄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말을 종합할 때 풍산그룹이 해당 건물을 특별한 만남 등을 위해 활용하는 영빈관(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따로 잘 지은 큰 집) 성격이다. 그만큼 류 회장이 양 전 원장을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10주기에 참석 중인 양정철 전 원장과 류진(오른쪽 빨간 원) 전 회장. /더팩트 DB |
류 회장이 양 전 원장의 인연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있다. 지난 2019년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역시 양 전 원장과 류 회장의 합작품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 초청은 양 전 원장이 류 회장에게 부탁해 성사시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추모식에는 양 전 원장, 류 회장 모두 참석했다.
10주기에 참석한 부시 전 대통령은 "저의 또 다른 벗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초대에도 감사합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다. 부시 전 대통령의 노 전 대통령 추모식 참석 막후에 류 회장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또, 류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난 자리에 미국 측 관계자로 유일하게 배석했다. 당시 자리엔 문 대통령, 부시 전 대통령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그리고 류 회장이 전부였다. 문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제가 평소에 류진 회장님을 통해서 대통령님의 근황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류 회장과 문 대통령도 인연이 있다. 문 대통령은 1989~1990년 노동자 해고로 풍산이 파문을 일으켰을 당시 풍산의 고문 변호사를 맡은 인연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 방미 당시 류 회장도 참석한 경제인들과 차담회 자리에서 "기업인들이 나를 친노동이라고 하는데, 제가 노동변호사를 오래 했기 때문에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업의 고문변호사도 오래 많이 했기에 친기업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5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접견에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한 류진(왼쪽)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부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정의용 안보실장.(왼쪽부터) /뉴시스 |
정·재계에서는 부시 전 대통령 집안과 가장 가까운 인사로 류 회장을 꼽는다. 류 회장과 부시 가문의 인연은 부친인 고 류찬우 선대 회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지난 1992년 당시 방위산업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던 류찬우 회장은 방한한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에게 미국 현지법인 준공식 방문을 요청했고, 아이오와주 법인 준공식에 영부인이었던 바버라 부시 여사가 대신 참석하면서 친분이 돈독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부시는 류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병산교육재단이 설립한 풍산고등학교에서 2005년 11월 특강을 하기도 했다. 류 회장은 또, 2018년 4월 별세한 바바라 부시 여사 장례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2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도 류 회장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함께 사절단에 포함됐다. 또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초기, 앨 고어 전 부통령의 방한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정도로 미국 정치권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를 해온 대표적 '미국통'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진 기업은 아니지만, 풍산그룹과 류 회장은 문재인 정부는 물론, 그 전 정부와도 관계를 맺어왔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16일 청와대 인왕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특사단 오찬을 진행했는데, 류 회장도 이 자리에 있었다.
이후 같은 해 6월 30일 문 대통령이 미국 CSIS 초청 만찬 연설에 류 회장도 참석했다. 류 회장은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전 미 국방장관 등 미국 전직 고위 인사와 나란히 앉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7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청와대 만찬에도 참석했다. 당시 재계 10위권 기업들도 초청받지 못한 가운데 류 회장이 초청되면서 매우 이례적이라는 말들이 나온 바 있다.
류 회장은 문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으로도 꾸준하게 함께했다. 류 회장은 △2017년 6월 28일 한·미 비즈니스 서밋 △2018년 3월 22~27일 베트남·UAE △2018년 7월 12일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 △2019년 9월 2일 한-태국 비즈니스 포럼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