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오른쪽)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오는 4월 7일 서울과 부산은 보궐선거를 치른다.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선거판이 불붙을 전망이다. /남용희 기자 |
올해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석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후끈 달아올랐다. '임기 1년' 짜리지만 대선 전초전이라 불리는 만큼 여야가 사활을 걸고 있다. 여당은 이번 선거로 두 전직 시장의 오명을 떨쳐내고 재집권을 위한 승기를 잡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야당은 현 집권 세력의 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며 벼르고 있다. '정권 심판론'이 외면당했던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때와는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새해를 맞아 불붙은 선거 정국을 인물, 구도, 이슈를 통해 들여다보고 판세를 흔들 변수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더라도 멋지게 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주길"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각각 40%, 3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4·15 총선에서 압승을 이끌었던 'K방역'의 성공 신화는 코로나19 3차 대유행과 백신 확보 혼선으로 흠집 나고 있다. 상반기 코로나19 확산 규모와 백신 도입 등 추이에 따라 코로나19가 이번에는 여권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 전망이다. 정부 방역활동 기대감에 균열이 생기면서 억눌려 있던 부동산, 일자리 문제 등 경제 이슈들이 폭발하면 야권의 '정권 심판론'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불미스러운 사태로 치르는 선거인 만큼 정치권이 책임감 있는 자세로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라는 바람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 하락이 고착화하면서 민심이 21대 총선 때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 광진구 기아자동차 어린이대공원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는 모습. /남용희 기자 |
◆기울어진 운동장?...2020 총선 때와 달라진 민심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심상찮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2019년 '조국 사태' 때 이후로 두 번째로 40%대가 붕괴된 이후 5주 연속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도 동반 하락해 정당 지지율 1위를 국민의힘에 넘겨줬다. 대통령 지지율 30%대는 여당과 힘의 균형을 맞추며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역전하면 레임덕(집권 말 권력누수 현상)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최근 '추미애-윤석열 논란'과 '부동산' 문제가 지지율 급감의 배경으로 꼽힌다.
선거판을 앞두고 정국 주도권의 흐름은 야권에 넘어간 것일까. 전문가 전망은 엇갈린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많이 상승했다. 운동장이 반대로 기운 상태"라며 "여당이 불리한 환경에서 선거를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라며 "반전 카드가 별로 없다. 부동산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코로나19 이슈도 급히 불을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백신 접종을 한다면 'K방역이 성공했다'는 얘기가 나올 텐데 상반기 백신 접종이 힘들 수 있다. 다른 경제 이슈가 나아지거나 남북관계가 확 회복될 것 같지도 않다"고 전망했다.
반면 민주당이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때 압승해 갖게 된 탄탄한 조직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에서 25명 구청장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은 조은희 서초구청장 1명뿐이다. 시의회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01명' 대 '6명'이다. 부산시도 16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여권이 13곳을 휩쓸었다.
강상호 정치평론가(국민대 교수)는 "현재 구도로 봐선 국민이힘이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 야당 입장에선 이를 이용하려 하겠지만 실제 진보 지지층에서 약간 이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잘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회초리로 때려야 할 때 몽둥이로 때리면 몽둥이 때리는 사람이 욕먹는다. 정권 심판론을 몰아붙이기엔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정권 실정론 관점에서 보면 야당에 기회가 왔다. 180석 의석을 확보했던 민주당이 협치와 통합이라는 국민적 바람을 잘 받지 못했고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국내외 정책들이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 개혁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해 국민에 굉장힌 피로감을 안겨줬다"고 했다. 다만 고 평론가는 "하지만 야당도 지금 정도로 해선 정권을 잡을 수 있겠나. 여당을 비판해야 하는 건 맞지만 야당이라고 해서 국민이 확실한 대안 정당이란 인식을 받을 수 없으니 선거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의 확산 추이는 21대 총선에 이어 올해 보궐선거에서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서울역 코로나19 임시 선별 검사소 모습. /이선화 기자 |
◆코로나19 방역 성패·야권 단일화 주요 변수...검찰개혁·젠더 이슈는 영향 미미?
정치권에선 코로나19 3차 대유행 상황을 이번 선거의 핵심 변수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선거를 앞둔 4월 초순 확진자 수가 100명대 아래로 줄어들고 외신의 'K방역'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실정, 일자리 문제, 조국 사태 등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최근 확진자가 1000명대 전후로 발생하고 'K방역'에 대한 국민 신뢰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권 내에서도 나온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피해 자영업자, 소상공인, 저소득층의 어려움과 피로감도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과 백신 확보에 대한 혼선이 보궐선거 때까지 지속될 경우 지난 총선 때와 달리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은 연일 '백신 확보 실패'를 부각하며 정부·여당을 추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코로나19 백신 확보 지연 사태 관련 긴급현안질의에 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여권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우선 '2월 중 백신 접종'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또 코로나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 임대료 지원을 포함한 재난지원금을 100만~300만 원씩 지급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특수형태근로자와 프리랜서에게 50만~100만 원 긴급고용안정지원금도 설 명절 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강 평론가는 '코로나19'에 대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선거를 예측하긴 상당히 어렵다"면서도 "코로나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치료제나 백신이 들어와 확장되느냐 잡히느냐에 따라 (선거 판세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현상이 심화된다면 여당으로선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유리하냐 불리하냐 하는 것은 대응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여진다. 야당도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이면 국민이 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 펜데믹에 대해 집권당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점수를 딸 수 없고 힘을 합쳐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 평론가도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민생이 살아난다면 대외 변수로서 상당히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 상태로 지속되지 않고 급격히 안정되고 2월에 백신이 시작되면 심리적인 면역 효과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로는 '야권 단일화'를 꼽았다.
여야가 맞붙고 있는 검찰 개혁 이슈는 변수로 작용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개혁 이슈 자체에 대해선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대안 제시 없이 무조건적인 비판은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강 평론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비난하고 정부·여당이 검찰총장을 비정상적으로 몰고 있다고 하지만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선 굉장히 공감하고 있다. (검찰-법무부 갈등이) 꼭 야당에 유리하다고 볼 순 없다. 야당이 검찰 개혁을 비판만 하기보다 '개혁이 돼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안 된다'고 (대안을 제시)해야 국민이 대안 세력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젠더나 부동산 이슈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이번 보선 원인을 제공한 젠더 이슈는 야권뿐 아니라 범여권에서도 압박하는 여당의 최대 약점이다. 정의당은 지난해 11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기획단 구성을 완료한 후 "정의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우리 앞에 놓인 3대 위기(성폭력 위기, 주거 위기,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선거로 규정한다"며 기획단 인원을 남녀 동수로 구성한 데 대해서도 "내년 4월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성평등 선거', '반성폭력 선거'의 원칙 아래 치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고 평론가는 "젠더 이슈를 비롯한 시민 삶과 직결된 정책 이슈는 여야 모두 좋은 내용을 제시할 것이라 변별력을 갖는 이슈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젠더나 부동산 이슈가) 후보 간 차별성을 강화시킬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이 미래 비전을 제시하길 바랐다. 지난해 4월 15일 서울 은평구 불광 제7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21대 총선 투표를 위해 줄 선 모습. /이새롬 기자 |
◆"미래 비전 제시하는 선거되길"
올해는 예정에 없던 선거를 맞이한다. 유권자 입장에선 두 전직 시장의 성추행 파문으로 800억 원 넘는 혈세를 들여 약 3년 만에 재신임 의무를 등 떠밀려 안게 된 셈이다.
제도권 정치 바깥에 있는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정당들이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사)대한민국유권자총연맹 관계자는 "안 해도 될 선거를 하는 거니까 정당은 후보자를 제대로 검증해 공천하는 게 맞다. 유권자 입장에선 정당의 공천제가 필요한 이유가 그건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보선에 참여하기 위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책임 불공천' 당헌을 전 당원 참여율 26%로 바꿨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불필요한 예산이 집행되게 된다. 입법을 해서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후보자나 정당에서 어느 정도 책임질 필요가 있다는 걸 입법화 시켜야 한다"며 "향후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 책임져야지, 선의의 유권자들이 피해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이 공직선거법 개정안, 이른바 '박원순·오거돈 방지법'을 발의했다. 대통령 선거를 제외한 모든 공직선거 당선인의 중대한 과실 등의 사유로 실시되는 재보선에선 원인을 제공한 당선인을 추천했던 정당은 후보자를 낼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확보한 여당 협조 없이는 처리가 어려워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번 선거는 미래 비전 제시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바람도 나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이번 선거가 대선을 앞두고 상징적인 의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1년짜리' 시장 선거라 실질적으로 시민에 큰 영향을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그런 만큼 이번에는 승리하기 위해 규정도 원칙도 무시하면서 선거에 임하는 모습보다 국민에 비전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보선 공천을 위해 당헌·당규를 개정한 점을 거론한 뒤 "이왕 후보를 내는 거라면 과거처럼 흑색선전하고 조직을 동원하는 구태적인 선거가 아닌 정책적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선거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설령 지더라도 오히려 다음 대선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야당도 현재 보편적 전략이 여당 흠집내기, 정권 심판론인데 단순히 반대를 통한 승리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정당으로서 역량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선거가 됐으면 좋겠다"며 "정당들이 '지더라도 멋있게 지겠다. 이후의 비전을 다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선거에 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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