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기획-'친문' 권력의 해부③] '정권 재창출' 향한 후계자 판짜기 시작됐다
입력: 2020.12.08 05:00 / 수정: 2020.12.08 05:00
친문그룹의 후계자 찾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본청을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이새롬 기자
친문그룹의 '후계자' 찾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회 본청을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이새롬 기자

여권 내 대권 구도가 출렁이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자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친문(親文)그룹'이 공개적으로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이외의 '제3후보론'을 언급하며 판 키우기에 나섰다. 2004년의 친노(親盧)는 집권당의 주류가 된 동시에 구심력을 잃고 분화했다. 친문으로 진화한 이들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포스트 문재인'을 찾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더팩트>는 2012년 문재인 대통령이 친노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면서 '친노의 친문화'가 진행된 과정, 21대 국회에서 세분된 친문 계파를 정리하고, '친노그룹'의 후계자 선택 방정식을 2020년 현재에 적용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차기 대권 구도를 전망한다. <편집자 주>

'제3후보론'으로 판 키우기·구심점 역할 자처…비전 제시 관건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양강 구도를 필두로 집권당 내 계파가 이곳저곳으로 갈라지는 가운데 당 외곽에서 사단법인 '민주주의 4.0 연구원'이 탄생했다. 문재인 정권 창출 최대 주주인 친문그룹이 '열린우리당 때와 같은 분열은 절대 안 된다'라는 강한 열망으로 여러 계파를 긁어모아 큰형님 노릇을 자처한 것이다. 차기 대권주자 '3후보론'으로 판을 키우고, 동시에 특정 인물이 아닌 '정당·정책 중심' 후계자를 선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친문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권력이 이양되려면 무엇보다 국민 다수를 사로잡을 '미래 비전' 제시가 우선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과연 민주당의 20대 대통령 후보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될 것인가.

친문그룹은 최근 제3후보론을 띄우고 있다. 그 대상으로 정세균 국무총리(왼쪽), 이광재 의원(가운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론된다. /더팩트 DB·이광재 의원 페이스북
친문그룹은 최근 '제3후보론'을 띄우고 있다. 그 대상으로 정세균 국무총리(왼쪽), 이광재 의원(가운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거론된다. /더팩트 DB·이광재 의원 페이스북

◆정세균·이광재·임종석 등 '판 키우기'

최근 여권에서 '제3후보론'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친문 적자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재판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사석에서 "김 지사는 2심 판결로 사실상 버려진 카드가 됐다"고 했다.

친문 홍영표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상황이 변하면 제3, 제4 후보가 등장해 경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을 잠재적 대권 후보군으로 끌어올렸다. 당내에서는 제3후보군으로 이인영 통일부 장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조국 전 법무장관 등도 거론된다.

2012년 친노그룹에 있어 문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 지지층과 중도를 아우를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국정운영 경험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후계자로 적격자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 '최장수 총리'로 국정운영 경험이 풍부하고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때 민주당에 잔류한 동교동계로, 친문 핵심 인사들과는 거리가 있다. 4·15총선에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에 압승하면서 독주했던 이 대표 지지율도 정체된 상태다.

이낙연 대세론이 흔들리자 당내 인사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친분이 깊지만 아직은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은 상태"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살아 돌아온 뒤 지지율 상승세에 올라탔지만 지난 대선 경선 때 여파로 친문과 깊은 갈등의 골이 남아있다. 또 21대 총선에서도 계파 확장에 실패하며 당내 입지가 좁아졌다.

이 가운데 거물급 인사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활발해지는 모습이다.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정 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보건의료', '그린뉴딜', '국민소통' 세 분야에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정세균계는 최근 과거 대선캠프라 불렸던 '광화문 포럼' 공부 모임을 재개했다. 4선의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 회장직을, 3선의 이원욱 의원과 재선 안호영 의원이 각각 운영위원장과 간사를 맡고 있다. 광화문포럼에 참가하고 있는 현역 의원은 약 50여 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재 의원은 지난 3일 '노무현이 옳았다' 저서를 펴냈다. 그는 또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킹메이커'로 나설 것인지 묻자 "노 전 대통령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며 대권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 보좌관 출신으로,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이 의원이 책 출간을 계기로 기지개를 켜고 여권 대선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후 '업무 협약식'을 명분으로 경기 고양시, 전남 완도군, 경북, 대구 등 각 지역을 돌며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그는 2017년 대선 과정에 문재인 캠프에 영입돼 대선 실무를 총괄했던 '광흥창팀'에서 핵심 역할을 한 신문(新文)이다.

민주주의 4.0은 특정 인물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정권 재창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창립총회 모습. /도종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민주주의 4.0은 특정 인물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정권 재창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창립총회 모습. /도종환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친문의 후계자 고민은 민주주의 4.0연구원 출범으로 이어졌다. 과거 친문 핵심 모임으로 꼽힌 '부엉이 모임' 출신 전해철, 홍영표 의원 등 56명이 참여했다. 정치권에선 친문계가 공개적으로 '제3후보'를 띄우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고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민주주의 4.0 창립 취지문에도 "4번째 민주 정부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성공하는 정부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며 이들 모임이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천명했다.

다만 친문은 특정 정치인 그룹으로 인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대신 중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모색하면서 차기 정권의 공약을 당 차원에서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양한 후보군을 키우고, 대선 국면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서 안정적인 차기 대선 구도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배경에는 2004년 다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152석을 얻으며 과반 여당이 됐지만 대통령과 당 지도부 간 갈등, 계파 분열로 선거에서 참패를 거듭, 정권까지 내줬다. 18대 대선 패배 경험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18대 대선에서 패배 후 친문은 대선 패배 요인으로 전략 부재, 지도부 부재 등을 꼽았다. 당시 대선후보 캠프 소통2본부장을 맡았던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선거는 전략, 기획, 정책, 홍보, 유세 등 각 부분의 중심이 있고 이 전체를 중재하는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며 "각 부분을 총괄하는 지도부가 없는 상태로 출범했다"고 자성했다.

특히 사실상 각 계파를 대표해 선대위원장이 10명이었던 구조에 대해서도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는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는 동전의 뒷면을 드러냈다"며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보고서가 제출되고 쏟아져도 논의만 무성하고 누구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권 재창출 과정에서 이해찬 전 대표의 역할이 여전히 영향력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9월 22일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 전 대표. /남윤호 기자
정권 재창출 과정에서 이해찬 전 대표의 역할이 여전히 영향력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9월 22일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 전 대표. /남윤호 기자

때문에 뚜렷한 대권주자가 버티는 상황이라면 친문이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이들의 가장 큰 우려는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한 붕괴"라며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면 이 대표에 힘이 실릴 것이고, 이를 친문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와의 연속성, 문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층을 고려하면 결국 친문 내에서 후계자를 택할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는 현직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후임으로 민다는 통설도 존재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대선 경선 단위에서 후보는 친문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친문계 혈통이 확실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이념 정체성이라도 최대한 민주진보 진영과 최대한 유사한 인물이어야 한다"며 "이 지사가 진보 선명성이 뚜렷하지만 (친문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친문계는 (자신 중에) 누군가를 키우려고 할 것이다. 적자를 택해 그를 중심으로 비전을 만들어서라도 권력 승계를 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여러 변수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일찌감치 대권 레이스 밖에서 몸을 풀고 있는 후보들이 지치면 '교체자' 또는 '페이스메이커'를 투입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민주주의 4.0을 중심으로 한 친문이 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대선 당내 경선은 친문 세력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점도 친문의 '후계자 간택론'에 신빙성을 더한다. 민주당은 2012년 기성 민주당과 친노계 '혁신과 통합'이 결합하던 당시 대선 등 공직자 선출 구조를 '지지층' 중심으로 바꿨다. 일반 국민을 포함해 당원‧대의원이 투표소 투표 외에 모바일 투표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이해찬 전 대표 역할론도 부상하고 있다. 한 친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문·친노 진영에서 이 전 대표만큼 상징성을 갖고 있고, 경륜과 경험, 능력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갖고 있는 분이 없다"며 "그런 면에서 당의 재집권을 위해 이 전 대표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더구나 전 대표로서 180석이라는 큰 성과를 냈기에 당원이나 의원 사이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하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후보 선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후보가 정해지면 재집권을 위해 역할을 하시리라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퇴임 후에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 정책 핵심 기구인 '미래산업 K-뉴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지난 6월 남북협력사업 발굴 등을 하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 전 대표 측근은 "회고록을 집필하시면서 기분 좋게 잘 지내시는 것 같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누구'보다 '어떻게'가 관건...미래 비전으로 국민 공감 얻어야

여권에선 내년 4월 재보선이 후계자 논쟁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이 대표의 리더십이 공고해지고, 그를 중심으로 구심력이 작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패배할 경우 친문 내에서 '제3후보 대안론' 부상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후계자가 누구냐"보다 어떤 미래 비전을 제시해 국민에 호소할지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4.0이건 민평련이건 중요한 건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사람도 안 모이고 국민적 지지도 얻기 어렵다. 정교한 청사진을 마련해 국민 지지를 얻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다. 이어 "어떤 조직이라도 특정인을 지지한다는 목적이라면 특정인이 없어지거나 변수가 생기면 조직 자체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또 계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에 그에 탈피해 차별화하는 과제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차기 대권주자 선택 과정에서 누가 되느냐보다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2017년 5월 9일 당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 /이덕인 기자
전문가들은 차기 대권주자 선택 과정에서 '누가 되느냐'보다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2017년 5월 9일 당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 /이덕인 기자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차기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 국가 비전을 리셋(초기화)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대통령 본선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본다. 여야 모두 이것이 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내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의 공통점인 '시대정신'을 차기 대권주자의 자질로 꼽고 있다. 친문계 한 의원은 "제일 중요한 건 시대정신이다. 한두 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특히 이번 코로나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산업의 새로운 방향도 그렇고 그린뉴딜 산업과 문명 전체의 변화도 있다. 또 기본소득을 쟁점화하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처럼 보편적 복지 체계를 갖춰나가는 문제도 이제 유보할 수 없는 숙제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환경 속에서 외교·안보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행정수도 완성 문제도 새로운 전환에 걸려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방향은 있는데 이를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제도화, 정책화하는 게 더디다. 이를 차기 정부에선 보다 책임 있게 대응하면서 풀어가야 한다"며 "이런 시대정신을 제대로 대변해내고 추진할 수 있는, 적어도 앞에서 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차기로 선택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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