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여야 협치로 6년 만에 법정시한 내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국민적 요구가 있는 어떤 법안들은 아직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가 국민의 힘 법사위원 전원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
'중대재해기업처벌법·낙태죄 폐지'에 응답없는 국회
[더팩트|문혜현 기자] 12월이다. 거리엔 이따금 캐롤이 들려오고, 날씨가 꽤 추워졌다. 국회는 '예산·입법' 시즌을 맞아 분주하다. 다행히 내년도 예산안은 여야 협치로 어렵게 문턱을 넘었다.
이제 정기국회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여당은 임시국회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보면 '연말의 악몽'이 떠오른다. 21대 총선 직전 국회는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법(공수처법) 통과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극심했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짐은 물론이고, 연일 늦은 본회의를 개최했다. 말 그대로 '패스스트랙 2탄'이었다.
올해는 조금 다를까 싶었지만 기대는 내려놓아야 할 듯하다. 여야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놓고 팽팽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연내 공수처 출범을 위해 야당을 압박하고 있고, 야당은 필리버스터 등 전략을 고심 중이란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들은 각각의 '대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아무리 언급돼도 걸음이 느린 법안이 있다. 여야의 극적 합의가 이뤄진 지난 2일, 97건의 민생법안이 통과됐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낙태죄 폐지 관련 법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중대재해법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중대재해법 관련 법사위 공청회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주로 논의됐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사업주 처벌 강화가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국민의힘 법사위 의원들은 윤호중 법사위원장의 회의 운영방식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전원 불참했다. 정치적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 낙태죄 대체 법안 입법을 오는 31일까지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4월 판결 이후 사회적 공론장에선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국회 공청회는 이달 처음 열린다. /배정한 기자 |
오는 8일 열릴 낙태죄 폐지를 논하는 공청회에서는 반대 의견을 가진 진술인이 8명 중 6명을 차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이를 두고 "법사위 낙태죄 공청회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외쳤던 이들이 한통속으로 대놓고 뒤통수 때리는 격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국회에 대체 입법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시한은 올해 12월 31일이다. 여야는 12월이 돼서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듣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국회에 발의된 낙태죄 폐지 관련 형법 개정안은 5개다. △형법에서 '낙태의 죄' 규정 조항을 전면 삭제하는 민주당 권인숙·박주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안 △'낙태의 죄' 규정은 유지하고 임신 14주 이내의 낙태만 전면 허용하는 정부안 △'낙태의 죄' 규정은 유지하고 임신 6주 이내의 낙태만 전면 허용하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안 등이 계류 중이다.
헌재가 이미 '낙태의 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일부 법안들은 그 조항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에 여성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조만간 열릴 공청회 분위기는 어떨까. 여야는 예산안 합의에 박수를 치며 '민생'을 확보했다고 으쓱하고, 공수처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가장 논의가 필요한 두 법안엔 눈을 감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의'에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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