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탈북민 유튜버 장명진 씨는 지난달 27일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전 이미 방송인 아닐까요"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목동=이동률 기자 |
올해 'Echo DPRK'란 유튜브 채널에서 최초의 북한 유튜버가 등장했다. '은아'라는 이름의 여성 유튜버는 유창한 영어로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북한 당국에서 대외 홍보용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북한의 소식을 전하는 유튜버들이 있다. 바로 '탈북민 유튜버'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알리기 위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특히 20·30 청년 탈북민 유튜버들은 정치색 없이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 탈북민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팩트>는 3명의 20·30 청년 탈북민 유튜버를 직접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1세대 '탈북민 유튜버' 장명진 인터뷰
[더팩트ㅣ목동=박재우 기자] 지난해 11월 KBS Joy 예능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코미디언만큼 웃긴 유튜버가 등장했다. '북한남자 탱고' 장명진(34) 씨다. 당시 탈북민인 장 씨가 나온 영상은 누적 조회 수 475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어려웠던 북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특유의 유쾌함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를 계기로 장 씨는 'KBS 스탠드UP'과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다, 최근엔 '이웃집 찰스'에서 어머니와 티격태격하는 '케미'(케미스트리의 줄임말)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줬다. 그는 유튜브를 2016년 처음 시작해 현재까지 동영상 300여 개를 업로드 했고, 구독자 4만 명을 보유한 베테랑 유튜버다. 그가 올린 '북한에서는 남한을 어떻게 생각할까?' 영상은 80만 회 조회 수를, '북한이 남한보다 좋은 점 TOP3' 제목의 영상은 46만 회를 기록했다.
지난달 27일 <더팩트>는 서울 목동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장 씨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방송 모습 그대로 유쾌한 성격을 드러냈다. 장 씨는 자신을 소속사 없이 혼자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알아서 하는 '1인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했다.
유튜브와 방송에서 활약하기까지 그의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직장생활을 하다 건강 악화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현재는 크리에이터 방송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이동식 밥차'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장 씨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20·30 청년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유튜버라는 직업도 탈북민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북한과 탈북민의 삶을 알리다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방송인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전 이미 방송인 아닐까요"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전업 크리에이터, 또 성공한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로 진행 중이던 방송이 취소돼 생업에 위기를 느꼈고, 결혼 걱정을 하는 등 여느 청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장명진 씨는 "질문을 반복해서 듣고 대답하다 보니 같은 대답을 하는 게 귀찮아서 유튜브를 하게 됐다"고 유튜버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장 씨 유튜브 채널. /'북한남자 탱고' 유튜브 갈무리 |
◆"유튜브, 시작은 귀찮음이었다"
장 씨는 가족과 함께 탈북한 뒤 남한에 정착해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탈북민이란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장 씨의 학급에는 북한생활에 대해서, 또 남북의 문화 차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를 계기로 장 씨는 틈틈히 '강연'을 하면서 일반인들이 탈북민들에게 궁금해 했던 점들을 해소해 주었다.
대학 시절에도 강의했는데, 중복된 질문이 많았다고 했다. 예컨대 '탈북민이 한국에 처음 도착해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북한에서는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등과 같은 질문은 수없이 듣고 또 들었다.
이와 관련 장 씨는 "2016년 지인들로부터 유튜브 플랫폼을 처음 알게 됐는데, 같은 질문을 듣고 같은 답을 하는 게 귀찮아서 유튜브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1세대 탈북민 유튜버의 탄생 비화(祕話)치고는 다소 허무했다. 이후 그는 주변에서 좋아했던 북한 노래 '왕감자'를 불러 올리기도 하고, 다른 여러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유튜버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장 씨는 유튜버로서의 목표에 대해 "횟수로 4년 차가 됐는데, 아직 수익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좋아하는 일로 수익을 창출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
◆'A부터 Z까지' 혼자 하는 '1인 크리에이터'
장 씨는 '유튜브 촬영 과정'을 묻는 질문에 "주제 설정이 90%에 해당한다"면서 "이슈가 되는 '북한 키워드'를 확인하고, 댓글에서 중복된 내용을 보고 주제를 설정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대본을 쓰기 시작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주제가 결정되면 작성하는 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할 시간도 충분히 갖고 대본을 작성한 뒤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장 씨는 유튜버로서의 목표에 대해선 "횟수로 4년 차가 됐는데, 아직 수익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좋아하는 일로 수익을 창출하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는 것은 힘들지 않나'라는 질문엔 "가끔 편집에 도움을 주는 지인들이 있다"면서 "(수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사정이 아니다. 제가 직접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악플, 해코지 당하는 건 아직도 힘들어"
장 씨는 촬영 중 겪었던 에피소드와 관련해 "3·1절을 맞아 광화문에서 유튜브 촬영을 한 적이 있다"며 "주제는 북한에서도 3·1절을 기념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묵념하고 촬영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태극기 집회를 하시던 어느 어르신분들께서 저에게 해코지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코지를 당했던 이유에 대해 "제가 촬영에서 '북한남자 탱고'라고 소개를 하니 이를 듣고 '빨갱이'라면서 한 시간 동안 소리를 치셨다"면서 "당시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빨갱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가장 안 좋았던 날로는 그날이 기억이 남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구독자 대부분은 응원하는 분위기이지만, 때로는 탈북민 유튜버라는 이유만으로 악플이 남기도 한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은 남한생활이 20년 가까이 됐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장 씨는 예능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 출연 이후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KBS Joy 유튜브 갈무리 |
◆방송 출연 多…"전 이미 방송인 아닌가요?"
'무엇이든 물어보살' 출연 이후 높아진(?) 인지도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는 "술집에 가면 20대, 30대 분들은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 받아주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장 씨는 "진지하게 랩퍼가 꿈이어서 나갔는데, 방송에 나가 개그맨이 돼서 돌아왔다"면서 "사람들은 저를 다 개그맨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그는 출연한 것 자체에 대해선 만족하고 있었다. 장 씨는 "몇몇 방송에서 북한에 대한 우울하고 끔찍한 내용만 방영되곤 하는데, 탈북민도 유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저같이 이런 유쾌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잘 보여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방송인이 되고 싶은 것이냐'는 질문엔 "전 이미 방송인 아닐까요"라며 자신감을 보인 뒤 "유튜버가 됐든, 랩퍼가 됐든, 방송인이 됐든 인지도를 키우고 싶다. 방송을 일회성이 아닌 꾸준히 해 방송인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장 씨는 요즘 고민에 대해 "제 나이 또래처럼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이동률 기자 |
◆"저도 30대 청년, 결혼이 꿈이에요"
올해로 34살인 장 씨는 30대 청년다운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제 나이 또래처럼 결혼하고 싶다"면서 "집도 사고 싶고, 멋진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년부터 결혼하고 싶어졌다"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지만, 경제적 상황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프리랜서 활동 때문에 경제적 문제라는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장 씨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적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올 초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에 섭외돼 부푼 희망을 안고 준비를 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됐다. '다른 30대 청년들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질문에 그는 "통일이 고민이라고 하면 와닿지 않을 것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 계속 있었다면 현재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묻는 질문에 "아마 굶어 죽었을 확률이 제일 높다"며 "고난의 행군 시대에 우리 집은 그 누구 집보다 가난하고 힘들고 버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살았다면 아마 장사를 하고 있을 것 같다"며 "친할머니도 북한에서 두부장사를 하셨고, 성격상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고 사고, 파는 걸 좋아해서 장사를 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갈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콘텐츠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북관계가 개선돼 탈북민도 북한에 갈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장 씨는 "구독자들에게 제 고향에 가서 라이브로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북한 여행'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벌써 썸네일(유튜브 미리 보기 이미지)까지 생각해 놨다"고 기대에 들떠 답했다.
또한 그는 "북한 사람들에게도 유튜브가 개방된다면 음식 콘텐츠를 소개해 주고 싶다"며 "북한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국수가 될지 브런치가 될지 궁금하다.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