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文의 침묵'과 '노무현 소통법'
입력: 2020.12.01 05:00 / 수정: 2020.12.01 05:00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17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 후 단상에서 내려오는 문 대통령. /더팩트 DB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도 침묵을 유지하고 있어 비판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17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 후 단상에서 내려오는 문 대통령. /더팩트 DB

내부 갈등 침묵 文대통령, '정치는 말' 노무현 소통법 돌아보길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시간 여행이 가능한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을까. 과거, 아니면 미래? 행복했던 날, 실수를 되돌리고 싶은 날, 불행이 시작된 날 등 다양할 것이다. 누구나 본인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 그날 일 수도 있겠다.

요즘 정치권에선 과거의 본인과 싸우는 일들이 종종 있다. 몇 년 전 했던 말이 결국 돌아와 화살이 되는 경우다. 상대를 비판했던 말과 글들이 본인 처지가 바뀌면서 적용될 때인데, 요즘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치는 말'이라는 게 노무현 소통법이었다. 통하지 않고 꽉 막혀 숨 막히는 박근혜 정권."

누구의 글일까. 2016년 8월 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트위터 글이다. 이젠 지루하기까지 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에 침묵하는 문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2003년 3월 9일 '노무현 대통령, 검사들과의 대화'가 생방송 됐다. 대통령이 검사 인사를 놓고 검찰 반발이 거세지자 직접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함께 검사들과 대화에 나선 것이다. 17년 전이지만, 노 전 대통령이 참 멋있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착오나 과오가 있다면 흔쾌히 인정할 건 인정하고 모자람이 있으면 제가 대통령으로서 검찰 행정에 참조하고 반영하겠다. 법무부 장관은 이 문제를 스스로 수습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나섰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 이같이 말했다. 소통을 통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상대를 설득, 타협점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약 두 시간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과 검사들은 치열하게 설전을 펼쳤다.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지요?"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당시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도 현재 진행되는 검찰개혁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검사들과의 대화를 만류했다. 노 대통령이 생방송에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2017년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인근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국민들과 맥주를 마시며 고충을 듣던 모습. / 청와대 제공
2017년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인근 호프집을 깜짝 방문해 국민들과 맥주를 마시며 고충을 듣던 모습. / 청와대 제공

그런데 17년 전 노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를 다시 꺼낸 이유는 그때와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라면 강 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과 달리 이번 사태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일 대 일 데스매치 수준 정도가 아닐까 싶다.

17년 전 영상을 다시 보며 주목한 점은 노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발언에도 노 대통령은 꾹 참으며 대화 내용에 집중했고,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이런 말을 남겼다.

"성명 문구를 보면 모욕을 느끼지만, 만나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탄없이 말해준 것에 감사하다. (중략) 돌아가서 여러 가지 판단을 해보겠지만, 저의 처지도 소신도 존중할 건 존중해 주시고 여러분들 직무의 가치와 소신이나 신념들 존중하면서 제대로 된 검찰,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검찰 만들어 봅시다. 박수나 한번 치고 넘어갈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노무현 정부 2기로 인식됐다. 참여정부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말이다. 문 대통령도 초반 소통을 강조하며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발표하고, 재계 회장단과 맥주를 마시고 퇴근길 직장인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모습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며 이렇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가슴 설레했다.

3년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총 6번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전 '불통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총 5번의 기자회견을 했으니 그렇게 불릴 만도 하다. 그런데 소통을 강조한 문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경제, 외교 등등 할 일 많은 대통령이 추 장관과 윤 총장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국민 피로도가 상당한데, 임면권자인 문 대통령이 침묵하고 있으니 '제발 정리 좀 해주세요'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아무리 밖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도 내부의 안정을 다지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 대통령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일단 내부의 결속력부터 재정비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그리고 문 대통령도 한 번쯤 박 전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 말과 글을 되돌아보는 게 어떨지 감히 부탁드려 본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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