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민주당,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뜨거운 여론에도 아리송한 태도
입력: 2020.11.19 05:00 / 수정: 2020.11.19 05:00
정치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쉽사리 당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을 위한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 /남윤호 기자
정치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쉽사리 당론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서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을 위한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 /남윤호 기자

정의당 "집권여당, 이렇게 중요한 것도 결정 못하나"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순 없지만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는 (태도가) 섞여서 나타나고 있는 것인데, 이 정도 (여론) 분위기인데 집권여당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왜 결정하지 못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최근 연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미온적인 태도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 원내대표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이 정도 상황이면 '세부적인 양형 기준이나 내용을 논의해서 검토하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건 국민의 동의가 있기 때문에 그 법으로 추진하겠다' 정도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그저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하겠다'라고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정기국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법은 노동자의 사망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기업과 경영 책임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노동자 중심 법안이다. 강 원내대표가 지난 6월 정의당 당론으로 발의했고, 최근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의당은 해당 법 통과를 위해 지난 9월 7일부터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법은 이천 화재사고 등 연이은 산재에 따른 국민 여론에 힘입어 국회 국민청원 동의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법 통과 목소리가 쏟아졌고, 국민의힘 의원도 다수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박주민 의원이 강 의원 법안보다 한층 완화된 중대재해법을 발의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장철민 의원도 중대 재해에 대한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가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새롬 기자

민주당은 우선 강 의원 법안과 박 의원 법안, 산안법 개정안을 병행해 통과시키자는 입장을 내놨지만 실제 내부 의견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당초 연내 처리를 전망했지만, 돌연 "상임위 심의에 적극 임하겠다"며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두 법안 중 한쪽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밀당(밀고 당기기)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도 법안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저는 지난번 3당이 기후위기특별결의안에 합의한 것처럼 추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8일 정의당은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날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단순히 산재방지법이 아니고, 민사배상법도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뒷전에 둔 기업의 이윤추구 활동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피해자의 절규"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이루고자 했던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디딤돌이며, 정의당의 존재 이유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당론으로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기업에 압박되는 것은 안 하겠다는 말이다. '공정경제 3법'을 당론으로 안 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며 "당론을 지도부가 못 정하겠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당원 총투표에 부치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내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찬성하는 의원들도 당론화 추진에 나섰다. 이날 민주당 운동권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연구모임 '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민평련)'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 연내 설치와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완수로 촛불 과제 이행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민평련 대표인 우원식 의원을 비롯한 소속 의원 42명은 이날 "중대재해법으로 기업이 망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공포감 조장 때문에 개혁입법의 원칙이 훼손되거나 후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 의원은 이날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평련은 중대재해법이 갖는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당론 채택과 관련해 "지도부를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법사위원인 소병훈 의원은 "민평련은 이것을 당론화해 처리가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오늘 밝힌 것"이라며 "당론화 과정은 의원들이 함께 풀어갈 수 있다"고 가능성을 개진했다.

당 지도부가 당론 채택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힘을 싣는 의원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민평련은 공수처,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당론 채택에 힘을 실었다. 18일 우원식 의원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민평련은 공수처, 공정경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당론 채택에 힘을 실었다. 18일 우원식 의원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강 원내대표는 "지금 박 의원 안이 (법사위에) 올라와 있다. 오는 12월 1일 예산안이 통과되고 난뒤 (민주당안·정의당안·국민의힘안) 법안 논의를 시작하면 12월 9일까지 통과시킬 수 있다"며 "민주당도 말은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웬만한 의원들은 이미 무엇이 쟁점인지 다 인지하고 있을 거다. 저는 충분히 가능해졌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강 원내대표는 거듭 당정청의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했다. 그는 "(법 통과를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은 청와대도 의지를 보이는 게 필요하다. 마치 당정청이 협의해서 장철민 의원안(산안법 개정안)이 된 것처럼 비춰졌다"며 "청와대는 산업재해를 50%까지 줄이겠다고 하면서 그걸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법안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산재 사망을 줄이자"고 했지만 청와대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과는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를 두고 강 의원은 "지금 정도 국민 여론이면 기업도 반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늘 기업에 발목 잡혀서 이런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청와대가) 이럴 때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의당은 19일 전국 시도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 촉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산재 사망 사고 예방에 대한 정치권 논의가 뜨거워진 상황에서 여야가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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