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정진기(政診器)]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 누구를 위함인가
입력: 2020.11.05 05:00 / 수정: 2020.11.05 05:00
야당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선택적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야당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선택적 발언'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5년 전 직접 만든 당헌 개정에 '침묵'...물어도 대답 없고, 하고픈 말만 한다는 지적 많아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에 대한 야당의 비판 목소리가 높다. 문 대통령의 과거 언행과 다른 현재 모습, 민감한 현안 등에 대해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기 때문이다. 연장선에서 본인에게 유리해 보이는 사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선택적 발언'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든 당헌을 전당원 투표를 내세워 바꿨다. 이 당헌은 소속 자치단체장의 귀책 사유로 재·보궐선거가 열리면 '책임 정치' 차원에서 후보자를 내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5년 전 약속이었다.

이낙연 대표 체제 민주당의 책임 정치는 달랐다. 후보자를 내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책임 정치라면서, 투표율이 26.35%에 불과해 전당원 투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무늬만 전당원 투표' 논란 속에 문 대통령의 약속을 뒤집었다. 이렇게 문 대통령의 혁신 당헌은 첫 시행(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을 목전에 두고 민주당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를 두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은 위선이고 무능 정권의 대역죄"라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시인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조국 광복에 대한 강한 신념이었다면, 문 대통령의 '님의 선택적 침묵'은 나라를 분열로 치닫게 하는 파멸의 전주곡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권력 맹종자들은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것인가. 정녕 대역죄인으로 역사와 민족 앞에서 받게 될 단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본인들이 불리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꾼다. 그래서 '입진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사실 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과 선택적 발언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7월 16일과 10월 26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대통령에게 드리는 10가지 질문'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 질문들에는 △윤미향 의원 사건 관련 입장 표명 △부동산 정책 실패와 김현미 국토부장관 책임론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잇따른 성범죄 사건에 침묵하는 이유 등 민감한 질문이 대거 포함됐다. 그런데 대통령은 아직까지 답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를 주제로 내년도 예산안·국정운영 방안을 다룬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를 주제로 내년도 예산안·국정운영 방안을 다룬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과거 문 대통령의 발언을 실천한 고위 공직자가 고난을 겪는 일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17년 8월 30일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핵심 정책 토의에서 "상식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노(NO)'라고 할 수 있는 깨어있는 공직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번 국감에서 실천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위법하고 부당하다"며 상관의 지시에 NO를 외친 것이다. 이에 추 장관이 윤 총장의 과거에 대한 전방위 감찰을 지시하면서 사상초유의 법무장관 대 검찰총장 충돌이 심화되고 있지만,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강조한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어느 순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해 소득을 증가시키고, 증가한 소득으로 인해 소비가 증가하면, 결국 설비투자와 일자리가 증가할 것이라는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 시 기존 일자리가 감소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이 구상은 실제로는 높아진 급여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 사업주의 고용 축소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고, 사업주의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야당은 꾸준히 경제 정책 방향 전환을 촉구했지만, 문 대통령은 묵묵부답이다.

반면 문 대통령은 "탄소 중립은 세계적 흐름으로 적극 동참해야 한다"(3일 청와대 국무회의), "경제가 빠르게 회복 중이다"(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방역과 경제의 동반 성공, 두 마리 토끼를 기필코 잡아낼 것을 함께 다짐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 등 좋은 말(?)은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고, 네 편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여러모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목격하고 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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