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집회에 이어 오는 9일 한글날 집회에 대한 경찰의 '차벽 통제'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뜨겁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경찰병력이 집회에 대비해 차량으로 광장일대를 둘러싼 모습. /임세준 기자 |
민주당 "차벽은 방역" vs 국민의힘 "대통령, 집회 나와 경청해야"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지난 3일 열린 개천절 집회에서 광화문에 등장한 차벽과 관련해 정치권 갑론을박이 뜨겁다. 여당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 등 보수 야당을 비롯해 열린민주당·정의당도 '기본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5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집회 봉쇄와 관련해 "경찰버스에 둘러싸인 기본권의 제한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집회의 자유는 방방곡곡에서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근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만 "지난 광복절 불법 집회로 인한 전염병의 확산에서 보듯, 이번에도 자칫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에 부득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자유를 제약하게 된 정부의 고충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회 통제가 방역을 위해 필요하다며 정부의 대처를 옹호했다. 지난달 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김 최고위원(맨 왼쪽). /배정한 기자 |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집회 제한 타당성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주호영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향해 "주 원내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우선해야 하는 원내대표다. 집회 측 대변인이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이날(5일) 오전 열린 민주당 최고위에서 "지난 8·15 집회로 생업을 놓아버린 자영업자와 등교를 늦춘 학생들의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지 묻고싶다. 경찰의 봉쇄는 국민 생명 안전을 지킬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난 8·15 집회로 촉발된 위기가 이제 겨우 진정세에 접어들고 있다. 국민 생명을 정치적 목적과 바꾸는 일에 동참하지 말 것을 국민의힘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도 "(차벽 설치는) 적절하고 효과적"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는 같은 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100여명이 모인다고 했는데 수천명이 모이고,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예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한 의원은 "야당에서는 정치방역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는데, 사실은 야당에서 오히려 정치적 주장이라고 생각된다"라며 "한 명만 전염돼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이런 때는 조금의 위험요인이 있으면, 저는 과감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서 하는 게 적절하고 시기적으로도 맞았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오는 9일 집회에 대통령이 직접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부디 한글날에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나오셔서 국민의 말씀을 듣고 본인 생각을 밝혀달라"고 강조했다.
주 원내대표도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방역을 보건당국이 하는 게 아니라 경찰이 하는 '경찰 방역국가'가 됐나"라며 "왜 문 대통령께서 나오셔서 국민의 말씀을 듣고 잘못된 걸 고치려 하지 않고, 경찰을 앞세워 이렇게 철통같은 산성을 쌓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열린민주당 등 범여권에서도 이번 '차벽 진압'이 적절치 못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주호영 원내대표(왼쪽부터), 김종인 비대위원장, 이종배 정책위의장. /이새롬 기자 |
김종인 비대위원장도 "정부가 뭐가 두려워 막대한 경찰력과 버스를 동원해 도시 한복판을 요새화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민주주의가 발전은 못할 망정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경찰 차벽을 '재인산성'이라며 질타하자 민주당도 지난 2008년 '명박산성'을 언급하며 맞서기도 했다. 이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명박산성은 국민을 막은 것이고 문리장성은 바이러스를 막은 것이다. 2차 팬데믹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여당은 집회 통제를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조치라고 했지만 대부분 집회가 1인 차량 시위 혹은 드라이브 스루 형식의 집회를 요구하는 등 '방역 수칙'을 지켜 진행하려는 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집회는 허용하되 방역 수칙 준수 여부 등을 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의당·참여연대 등도 개천절 집회 통제를 '과잉대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의당은 경찰의 한글날 집회 통제를 언급하며 "단계적 제한이 아닌 봉쇄 및 금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 차벽 설치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며 "도심에서의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고 이를 불법으로 선포하는 것은 경찰에 의한 집회 허가제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번 한글날 집회에서도 경찰을 동원한 강제적 집회 통제가 이어질 경우 '과잉통제'란 비판이 나올 전망이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개천절 집회 때)차벽으로 에워쌀 필요가 있었나"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여당이 집회를 악용하는 것"이라며 과잉대응을 우려했다. 지난 3일 통제 중인 광화문 광장. /임세준 기자 |
그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집회 자체를 금지하기보단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방역수칙을 제시하며 허락하면 될 일을 아예 원천봉쇄했다. 불법을 저지를 거라고 단정하고 한 것 아닌가. 집회자들도 국민이다. 이미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여당이 집회를 악용하는 경우"라며 "'저 사람들은 반국가세력이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다만 이 교수는 국민의힘 등이 한글날 집회를 독려하는 분위기에 대해 "나서지 않는 게 낫다"며 "자꾸 나서면 태극기 세력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도 문제제기한 상황이니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서울시에 따르면 오는 한글날엔 52건의 10인 이상 집회가 신고됐다. 시는 서울 지역에서 열리는 10인 이상 집회에 대해 집합금지명령을 내린 상태다. 또 시위 성격으로 차량이 줄지어 가는 것도 금지 명령을 내렸다. 서울시는 지난 3일 개천절 집회를 통제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원천 차단할 방침이다.
moon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