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외'다] 이정현 "개천절 광화문을 '진공' 상태로 만들자"
입력: 2020.10.02 00:00 / 수정: 2020.10.02 12:16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역임했던 이정현 전 의원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야외 공간에서 진행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근황과 현안, 그리고 미래에 대해 말했다. 이 전 의원이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역임했던 이정현 전 의원은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야외 공간에서 진행한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근황과 현안, 그리고 미래에 대해 말했다. 이 전 의원이 취재진과 인터뷰 하는 모습. /이동률 기자

4·15 총선이 끝나고 어느덧 5개월여가 흘렀다. 당선자는 국회로 입성했지만, 낙선한 이들은 국회의원 생활을 정리하고 '일반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20대 국회를 지낸 '전 의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한 번 정치인은 영원한 정치인'인 걸까.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은 없을까. <더팩트>는 원외에서 새롭게 활동하는 '전 의원'들을 만나는 [나는 '원외'다] 코너를 통해 일반인으로 돌아간 그들을 근황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36년 정치, 그리고 새로운 시작

[더팩트ㅣ여의도=허주열 기자] 이정현(62) 전 의원의 36년 정치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했다. 보수정당에서 비주류로 바닥에서 시작해 최초로 호남 출신 대표에까지 올랐다. 호남에서 당선된 최초의 보수정당 지역구 의원으로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만 영광의 시기는 짧았고, 시련의 시기는 길었다. 정치에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극한(極限)까지 경험한 그는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정치인의 몰락과 함께 30년 이상 몸담았던 당을, 그리고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제도권 정치에서도 떠났다.

이 전 의원의 정치사에 대한 호불호는 엇갈린다. 다만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20대 국회 임기 종료 후 잠행을 이어가던 이 전 의원을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야외 공간에서 만났다. 차가 없는 그는 인터뷰 장소에 커다란 더플백을 들고 홀로 택시를 타고 왔다. 올해 나이 62세,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기에는 아직 이른 그의 새로운 삶에 관해 물었다.

이 전 의원은 인터뷰에서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된 후 백수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이 전 의원은 인터뷰에서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된 후 백수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36년 정치 '쉼표', 새로운 도전

"배낭을 메고 시외버스를 타고 혼자 27일간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많은 분을 만나 세상 이야기를 들었고, 교보문고에 수시로 가서 신간을 읽었어요. 교수들, 전직 외교관들, 중소상인들을 집중적으로 만났어요. 소위 대권주자로 거론되거나 주목할 인사들도 만났어요. 백수 과로사한다는 말을 실감하겠더라고요."

이 전 의원은 지난 5월 29일 20대 국회 임기가 끝난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인터뷰를 마친 직후에도 "순천으로 간다"고 했다. 진행형인 전국 각지 사람들 만나기는 그가 시대 과제를 파악하고,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독립, 산업화, 민주화에 이은 우리의 시대 과제는 '일류국가 건설'"이라며 "일류국가는 모든 분야의 비정상들이 정상화될 때 가능하다. 이 일을 수행할 새로운 정치 세력은 젊은 층과 전문가들과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치는 미래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 세대가 주축이 되어야 하고, 기성 정치인들은 바람막이가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장선에서 그는 2년 뒤 열리는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방법론도 제시했다.

이 전 의원은 먼저 정권 교체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문재인 정권은 대북 정책을 국정 운영의 축으로 삼았는데, 지금 그 국정 운영의 축이 부러졌다"며 "그러다 보니 서민경제, 국가부채, 방만재정, 시민안전, 대미·대일·대중외교, 부동산, 양극화, 청년 실업, 지역 균형발전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한 분야가 없다. 실패한 국정을 덮기 위해 3년 내내 과거사 들추기와 정치보복으로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 전 의원은 독립, 산업화, 민주화에 이은 우리의 시대 과제는 일류국가 건설이라며 일류국가는 모든 분야의 비정상들이 정상화될 때 가능하다고 새로운 정치 세력에 의한 정권 교체를 강조했다. /이동률 기자
이 전 의원은 "독립, 산업화, 민주화에 이은 우리의 시대 과제는 '일류국가 건설'"이라며 "일류국가는 모든 분야의 비정상들이 정상화될 때 가능하다"고 새로운 정치 세력에 의한 정권 교체를 강조했다. /이동률 기자

그는 "정권 교체는 야권 권력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가능하다. 누가 누구를 대선후보로 염두에 둔다든지, 어느 세력이 특정인을 민다든지, 자신만이 대선주자라는 식의 야권 권력이 횡행하는 순간 정권 교체는 물 건너 간다"라며 "지금은 누가 후보가 될지 아무도 모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서도 절대 안 된다. 미스터트롯 방식으로 공정하면서도 무한경쟁으로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았던 국민의힘은 실제 이 방식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당장 내년 4월 열리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미스터트롯 방식으로 선출하기 위해 주호영 원내대표가 최근 미스·미스터트롯 방송을 만든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 공개 경합 방식을 정치권에 접목할 방안을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대선후보도 이런 방식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새 국가 리더가 해야 할 일도 언급했다. 그는 "진짜 나라를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을 경우 '국민화합'을 최우선 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권처럼 정치보복을 해선 안 된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는다고 대선기간 중 후보와 당이 국민 앞에 천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나라를 원상회복하고, 양극화의 어두운 부분을 돌보고, 미래로 나아가기도 바쁜 만큼 다음 정권은 정치적 보복을 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리더는 '정치보복' 않고 '국민화합' 앞장서야"

핵심 '친박'이었던 그의 정치 보복 금지 주장은 다소 의외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을 당하고, 수감된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 정치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사건을 묻는 질문에 "다들 짐작하는 그 장면 그 사태다. 역사가 다시 평가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이끌어주었던 박 전 대통령이 정치보복을 당했지만, 미래와 국민화합이라는 대의를 위해 문재인 정권과 같은 행위는 해선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과거는 역사적 평가에 맡기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하고 선거로 답한다며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동률 기자
이 전 의원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하고 선거로 답한다"며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동률 기자

이 전 의원은 "정치인은 선거로 말하고 선거로 답한다"며 "내년 보궐선거와 내후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겠다. 국가 재앙을 종식시키고 미래희망을 새로 시작하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도 언급했다. 그는 "민주화가 최우선이었던 시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모델로 현 집권 과격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의 연합과 연대 즉 자유·민주·평화 수호를 위한 국민연대,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원탁회의를 추진 중에 있다"며 "아직 결집하지는 않았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구성원이 될 정치 지망생들에 대한 조언의 말도 전했다. 이 전 의원은 "전기집과 역사서 읽기를 권하고, 신호등 건널 때조차도 선을 넘지 않으려 해야 한다"며 "작은 질서와 규정을 가볍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큰 국가 질서도 아무렇지 않게 깨게 된다. 장학금을 받았으니 장학금을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공천 주는 사람, 선거를 도와주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와 나라에 충성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일부 보수단체가 강행을 예고한 3일(개천절) 광화문 집회 자제를 호소했다. 이 전 의원은 "진인 조은산의 '후일 기약 이번 집회 연기' 제안에 공감한다. 과학하고 싸우지 말자. 바이러스는 줄었다가도 더 폭발할 수도 있고, 탄압하려는 정부에 빌미를 주지 말자"며 "이번 개천절은 광화문을 진공 상태로 만들자. 그렇게 했을 때 저들은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고, 문재인 정권이 그로 인해 블랙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때를 기다렸다가 나중에 분연히 일어나자"고 강조했다.

☞ 이정현 전 의원은 누구? 1958년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시절인 1984년 국민의힘 전신에 해당하는 민주정의당에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영남권 기반 보수정당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였지만, 국회의원 비서와 사무처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3선 의원,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 등 최상위 자리에까지 올랐다. 특히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에 출마해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보수정당 인사 중 최초로 호남 지역에서 당선돼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20대 총선에서 순천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3선(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에 성공했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지만, 보수정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1995년부터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출마해 2014년 이후 두 번 당선되고, 당선된 뒤에는 다른 의원들에게 본을 보이고 싶어 최선을 다한 것을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최초의 당직자 출신, 최초의 호남 출신 보수정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으나,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뒤늦게 해당 지역 출마를 선언하자 물러섰다. 이후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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