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속한 출범을 언급했다. 7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하고 있는 이 대표. /남윤호 기자 |
추미애 vs 윤석열…'검찰개혁' 이슈 판 키우기?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관련법 발의 추진으로 정공법을 택하는 분위기다. 야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을 '제2의 조국사태'로 규정, 공세를 이어가는 상황으로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결정은 이낙연 대표가 꺼낸 '협치'와 무관, 9월 정기국회 주도권을 잡고 '권력기관 개혁'을 실기해선 안 된다는 핵심 지지층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초 '권력기관 개혁'에 필요한 법안들을 8월 중 입법 완료하고 늦어도 정기국회 내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입법 독주'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잠시 속도를 늦췄다. 새 지도부가 선출되며 지지층으로부터 '개혁'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 법안 처리를 더늦출 수 없다는 분위기다.
당 대표에 출마했던 박주민 전 최고위원은 공수처 출범을 위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구성 시기에 대해 "야당 반발로 지연될 경우 9~10월 초 정도에 (후보추천위 구성을 바꾸는) 법을 개정한다면 적기가 아닐까. 10월 말에 결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당내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국회 법사위원인 박범계(왼쪽) 민주당 의원은 8일 교섭단체가 일정기간 처장 추천위 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추천권을 다른 곳에 넘기는 내용의 '공수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화하는 백혜련 의원과 박 의원. /남윤호 기자 |
당 차원에서 움직이기 전 여당 개별 의원들이 먼저 여론전을 펼치고 나섰다. 8일 판사 출신 3선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 요건을 바꾸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현행 공수처법에는 비(非) 여당 교섭단체가 2명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선임하도록 돼 있다.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일정 기간을 정해 각 교섭단체에 위원회 위원을 추천 해달라고 알리고, 기간을 넘기면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과 '사단법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추천 위원으로 갈음하도록 했다. 야당 교섭단체가 2인의 추천위원을 추천하지 않더라도 후보추천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박 의원은 "현행법상 위원 추천 의무 및 위원회 구성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법에 규정되어 있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위원 추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 관련 비토권 역시 스스로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위원회의 구성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다만 박 의원 측은 "당 정책위와 논의한 것은 아니다"라며 당론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박 의원 외에도 앞서 지난달 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현실적으로 (공수처 출범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법률 개정 부분을 적극 검토하고 발의하는 것"이라며 야당을 압박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지난달 국민의힘에 정기국회 개회식은 이달 1일 전까지 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을 추천해달라고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김용민 의원은 여당과 여당 교섭단체에 각 2인씩 부여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국회에서 추천하는 4인'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취임 후 '공수처'에 대해 줄곧 침묵해온 이 대표도 지난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법에 따라 공수처가 설치되고 가동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지체된 개혁입법을 이번 회기에 완수하기를 요청한다"며 사실상 공수처 출범 마지노선까지 언급했다.
이와 관련, 이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말한 대로 공수처 출범이 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물론 아직 야당의 응답을 기다리는 상황이지만 그런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개정안 처리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공수처 폐지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국민의힘은 입장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야당은 추 장관 아들 황제복무 의혹을 '제2의 조국 사태'로까지 규정하고 '정권 눈치보는 검찰'이라며 쟁점을 재점화하며 추 장관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추 장관 아들 의혹과 관련한 특임검사 수사도 촉구하고 있다.
여권 적극 지지층은 추 장관 의혹 공세를 야권의 검찰개혁 저지 목적이라고 보고 공수처 출범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2월 1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준비단장에 위촉된 남기명 전 법제처장(오른쪽)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 /남윤호 기자 |
일각에선 이 같은 추 장관에 대한 의혹 공세를 막지 못하면 '검찰개혁'이 야당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친여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공수처 설치 마무리인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지연시키려 추 장관을 공격하는 것" "민주당은 180석 준 국민을 믿고 법을 바꿔 공수처 설치 마무리해야 한다"며 공수처 출범을 촉구하는 핵심 당원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여권은 추 장관을 감싸며 '추미애 대 윤석열' 구도를 통해 오히려 검찰개혁 이슈 대응 전선을 형성하는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공수처법 제정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은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핵심 조항이었다. 이에 따라 해당 조항을 변경할 경우 야당의 '거대 여당 독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은 공수처 법정 출범 시한이 약 두 달을 넘겼고, 추 장관 의혹 제기는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야권의 무리한 정치 공세라는 논리로 맞서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언론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4년간 공석이었던 북한 인권재단 이사와 북 인권대사·특별감찰관 추천을 완료하면,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을 즉시 추천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