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아내 이유미 "큰오빠 이영훈 때문에 남편 곤혹"
입력: 2020.08.04 10:38 / 수정: 2020.08.04 10:38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의 아내 이유미 씨가 최근 큰오빠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 씨가 김 전 의원 페이스북에 게재한 신혼여행 사진. /김부겸 전 의원 페이스북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의 아내 이유미 씨가 최근 큰오빠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 씨가 김 전 의원 페이스북에 게재한 신혼여행 사진. /김부겸 전 의원 페이스북

"정치인 김부겸 걸어온 길 살펴보고 이해해주시라"

[더팩트|문혜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당권 경쟁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 이유미 씨가 큰오빠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로 불거진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4일 이 씨는 김 전 의원 페이스북에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입니다'라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 씨의 큰오빠인 이 전 교수는 위안부의 성노예화는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반일종족주의' 공동저자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때문에 진보진영 일각에선 김 전 의원을 향해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이 씨는 "큰오빠인 이영훈 교수로 인해 김부겸 의원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어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을 드릴까한다"며 사연을 밝혔다.

그는 "큰오빠(이영훈)가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제적이 되고 도망 다니던 시절, 형사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셋째 오빠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3년여간 옥살이를, 남동생은 대학 졸업 후 미문화원 폭파 사건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2년여 옥살이했다"며 자신이 운동권 집안에서 자랐음을 밝혔다.

또 김 전 의원의 지명수배로 1980년, 86년, 92년 세 차례 경찰과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를 받았던 내용도 밝혔다.

이 씨는 "이렇게 험난한 시절을 지나왔다. 오직 남편이 하는 정치가 올바르다 믿고 뒷바라지해 왔다"며 "그런데 이제 와 의 친정 오빠로 인해 곤혹스런 처지를 당하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옛날의 고통스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흐른다"며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맺었다.

다음은 페이스북 글 전문.

<김부겸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입니다>

큰오빠인 이영훈 교수로 인해 김부겸 의원에 대해 안 좋은 말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소연을 드릴까 합니다.

큰오빠가 대학 때 학생운동으로 제적이 되고 도망 다니던 시절, 형사들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오빠는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고 3년여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남동생은 대학 졸업 후 美 문화원 폭파 사건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2년여 옥살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남편도 79년 가을에 친구였던 셋째 오빠의 소개로 만나, 82년 초에 결혼하였습니다.

저 역시 80년, 86년, 92년, 세 차례에 걸쳐 경찰과 안기부에 끌려갔습니다. 80년에는 연애할 당시입니다. 광주항쟁이 나자 서울대 복학생이던 남편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전국에 지명수배했습니다. 한은 대구지점에 다니던 저를, 애인이라며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나와 잡아갔습니다.

군복으로 갈아입히고 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두 명이 밤새 취조 했습니다. 한 명은 달래고, 한 명은 때렸습니다. 그중 한 명은 훗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경찰관입니다. 남편의 소재를 캐물었지만, 실제로 어디 있는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자 서울로 압송해갔습니다. 저를 큰오빠의 신혼집 근처 여관에 가둬두고 도청 장치를 붙였습니다. 큰오빠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했던 남편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라 예상하고 덫을 놓은 것입니다. 남편은 잡힐 뻔했지만, 큰오빠의 기지로 간발의 차로 도주했습니다. 다시 대구로 데려가 절 풀어주고는 한 달 동안 감시를 붙여 미행했습니다.

결혼을 한 후 86년 남편이 복학해 서울대 앞에서 백두서점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관악경찰서에서 나와 수시로 책을 압수해갔고, 둘째를 가져 만삭인 저는 두 차례 연행되었습니다. 좌경용공서적을 소지, 판매했다는 죄였습니다. 당시 근처에서 광장서적을 하던 남편의 선배인 이해찬 대표님도 함께 연행되었는데, 대표님이 거세게 항의해주신 덕분에 며칠 만에 풀려나곤 했습니다.

마지막은 92년입니다. 남편은 김대중 총재의 민주당 대변인실 부대변인이었습니다. 김대중 총재는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선실'이라는 할머니 간첩을 내세워 남편과 저희 가족을 간첩단으로 몰았습니다.

남산 안기부로 저와 저의 어머니, 남편을 잡아갔습니다. 이선실이 간첩임을 알고 있지 않았냐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몰랐다고 버티자, 사흘 만에 어머니와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때는 민주화 이후라 매질은 하지 않았지만, 제가 앉은 의자를 발로 차는 등 폭력적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가끔씩 찾아오던 그 할머니를 만났던 제 친정어머니를 가혹하게 몰아붙였습니다. 남편은 재판 끝에 대부분은 무죄를 받고, 불고지죄만 유죄를 받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렇게 험난한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오직 남편이 하는 정치가 올바르다 믿고 뒷바라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저의 친정 오빠로 인해 곤혹스런 처지를 당하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옛날의 고통스런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고 있자니 눈물이 흐릅니다.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여러분이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8월 3일이유미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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