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가 지난달 30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반도 정세가 경색국면인 이유에 대해서 "구조적인 문제"라고 비핵화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광화문=이동률 기자 |
"북한 입장에서 남한의 효용이 다했다"
[더팩트ㅣ광화문=박재우 기자]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한반도 정세는 지난해 2월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후에도 6월 남북미 정상회동, 10월 스톡홀름 북미실무 협상이 있었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진 못했다.
지난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남측 탈북민 단체의 전단살포를 문제삼고 무력시위를 예고했다. 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살포가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김 제1부부장은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표현했고, 북한은 남북대화의 상징이었던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남북관계 경색 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안보라인 교체로 분위기 쇄신을 노리고 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 출신이자 여당 원내대표를 지낸 이인영 의원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DJ 정부 시절 대북 특사로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던 박지원 전 의원을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했다. 한반도정세의 분위기 쇄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북라인 교체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더팩트>는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아산정책연구소에서 국책연구소인 한국국방연구원에서 15년가량 근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외교안보 전문가 박원곤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과 교수를 만나 남북관계, 북미관계, 10월 북미정상회담 가능성, 미국 대통령선거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박 교수는 현재는 안식년으로 아산정책연구소에서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방송 출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외교안보에 대해 쉽게 해설해 주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현재 남북관계 경색국면이 외교안보라인 교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북한 비핵화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은 북미관계를 남북관계 아래로 넣어버렸다"면서 "대북 제제 면제가 돼야 남북 합작사업, 경협 등의 가능성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현재 북한입장에서 남한의 효용성은 다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해 "비핵화 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가 진정으로 진전될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북한 비핵화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질의에 답하는 박 교수. /이동률 기자 |
다음은 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세 관리,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문재인 정부는 진정성 있게 한반도 문제를 관리해왔다. 2018년 남북화해 분위기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평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북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하지만 2019년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기점으로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거쳐 지난 6월 북한의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있었다. 이는 한반도 정세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에 달려있다. 비핵화 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가 진정으로 진전될 수 있다. 현재까지 북한 비핵화의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외교안보라인에 남북 대화파라고 할 수 있는 이인영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이 취임했다.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나?
문재인 대통령의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정원장 인사는 북한과의 대화를 유지하겠다는 의도이다.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도발에도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서훈 전 국정원장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대화파이긴 하지만, 북한 전문가는 아니다. 서훈 실장은 확실히 북한 전문가 출신 인사이다. 이런 인사를 통해 대화·포용정책의 메시지를 북한에게 보내는 것이다.
과연 이를 통해 현 정세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어렵다고 본다. 2018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 남북관계가 어려운 것은 한국 정부의 탓이 아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아 '대북제재'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고, 북미 간 교착이 이어진 것이다.
-이 장관은 '창의적인 해법'을 이야기했고, 일각에서는 정치인 출신 인사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의지라는 해석도 있다.
북한은 북미관계를 남북관계 아래로 넣어버렸다. 한반도 프로세스에서 대북 제재 면제가 돼야 남북 합작사업, 경협 등의 가능성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입장에서 현재 남한의 효용성은 다 됐다.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을 조건 없이 재개할 의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북제재를 이유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상봉, DMZ 평화지대구상, 철도사업 등을 언급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사업이 아니다.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은 남측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즉, 효용성이 다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남북관계 교착상태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 같다.
박 교수는 "외교안보라인의 교체로 현 정세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어렵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경철청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서훈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뉴시스 |
-최근 가장 관심이 쏠리는 이야기가 미국 대통령선거 전 북미정상회담이다. 일각에서 예견하는 10월 서프라이즈, 가능할까?
북미정상회담이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렵다고 본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 대표 겸 국무부 부장관이 방한해 언급한 것처럼 가장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이다. 물리적으로 정상 간 만남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 간 정상 만남이 취소되고 있다. 북한은 특수한 국가로 북한 정상이 미국 정상을 만나는 것은 공간적으로도 제약된다. 한국이나 판문점 인근에서 만나야 할 텐데 전반적인 방역체계 구성 등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에 10월 서프라이즈가 북미정상회담이 될 거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셈법이 복잡하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달 10일 담화에서 자신의 생각이라면서, 북미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모를 일'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미국이 결정적인 변화가 있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의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북한도 어려워지게 된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처럼 톱 다운(Top-down, 정상을 중심으로 결정을 내리는 외교) 형식의 협상은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선다면, 인사를 하고, 정책을 다듬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북한입장에서 보면, 코로나19 때문에도 힘든데 내년 상반기까지 지연되고 하반기까지 기다리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된다.
어떻게든지 미국과 협상을 진행해 일정 부분 양보를 얻어내는 게 북한으로서는 차선책일 수 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대북제재의 일부 면제다. 북한 경제는 제재에 특화된 경제로 일부만 풀린다면, 코로나로 악화된 경제와 현재 위기를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 전에 미국이 양보하는 형식을 보임으로써 대북제재가 면제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볼턴의 해석이다.
지난달 30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더팩트'와 인터뷰하는 박 교수. /이동률 기자 |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북미정상회담을 미국이 받아들일 조건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받아들이려면 이 결과가 대선국면에서 유리해야 한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통해 외교 승리를 홍보할 수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에서 보면 그동안 미국 측에서 주장했던 요구는 영변 핵시설 해체+α(알파)다. 영변 해체는 북한이 이전에도 미국 행정부와 약속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해체만을 놓고 자신의 정치적 승리라고 홍보할 수 없다. '+α'(플러스 알파)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공식해체를 한다면, 외교 업적으로 홍보가 가능하고, 대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조건이 맞으면 10월 북미정상회담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은 적다. 코로나19 상황때문에 미국 대통령 선거 전당대회도 하지 못하고 있고, 시간도 부족하다. 대선을 90여일 앞두고 있는데 현재 실무선 만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이후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전망하나. 또, 트럼프와 바이든 당선 시나리오를 각각 예상해 본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대외정책에서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는 재선 때문에 공화당 주류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그동안 언행을 분석해보면 한반도 정세에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해 정말로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보여주기식으로든 북한관계를 회복하려고 할 수 있다.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에는 관심없고,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더 선호한다고 적혀있다. 협상도 톱 다운식으로 유지해나갈 것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일부에서 한반도 정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바이든이 당선 돼야 '원칙'으로 돌아가서 북한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본다.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 핵심 외교정책 중 하나가 ;적과 손잡기'이다. 오랫동안 적대시해왔던 쿠바, 미얀마, 이란과 합의를 통해 관계를 개선해왔다.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북한과의 관계개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톱 다운 방식은 조심하겠지만,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서 북미 간 대화가 단절되고 긴장으로 돌아간다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바이든은 제대로 된 외교 원칙에서 대화를 풀어나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