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정책검증 보다는 '사상검증'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후보자에게 질의하는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 /국회=배정한기자 |
이인영 "검증은 불가피하나 전향은 민주주의에 어긋나"
[더팩트ㅣ국회=박재우 기자]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예상했던 야당의 가족관련 의혹 검증보다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 이 후보자에 대한 '사상검증' 내용이 주를 이뤘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이날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했다. 이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이 후보자의 과거 학생운동 당시를 집중 거론했다. 이 후보자는 이런 질의가 계속 나오자 답답한 마음을 표출하면서 "검증을 받는 것에 대해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전향 의사를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이 후보자에 대해 제기된 의혹은 청문회 이전부터 후보자 가족 관련 특혜 의혹과 남북관계와 탈북민단체 관련 현안으로 분류됐지만, 이날 야당은 이 후보자가 전대협 시절 '주체사상'을 신봉했느냐 아니냐, 또 이승만 정권을 괴뢰정권으로 표현한 적이 있느냐를 두고 집요하게 물었다.
태영호(오른쪽) 통합당 의원이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더불어민주당의 항의를 들으며 미소 짓는 모습. /배정한기자 |
◆아들 병역논란만…언급 적었던 '가족관련 논란'
인사 청문회가 전 아들 병역면제, 아들 '스위스 호화 유학'논란, 아내가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NGO) 보조금 특혜 등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오면서 야당의 공격포인트로 전망됐다.
하지만 청문회가 시작되고 나서는 아들의 병역면제 자료제출과 주류 판매 과정에서의 지적밖에 나오지 않았다. 의사진행발언에서 야당 외통위 간사인 김석기·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많은 자료를 요구했고 시간내에 달라고 요청했는데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석기 의원은 이인영 후보자의 아들이 SNS에 공개된 영상에서 군 면제 판정을 받기 직전 맥주 한 박스와 물통을 들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직접 해당 물통을 청문회에 선보였다. 김 의원은 "후보자의 아들이 군대에 다시 가겠다고 한 것은 쇼"라며 "2016년도 국회의원 출마선거 한달을 앞두고 선거 당시 유권자로부터 비판을 피하고자 일부로 신청서를 낸 것처럼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저의 선거에서 유리하기 위해 그랬다는 의혹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반발했고, 맥주 한 박스를 든 것에 대해선 "크게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아울러, 조태용 통합당 의원은 이 후보자의 아들이 공동사업자 1명과 함께 '효자맥주'라는 주류 제조·판매 업체 운영에 있어 세무서에 신고 없이 맥주를 18차례 팔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후보자는 "아들 아버지로서 얼마든지 사과하고 지적하시는 것 중에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대북정책 관련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배정한 기자 |
◆기존 입장 반복한 대북정책
대북정책 관련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반복했다. 먼저, 물물교환식 남북교류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이 후보자는 모두발언에서 "무엇보다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과 같은 인도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분리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이와 함께 국경을 가리지 않는 질병, 재해, 재난, 기후변화 등에도 공동대응 할 수 있도록 남북협력의 분야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워킹그룹과 관련한 질문엔 "제재 영역이 아닌 인도적 협력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할 수 있다"며 "나아가 인도적 협력에 해당하는 부분은 교역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엽합군사훈련 연기를 두고도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한미군사연합훈련 보류"면서 "다만, 군사작전권 반환과 관련해 올해 예정된 FOC훈련의 수요는 존재한다. 그 점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관련해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간 정도로 규모를 축소하거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대로 작전지역 반경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그에 맞춰서 북한이 반응할 것"이라고 도 전했다. 또한, 북한의 반응을 염두에 두고 연합훈련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측면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태영호와 이인영 두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의 삶의 궤적'이라고 쓰인 패널을 보여줬다. 태영호 의원이 외교통일위원회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질의를 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주체사상', '이승만 국부론' 사상검증의 장
이 후보는 전대협 1기 의장(1987년) 출신으로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대북관련 시민단체 활동을 한 바 있다. 야당은 이 후보자가 북한에 우호적인 성향으로 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면서 적극 '사상검증'에 나섰다.
먼저, 태영호 의원은 '태영호와 이인영 두 김일성 주체사상 신봉자의 삶의 궤적'이라고 쓰인 패널을 보여주면서 아직도 이 후보자가 '주체사상'을 믿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며 "분명히 말씀드린다. 이 자리가 태 의원께서 저에 대한 사상전향을 강요하거나, 추궁하는 행위로 오인되지 않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승만 국부론에 대한 찬반논쟁도 등장했다. 이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후보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라는 주장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우리의 국부는 김구가 됐어야 했다는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승만 정부는 '괴뢰정권'이라는 표현이 전대협에서 나왔다는 지적에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국민이 선출한 선거를 통해서 정부가 세워졌기 때문에 그 실체적인 진실을 바라볼 때 괴뢰정권이라는 주장에는 거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러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거세게 반발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인영 후보자 같은 독재시절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라며 "그렇게 함부로 폄하할 대상도, 천박한 사상검증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야당의 질의 수준이 반헌법적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후보자의 과거 생각과 사상 문제가 아니라 질의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반헌법적"이라며 "어떤 주의를 신봉하냐 믿느냐고 묻는 것은 헌법이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