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초딩'도 아는 '약속', 민주당은 왜 모를까
입력: 2020.07.21 10:09 / 수정: 2020.07.22 16:30
더불어민주당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따른 시정 공백으로 치러질 내년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당 최고위에 참석한 박주민 최고위원, 이해찬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왼쪽부터) /배정한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따른 시정 공백으로 치러질 내년 보궐선거 후보 공천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당 최고위에 참석한 박주민 최고위원, 이해찬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왼쪽부터) /배정한 기자

민주당, 서울·부산 성추행 의혹에 무한책임 느껴야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아이가 잠들기 전 꼭 물어보는 게 있다. "아빠, 내일 빨리 와?"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응, 응"이라고 대답했다. 일이라는 게 시시각각 변하다 보니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의 "빨리 와"의 시간은 정확히 몇 시로 규정돼 있지 않다. 저녁밥을 먹기 전, 또는 아직은 밖이 어둡지 않을 때 정도의 시간으로 추정한다. 정확하게 몇 시라고 물어보질 않은 실수도 있지만, 아이는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아빠는 왜 자꾸 약속을 안 지켜?"라며 섭섭해한다.

아이가 실망한 모습을 여러 번 본 후부터는 "아빠, 내일 빨리 와?"라고 물으면, "응, 응"이 아니라 "몇 시까지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 혹시라도 더 늦을 것 같으면 미리 연락할게"라고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몇 시라고 정해지진 않았지만, 아이는 아빠가 "빨리"라는 본인 기준과 약속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내 입을 떠나버린 그 말이 상대에게 약속이 되는 경우다. 부모라면 무의식적으로 아이와 약속하고 어긴 경험이 다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또는 가정에서 '약속은 지켜야 해' '지킬 수 없을 때는 약속을 하면 안 돼' 등을 가르치곤 한다. 여기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는 상대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해'라고 수습 방법도 덧붙인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아니 정확히 말해 더불어민주당을 보며 '약속'을 대하는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으로 인한 시정 공백으로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리고 제2의 도시 수장 모두 성추행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당헌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했다. 고 박원순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성추행 의혹으로 직에서 물러났다. /남윤호·이선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당헌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치러지는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했다. 고 박원순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성추행 의혹으로 직에서 물러났다. /남윤호·이선화 기자

특히 두 광역단체장 보궐선거는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를 약 1년여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민주당이 서울과 부산에 후보를 낼 것이냐를 두고 다양한 말이 나온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당연히 내야 한다" "국민과 약속이 있으니 내면 안 된다" "당원의 뜻에 물어보자" 등이다.

민주당의 서울과 부산 후보 공천 문제는 밖으로부터가 아닌 내부로부터 시작했다. 스스로 만든 당헌(2015년)에 발목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당헌 96조 2항)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로 있던 2015년 7월 20일 혁신위원회는 이 내용을 당 중앙위로부터 추인받았다. 그렇게 5년이 지난 현재 민주당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에서 성추행을 제외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이낙연(왼쪽) 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년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서울과 부산 후보 공천을 놓고 다른 시각을 보여 이목을 끈다. /남윤호·임영무 기자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 2위를 달리는 이낙연(왼쪽) 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년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서울과 부산 후보 공천을 놓고 다른 시각을 보여 이목을 끈다. /남윤호·임영무 기자

"정치인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합니다. 이걸 중대 비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국민한테 약속하고, 공당이 문서로 규정으로까지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고요. 무공천하는 게 저는 맞다고 보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집권여당으로서 어떤 길이 책임 있는 자세인가 당 안팎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결론을 미리 특정인이 말하는 건 옳은 자세가 아니다. 민주정당에서 한사람이 미리 결론을 낸다, 그것은 옳지 않다. 큰 방향에서 집권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어떤 길인가에 대한 당내외의 지혜 여쭐 것이다." -이낙연 민주당 당 대표 후보

민주당 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두 사람의 생각도 이렇게 차이를 보인다. 후보 공천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대안으로 여성 후보를 내자는 말도 나왔다. 국민과의 약속은 물론, 당헌조차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으려는 공당의 자세는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내세운다 해도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미니 대선'이라 할 수 있는 서울과 부산 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 게 당장 민주당엔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가 아닌 국민과의 약속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탐대실(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이 될 수도 있다.

정치는 '책임'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국민과 약속일 수밖에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그래서 꼭 국민과 약속을 지져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생각하면 민주당이 고민할 게 없어 보인다. 정치가 손바닥 뒤집듯 해서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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