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정진기(政診器)] '박원순 성추행 사건'과 민주당의 '말장난'
입력: 2020.07.18 00:01 / 수정: 2020.07.22 16:31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事件)의 피해자 A 씨를 지칭하는 용어를 놓고 혼란을 겪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事件)의 피해자 A 씨를 지칭하는 용어를 놓고 혼란을 겪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피해 호소인', '피해 고소인', '가해 지목인' 말장난 끝에 4일 만에 '피해자'로 통일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事件)의 피해자 A 씨를 지칭하는 용어를 '피해자'로 통일하기로 결정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13일 공식 석상에서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표현한 지 4일 만이다.

이 대표의 발언이 나온 이후 서울시와 민주당 인사들은 '피해 호소 여성', '피해 호소인', '피해 고소인', '피해 호소 직원' 등의 말을 쏟아내면서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않았다. 여기에는 민주당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A 씨가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내재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A 씨의 성추행 피해 증언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경찰 고소까지 이뤄진 상태다. A 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변호사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은 A 씨에게 음란한 문자와 속옷 입은 사진을 보내고, 무릎의 멍에 '호 해주겠다'며 무릎에 입술을 접촉하고, 내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하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

이 사건 관련 A 씨의 고소 다음 날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성추행 사건은 법적으로 '공소권 없음'이 됐지만,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임·묵인 의혹 등 주변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4일 만에 나온 민주당의 피해자 용어 통일 결정은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등 떠밀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16일까지만 해도 친문 핵심 인사로 꼽히는 B 의원은 사석에서 박 시장을 '가해 지목인'이라 표현하면서 "'피해 호소인' 등의 생소한 말도 당 윤리규범에 있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민주당 윤리규범 14조(성희롱·성폭력 등 금지)에 "당직자와 당 소속 공직자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피해 호소인 포함)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 본인에게 피해사실 등에 관해 지속적으로 말하거나 확인을 구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대목에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다.

이 용어는 민주당 젠더폭력TF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이 찾아서 A 씨를 피해 호소인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동료 의원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한다. 14조의 내용만 보면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도 피해자와 다를 바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지만, 남 의원은 그렇게 구분한 것 자체에 포커스를 맞춘 듯하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이 논리는 문재인 정부의 성 피해와 관련된 공식 방침에도 배치된다. 지난해 5월 30일부터 시행된 '국가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신고처리 업무지침'에는 피해자라는 용어를 "양성평등기본법 등에서 정하는 성희롱·성폭력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사람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으로도 고소나 신고로 형사절차에 들어서면 범죄가 확정되기 전에도 피해자라 부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방침, 법적으로 봐도 A 씨는 피해자가 분명하지만, 민주당이 애써 다른 생소한 표현을 찾아서 '말장난'을 하다가 뒤늦게 입장을 바꾼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2년 사이에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 시장까지 3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이 성추문에 휘말리면서 직을 잃었다. 그런데도 최근 보인 행보는 소속 고위 인사의 성추문에 대한 재발방지보다 당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애를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당인 민주당이 보호하고 돌봐야 할 대상은 그들 표현대로 자기편이었던 가해 지목인이 아니라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이와 거리가 있는 행보를 보인 민주당은 '우리가 이렇게 주장하면 국민도 우리 말을 믿을 것이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거나, 국민 수준을 지나치게 얕잡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오만이 계속되면 착각하게 되고, 착각은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수순에 접어든 정당의 끝이 좋을 리 없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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