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어떻게 박원순까지"…뒤늦게 입 연 與 여성의원들
입력: 2020.07.15 00:00 / 수정: 2020.07.15 00:00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은 13일 성명서를 내어 피해 호소 여성이 느꼈을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로 들어서는 김상희 국회부의장. /배정한 기자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은 13일 성명서를 내어 "피해 호소 여성이 느꼈을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로 들어서는 김상희 국회부의장. /배정한 기자

성명서에 '피해 호소 여성' 용어 논란…성추행 불인정?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고(故)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지난 9일 박 전 시장의 전 비서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진 지 엿새 만이다. 서울시 진상조사와 당 차원의 성비위 사건 전수조사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불분명한 용어를 사용하고 당 차원 진상조사 계획을 밝히지 않아 떠나간 집토끼를 불러들이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14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여성 국회의원 일동'으로 낸 성명서에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여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우선 피해 호소 여성이 느꼈을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와 비방, 모욕과 위협이 있었던 것에 대해 강한 유감를 표한다"라고 했다.

이어 이들은 서울시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당내 젠더폭력대책특별위원회의 제도 시스템 보완과 공공기관 내 성희롱 관련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당에 지역위원회 성 비위 전수조사 등도 요구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이 같은 전격적인 성명서 발표는 과거 보수 진영 인사의 성추행 의혹 때 보였던 날 선 칼날이 안 보인다는 당 안팎의 '선택적 분노' '이중적 행태'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몸을 한껏 낮춘 게 배경으로 보인다.

성명서 발표 전까지 당내에서는 내용 파악이 불분명하니 입장을 보류해야 한다는 측과,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측으로 나뉘어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다선 A 의원은 이날 오전 <더팩트>와 통화에서 박 시장 관련 입장을 묻자 "정치하면서 고발을 많이 당했는데 나중에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 경우들이 많았다. 너무 시달린 적이 있어서 조심스럽다. 한쪽이 목숨을 던진 상황이라 좀 더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 입장을 밝힐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했었다. 반면 두 명의 초선 의원들은 "피해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사건 발생 이후 일각에서는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고의로 침묵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여성운동계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내부 분위기에서 '내편 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남인순 의원은 대표적인 박원순계로 분류되고, 성범죄 피해 여성 지원 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출신 정춘숙 의원도 박 시장과 30여 년에 걸친 인연을 맺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재선 B 의원은 "여러 생각을 많이 했지만, 조문 기간에 말하긴 어려웠다. 심정으로 정리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이제는 밝힐 수 있는 최대한을 밝히는 게 과제일 것"이라고 했다. 내부에선 '어떻게 박원순까지 그럴 수 있나'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사건이 드러난 지 엿새 만에 성명서를 통해 사과했지만 당 차원의 진상조사 계획이 없어 말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나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배정한 기자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사건이 드러난 지 엿새 만에 성명서를 통해 사과했지만 당 차원의 진상조사 계획이 없어 말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를 나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 /배정한 기자

하지만 발표한 성명서에 당 차원의 조사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어 허울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 호소인이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국회에 진상규명을 호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B의원은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서울시에서 피해 사실을 묵살한 경위 정도는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피해 내용이나 형사적인 부분은 상대방이 없으니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성명서에 담긴 '피해 호소 여성' 용어 또한 피해자 측 연대와 보호 방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를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피해 호소 여성"이 무슨 뜻이죠? 또 다시 그 빌어먹을 '무죄추정의 원칙'인가요?"라며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생소한 신조어를 만들어 쓰는 것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개인의 일탈 문제이므로 재발 방지책 마련은 쉽지 않으며, 성인지 감수성 등 근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재발 방지책이라고 해봐야 비서를 다 남자로 바꾸거나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하는 정도일 것"이라면서 민주당의 조치에 대해선 "(추모를 강조했던) 초기 대응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진상을 밝히겠다고 했으니 앞으로의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B 의원은 "당내 문제만으론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열악한 구조적인 부분이 본질적 문제다. 또 당내 시스템이 있고 마련한 대책들은 있지만 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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