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왼쪽) 통합당 원내대표가 8일 만에 회동했지만, 상임위원장 배분 관련 진전은 없었다. 합의가 최종 무산될 경우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 독식' 결단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가 23일 강원도 고성 화암사에서 주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는 모습. /BBS 불교방송 제공 |
'11대 7' 협상 모드 '명분 쌓기'냐 '통큰 결단'이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미래통합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라"고 초강수를 두면서 더불어민주당이 헌정 사상 유례 없는 '상임위원장 독식' 결단을 앞두고 있다. 상임위원장직을 모두 가질 경우 국정 주도권을 쥐고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론 '일방적 국회 운영'과 한반도 정세·경제 상황 부진 부담이 커지는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 원내대표가 8일 만에 극적 만남을 가지면서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싹쓸이 전략을 수정하고, 막판 야당 설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3일 오후 8일 만에 전격 회동했다. 김 원내대표가 주 원내대표가 머물고 있는 강원도 고성 화암사를 직접 찾아가면서다. 오후 4시 45분께 시작된 회동은 외부 만찬 으로 이어지면서 9시 58분께 끝나 5시간 넘게 진행됐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국회 정상화 방안을 허심탄회하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김 원내대표가 주 원내대표에게 조속한 국회 복귀를 요청할 뿐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 관련해 구체적인 결론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원내대표는 "새로운 제안은 하나도 없었고, 단순히 나라를 위해 계속해서 동참해달라고만 했다. 변화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며 24일 입장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야 원 구성 최대 쟁점인 법사위원장 철회 등 이견차를 좁혀 합의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 편성에 앞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오는 26일까지 원 구성을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통합당은 국회 원 구성 협상 복귀 조건으로 국회 법사위원장직을 재선출해야 한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주 원내대표가 복귀하면 최대한 협상안을 끌어내기 위해 설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 차원에서도 당초 '18개 위원장직 독식' 압박에서 한 발 물러나 협상 모드에 돌입했다. 김영진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합리적인 결정과 결단, 여야 간의 만남을 통해 원만하게 원 구성을 하는 게 필요하다"면서 "11대 7로 위원회를 맡아서 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통합당과의 최종 합의가 무산될 경우 이번주 나머지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에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시급한 추경 처리를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18개 상임위원장직을 선출하고 나중에 통합당과 합의해 다시 사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강원도 회동'이 민주당에 협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 쌓기용'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미래통합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직 18개를 "다 가져가라"며 배수의 진을 친 가운데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등이 시급한 더불어민주당이 사상 유례없는 18개 독점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남윤호 기자 |
이를 위해선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또 다시 상임위를 강제 배정해야 한다. 김 원내대표와 김 수석은 이날 국회의장을 면담해 추경 처리의 절박성을 설명하면서 사전 정지 작업도 마친 상태다.
여야 일부 인사들도 입을 모아 '상임위원장 몰아주기'를 권유하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책임정치' 실현을 위해 "통합당이 이번 주까지 원 구성 협상에 불응한다면 18대 0도 불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지난 22일 "이참에 과반수 정당에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정치를 해보자"라며 상임위원장 독식 안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국회법상 상임위원장 선출 관련 별다른 규정이 없다는 점도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직 독식' 전략을 고려할 수 있는 이유다.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미국은 우리나라 국회법에 해당하는 '하원 의사규칙'에서 다수당 의원총회에서 제출한 명단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선출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우리 국회법에는 관련 규정이 아예 없기 때문에 민주당이 위원장직을 다 가져가도 위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통합당도 '불법'이 아니라 관행에 맞지 않는다고 얘기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직 모두 가져오기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자칫 '독단적 의회 운영' 프레임에 사로잡힐 수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 위기 속에서 국정 후반기 문재인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는 순간 '양날의 칼'이다. 20대 국회와 전혀 다르게 일하는 국회, 민생국회, 생산적 국회를 보여줄 수도 있다. 국민이 볼 때 국회다운 국회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며 "이렇게 된다면 통합당에는 '상임위원장 몰아주기'가 악수 중의 악수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민주당이 국정 과제 진전도 안 내고, 하는 일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할 경우 민주당은 칼로 자기 목을 치는 꼴이 된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