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그동안 축적된 남측의 남북합의사항 불이행에 불만을 갖고 남북채널 단절을 단행했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발표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시작부터 무리수 포함된 남북합의…예고된 파국?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이번에 쟁점이 되는 사항은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돼 있고, 이후 북측이 남북 통신선까지 차단했습니다. 먼저,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이 중단하기로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위배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최근 북한의 일방적인 남북채널 단절에 통일부는 탈북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지난 11일에는 전단 살포를 주도한 탈북민단체에 대해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측 논리는 좀 다르다. 북측은 근본적으로 우리 정부의 의지와 적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남북합의사항 불이행을 단순하게 탈북민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은 그동안 축적된 남측의 남북합의사항 불이행에 불만을 갖고 남북채널 단절을 단행했다. 대북 전단 살포(4·27 판문점선언 합의사항)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9·19 평양선언 합의사항) 등 남북합의사항을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핑계로 외면하고 있다는 게 북한의 불만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9월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악수하는 모습.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남북합의사항에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라는 합의문 문구는 '희망고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탈북민단체의 최근 전단 살포는 북한의 쌓인 불만을 표출할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단을 문제 삼은 북한의 논리에도 모순이 있다. 남북합의를 어긴 건 남측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이산가족 '화상상봉', 유해발굴 사업(9·19 평양선언 합의사항) 등 우리 측이 고대하던 사업들을 매몰차게 걷어찬 바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그 시작을 알기 위해선 북한과 합의를 도출했을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부터 남북합의에는 무리수가 있었다. 먼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적대행위 중지라는 명분은 있었지만, 대북 전단 살포 강제중단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살폈어야 했어야 했다. 설령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대북 전단 살포 단체들과 사전에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설득했어야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8년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에서 "지난 시기처럼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마음을 갖고도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한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또한, 장밋빛 미래를 예상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 사항을 덜컥 남북합의에 넣은 것도 실수다. 이 사업들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이다. 그런데도 당시 정부는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담판을 예상하고 김 위원장이 서울에 방문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라는 '선물 보따리'를 가져갈 하나의 시나리오에만 올인했다.
이러한 성급한 합의에는 과거 남북·북미 간 합의와 파행으로 반복된 역사에 대한 고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2007년 10·4 남북공동선언 모두 역사적인 합의였지만,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회담장에서 처음 만나 했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지난 시기처럼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마음을 갖고도 못하면 기대를 품었던 분들한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의 기대는 2년 만에 낙심으로 바뀐 듯하다.
처음부터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합의를 통해 반목과 불신을 거둘 수 있었다면 북측이 남한을 적(敵)으로 규정하면서 남북관계가 2017년 이전으로 회귀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