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첫 주 의원들이 야심 차게 준비한 1호 법안이 쏟아졌다. 1~100호 법안에 사회·정치적 화두가 담긴 법안이 다수 포함된 가운데 비슷비슷하거나 이상(?)한 법안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일 국회에서 21대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입법부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 권한은 법률의 제정 및 개정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회가 문을 열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각 의원이 임기 시작 전까지 야심 차게 준비한 1호 법안이 쏟아진다. 이를 살펴보면 각 의원, 정당이 새로운 국회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21대 첫 주엔(1~5일) 196건의 의원 발의 법안이 접수됐다. <더팩트>는 이 중 1~100호 법안의 주요 내용과 특징을 분석해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정춘숙, 제안 내용과 다른 법안 발의…동료 의원 이의제기에 원 구성 전 '철회'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로하고 새롭게 출범한 21대 국회는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의원들이 가진 구상은 무엇일까. 법을 만들고, 개정하는 일을 하는 의원들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제출한 법안에 일정 부분 답이 있다.
국회의 문이 열리자마자 제출된 법안에는 의원들이 새 국회 초반 관심사와 4년간의 의정활동을 내다볼 단서가 내재해 있어서다. 새로운 국회 시작 직후 발의된 법안은 상대적으로 이후 발의된 법안보다 본회의 통과 확률도 높다.
1~100호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37건(임기 전체 반영률 35%)이, 19대 국회에서 44건(임기 전체 반영률 42%)이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더팩트>가 21대 국회 1~100호 법안을 분석한 결과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인 '코로나19', 20대 국회를 반면교사로 한 '일하는 국회', 정부·여당이 최대 성과로 꼽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련 법안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국회 전체 1호 법안 제출을 위해 보좌진을 4박 5일간 국회 본관 의안과 앞에 교대로 자리를 지키게 해 비판을 받았다. 박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제출한 '사회적 가치법'은 19, 20대 국회에서 제출됐던 법안을 재탕 삼탕한 것이다. 지난달 29일 박 의원실 보좌진이 국회 본관 7층 의안접수센터 앞에서 대기 중인 모습. /문혜현 기자 |
◆한국 사회 화두 담은 법안 속 이상(?)한 법안도
다만 각 의원이 임기 초반 제출하는 법안만큼은 야심 차게 준비했을 거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한두 문장만 다른 비슷비슷한 법안, 공동발의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동료 의원에게 제시한 법안 내용과 다른 법을 발의했다 항의를 받고 '철회'하는 등 준비가 이상(?)했던 법안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1대 국회 전체 1호 법안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3선, 경기 수원정)이 대표발의 한 '사회적 가치법'(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이다. 이 법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대 국회에서 대표발의 했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 박 의원과 김경수 의원(현 경남지사)이 내용을 보완해 재발의했지만, 역시 통과되지 못한 법안이다.
박 의원은 재탕 삼탕한 법안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달 28일 오전부터 4박 5일간 국회 본관 의안과 앞에 보좌진을 교대로 자리지키게 했다. 이후 보좌진에게 줄을 서게 한 사실이 알려지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 법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공공부문의 핵심 운영원리로 삼고, 공공기관이 업무수행을 할 때 효율성보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인데, '1호 법안 타이틀'을 얻기 위한 보좌진 4박 5일 대기가 법안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100호 법안 내에는 다른 논란이 잠재된 법안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재선, 경기 용인병)은 지난 2일 개인 3호 법안으로 '지방자치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가 6일 만인 8일 '철회'했다. 이어 같은 날 같은 법을 다시 발의했다.
바뀐 것은 민주당 박완주 의원(3선, 충남 천안을)이 공동발의자 명단에서 빠지고, 그 자리에 이장섭 의원(초선, 충북 청주서원)이 추가된 것뿐이다. 국회 원 구성 전에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철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정 의원실 관계자는 "처음 공동발의자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박완주 의원실에서 갑자기 철회를 요청했다. 이 경우 철회하고 새로 발의를 해야 해서 새로운 분을 공동발의자로 넣어 같은 법안을 발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박 의원실에서 갑자기 철회를 요청한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하지만 박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2일 정 의원실에서 대표발의 한 법안이 공동발의를 요청했던 당시 법안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추후 확인했다"며 "동의했을 당시 법안과 내용이 다르면 안 되지 않나, 뒤늦게 이를 확인하고 철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선 동료 의원 9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의안 바꿔치기'를 했다가, 뒤늦게 이를 확인한 동료 의원이 문제를 제기해 철회하는 일이 21대 국회 첫 주에 일어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정 의원이 발의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은 다른 민주당 의원 2명이 대표발의 한 법안과 차이점이 별로 없다. 박 의원은 지난 1일 같은 법안을 대표발의 했는데, 정 의원 발의 법안과의 차이는 '특례시'를 신규로 지정하는 일부 조건(정 의원 인구 50만 이상 도시 중 도청소재지, 박 의원 비수도권 인구 50만 이상 도시와 행정·재정·경제 요건 반영)만 달랐다.
특히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공동발의자로 정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이와 관련 정 의원실 관계자는 "저희 지역구(용인)를 위해 타당한 면이 있어 동의한 것"이라며 "나중에 상임위에서 병합심사를 하겠지만,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각 의원이 (같은) 법안을 내면 하나를 내는 것보다 법안 개정에 힘을 받을 수 있어서 둘 다 이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21대 국회 개인 3호 법안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가 원 구성도 되기 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던 의원실에서 "당초 제안했던 법안과 내용이 다르다"며 철회를 요청해 해당 법안을 철회한 뒤 다른 의원을 공동발의자로 올려 같은 법을 다시 제출했다. /남윤호 기자 |
정 의원은 같은 당 소속이자, 이웃 지역구 의원인 김민기 의원(3선, 경기 용인을)이 지난 1일 대표발의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에도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 의원도 정 의원이 대표발의 한 같은 법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며 품앗이를 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정 의원이 발의한 '지방자치법 개정안'과 '인구 50만 이상 도시 중 행정수요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례시를 지정한다'는 특례시 지정 요건 일부만 다르다.
결국, 김민기·박완주·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 한 '지방차치법 개정안' 3건을 비교하면 특례시 선정에 대한 기준 일부만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실 관계자는 "특례시 선정 기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도시는 되고 또 안 되는 곳도 있는데, 지역에 계신 분들(지역구 의원들)이다 보니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지방자치법 개정과 관련해선 양경숙 민주당 의원(초선, 비례)이 대표발의 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도 100대 법안에 포함됐다. 이 법은 앞의 세 법과 달리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 구현과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투명성·책임성 강화 등을 위한 포괄적 개정 내용이 담겼다.
◆코로나19 관련 법안 봇물
법안 수만 고려하면 21대 국회 100대 법안 중 코로나19 사태 관련 법안이 21건으로 가장 많았다. 올 초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고,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에 대한 높은 민심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해당 법들은 질병관리본부 개편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 개편, 경제적 손실 보존, 근로자 및 학생 지원, 예방책 마련 등으로 분류된다.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선 먼저 신현영 민주당 의원(초선, 비례)이 21대 국회 전체 2호 법안으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이 법안은 질병관리본부가 국가 감염병 관리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보건과 복지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차관을 2명을 두도록 하는 안이다. 이와 관련 정춘숙 의원도 질병관리청 승격을 골자로 한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4선, 충남 아산갑)은 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 내용에 복지부 장관 소속 '노인복지청'을 신설하는 내용을 추가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내놨다.
이외에 서삼석 민주당 의원(재선, 전남 영암무안신안)이 지역구 특성을 감안해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 유행이 잦아지는 것에 대비한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축전염병 대응 업무와 복지부의 감염병 대응 업무를 담당하는 '방역부'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대표발의 했다.
미래통합당은 21대 국회 문이 열리자마자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법안을 당 차원에서 쏟아냈다. 지난 4일 국회에서 통합당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이선화 기자 |
국민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법안은 보수 정당인 통합당이 당 차원에서 주도해 눈길을 끌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사업자가 일시적 사업 중단 또는 자진 폐업 시 입은 경제적 손실 일부를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코로나19와 같은 1급 감염병의 팬데믹으로 정상적 교육활동이 어려운 경우 국가나 학교에서 대학(원)생에게 등록금 일부를 반환해 학비 부담을 경감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 △감염병을 원인으로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중단한 경우에 대비해 취약 계층에게 식품 구입을 지원하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일부개정안' △향후 감염병 등 재난으로부터 우리 사회 취약 계층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하게 하는 차원에서 쌀 무상 지원을 하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통합당은 △근로자가 양육하는 자녀가 감염병 확산에 따른 감염 우려로 등원 또는 등교가 중지된 경우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가족돌봄휴가를 허용하고 이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은 근로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부담 경감과 피해를 적극적으로 보완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안' △감염병 피해에 따른 특별재난 지역에 사업장을 둔 중소기업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소득세 또는 법인세 감면 비율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안' △천재지변, 감염병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과중한 손해배상책임(위약금 지급 등)을 부과하지 못 하도록 약관조항을 개선해 불공정한 계약을 예방하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
감염병 예방과 관련해선 이명수 의원이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 추가적인 감염병 발생 시 예상되는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감염병전문병원 주요 권역별 설립 등) 대표발의 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일부개정안',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전염병 예방과 영세 기업의 피해 지원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근거를 마련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안', 질병관리본부장의 요청을 받은 복지부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게 특정 국가에 대한 입국금지 요청을 하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안' 등을 대표발의 했다.
마스크 대란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도 제시됐다. 강기윤 통합당 의원(재선, 경남 창원성산)은 향후 국가적인 재난에 대비해 국가의 책무와 비상 구호품의 확보 및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4선, 경기 구리)은 거시적 관점에서 감염병 사태에 대비하는 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윤 의원이 발의한 '한국은행법 일부개정안'에는 금융안정 목적을 가진 한국은행이 재난 발생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통화위원회의 독립적인 결정을 따라 막심한 피해를 입은 영리기업의 회사채를 적극 매입할 수 있게 하는 등 긴급여신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국회 관계자는 비슷비슷한 법안이 제출되는 경향에 대해 "의원들은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이어서 지역구 공약과 연관됐을 경우나 시의성이 있는 경우 다른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도 유사한 법안을 따로 발의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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