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이슈] 김종인이 던진 '기본소득' 화두…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
입력: 2020.06.05 00:01 / 수정: 2020.06.05 00:01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날 오전 공식적으로 언급한 기본소득에 대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날 오전 공식적으로 언급한 기본소득에 대해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막대한 재정, 필연적 증세…넘어야 할 난관 산적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라고 언급하면서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에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 화두는 김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았던 2016년 6월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말한 것을 재차 거론한 것이다.

당시 김 위원장은 "최근 세계적으로 불평등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4년 전 이 발언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진보에서 보수로 정당을 옮겨 같은 주장을 펼치자 과거와는 다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위치 달라진 김종인, 같은 말도 다른 파장

이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서 꺼낼 법한 화두를 보수 진영에서 던졌고,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사태로 국민의 안정적 소득 보장이 어려워졌다. 또한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등의 발전으로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당장 이원욱 민주당 의원(3선, 경기 화성을)은 이날 SNS를 통해 "김 위원장의 기본소득 도입 공식화는 매우 환영할 일"이라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소득 하위계층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물질적 빈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호응했다.

또한 이 의원은 "진보적 정당인 민주당도 의제화하기 힘든 기본소득을 보수당인 통합당 대표가 의제화했으니, 기본소득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본격적 논쟁이 붙게 될 전망"이라며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나라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가져본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여·야·정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김 위원장도 이날 오후 국회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좋은 얘기다"라며 "언제가는 할지 모르는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고 사전에 (논의) 한다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통합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선화 기자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통합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선화 기자

핀란드·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도입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기본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 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는 수준의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핀란드에선 2017년부터 2년간 일자리가 없어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후 지난달 6일 핀란드 사회보건부와 사회보험관리공단 켈라는 기본소득 실험 보고서를 통해 "기본소득의 취업 장려 효과는 미비했고, 행복도는 높이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일부 국가에서 일부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막대한 필요 재정 등을 이유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아직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실화되는 것도 아직 먼 이야기다. 현 세입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책 중 하나로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은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을 지급하는데 14조2448억 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이를 매달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약 17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해 정부 세입(402조 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증세는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 거론하기 힘든 의제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도 "우리나라 현재 조세부담률이 19%쯤 되는데, 현 조세부담률도 일반 국민들은 높다고 생각한다"며 "여기에 세금을 더 부과했을 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함부로 증세는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논의 시작 단계…상당한 기간 두고 연구·토론 필요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선 막대한 재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선 증세가 불가피한데 기본조건인 증세를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와 관련 이 의원도 "법인세, 소득세 최고과표구간 신설 의견, 면세소득자와 면세사업자 구간 폐지,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사회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의제들"이라며 "기본소득을 둘러싼 사회갈등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이 가운데 기본소득 지급 대상을 한정한 '한국형 기본소득제' 시행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회 불평등이 존재할 때 정부의 가용 복지 자원이 어려운 계층에게 우선 배분되어야 한다는 롤스의 정의론 개념에 입각해 '한국형 기본소득(K-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 대표는 "국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인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전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이상의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복지 욕구별, 경제 상황별 맞춤형 복지제도로서의 한국형 기본소득제도를 고민하고 모색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기본소득 화두를 던진 김 위원장도 고용과 연계된 한국식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 일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파생됐다"면서도 청년, 연령별 등 구체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는 계층이 있느냐는 질문에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결국 김 위원장도 구체적 복안 없이, 화두만 던진 것으로 보인다. 재정, 증세 문제에 사회적 합의까지 난관이 산적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은 시기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해) 재원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달했는지, 최소한 다른 나라가 (앞서 시행) 했던 부분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며 "상당한 기간과 시간을 정해서 토론을 먼저 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본격적인 고민을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 현재로선 구체적 수준에서 논의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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