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G7 확대를 통한 중국 견제 구상이 시작부터 꼬이고 있다. 기존 회원국의 반대와 새롭게 추가하려는 일부 국가의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트럼프의 구상'이 현실화 될지 미지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등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지난해 8월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
트럼프의 '중국 견제' 독단적 결정에 기존 회원국도, 확대 대상국도 반발
[더팩트ㅣ외교부=박재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요 7개국(G7) 회의를 확대 개편한다는 구상에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기존 회원국에서 반발이 나왔고, 중국과의 이해관계로 인해 추가 확대 대상국인 러시아도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G7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등 7개국이 포함돼 있다. 그동안 G7의 폐쇄성 문제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서방세계에만 유리한 국제질서를 공고화하려는 의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대해 '구식 국가 그룹'이라며 확대 개편안을 꺼내 들었다. 그의 구상엔 한국, 호주, 러시아, 인도 등 신흥국이 포함됐다.
◆쉽지 않은 트럼프의 '중국 견제' 구상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G7의 개방성 확대'가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더 많은 동맹국과 파트너를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해석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의 갈등을 고려하지 않고 추진하는 바람에 기존 회원국도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G7 확대 재편이 무산되거나, 논란이 되고 있는 러시아를 빼고 브라질을 넣은 G11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리더십 약화와 국제질서의 변화로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정치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라면서 "냉전시대 당시에는 이데올로기라는 연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명확하게 나누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이유로 미국의 리더십이 쇠퇴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리더십이 이번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확인됐다"며 "다른 나라 모두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 /AP·뉴시스 |
미국은 올해 G7의 의장국이지만 이번 확대 개편안에 대해 다른 회원국들과의 공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선 이번 확대 개편으로 G7에서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서 존재감이 옅어질까 우려하고 있다는 요미우리 보도가 나왔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일본 측과 사전 조율 없이 내놓은 것"이라고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1일 G7 확대 개편에 한국·러시아·호주·인도 등이 포함됐는데, 이들과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각각 일본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지만, 일률적인 답변은 삼가겠다"고 말을 아꼈다
유럽연합(EU)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 방식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했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2일(현지시각) "G7 의장국의 특권은 게스트 초청장을 발행하는 것"이라면서도 "구성원을 바꾸고, 영구적으로 구성 방식을 바꾸는 것은 G7 의장국의 특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쥐스틴 트뤼도 총리는 1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를 침공을 언급하면서 "러시아는 이후에도 국제규범을 지속적으로 어기고 무시했기 때문에 G7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AP·뉴시스 |
◆캐나다·영국 "러시아 복귀 반대"
러시아의 참여를 놓고도 회원국에서 반대의견이 나왔다. 앞서 러시아는 'G8'에 속했지만,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이후 G8에서 제외된 바 있다. 이를 두고 회원국들은 국제규범을 어긴 러시아가 아무런 제약없이 복귀하는 데 불쾌감을 표현하고 있다.
캐나다 쥐스틴 트뤼도 총리는 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를 침공을 언급하면서 "러시아는 이후에도 국제규범을 지속적으로 어기고 무시했기 때문에 G7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슬랙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실 대변인도 이날 러시아의 참여 가능성에 대해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으로 G7에서 퇴출됐는데 재가입을 정당화할 태도 변화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영국인의 안전과 동맹의 집단안보를 위협하는 공격적인 불안정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재가입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국의 우방국 러시아는 G7 확대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중국의 참여가 없는 모임은 의미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 악수를 하는 모습. /신화통신·뉴시스 |
◆러시아 "중국 없인 안 돼", 중국 "왕따 행위"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 제안에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인도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현지언론의 분위기는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우방국 러시아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G7이 아주 낡은 모임이고 세계정세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으며, 그러한 입장에 동의한다"면서도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중국도 이에 화답하듯 G7 확대 구상에 반발하고 나섰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을 겨냥해 왕따를 시키는 것은 인심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이런 행위는 관련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 제안이 일회성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앞서 청와대는 이 구상에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옵서버'가 아닌 G11, G12 체제의 정식 멤버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 구상이 영구화가 아닌 일회성임을 시사하는 미 당국자의 전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G7 의장국으로서 미국은 추가 국가를 초대할 수 있다"며 "G7의 영구적인 확대는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