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임기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야동 인권 강화를 위한 다수의 관련 법들이 폐기될 상황에 처했다. 2019년 5월 5일 어린이대공원 일대에서 '서울동화축제'가 열린 가운데 어린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이동률 기자 |
20대 국회 '아동' 관련 계류법안 170여건…"사후약방문식 이제 그만"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0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둔 가운데, 자동 폐기될 '아동' 관련 법안이 170여 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 대처가 아닌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 당사자인 아동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일은 21대 국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아동'이라는 검색어로 확인되는 계류 법안만 176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양육비 지급'과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대해 시민사회나 당사자들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 20대 국회 '양육비 이행법' 등 계류 법안 170여 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법'은 2014년 제정됐지만, 아직까지 10명 중 7명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상대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추심 소송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이와 관련,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6일 전체회의를 열어 관련 법 개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양육비 채무자와 부정수급자에 대한 청구를 강화하고, 사법경찰관리에 채무자 주소 및 근무지 출동의무를 부여하는 등 이행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이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채무자에 대해선 운전면허 제한, 출국금지, 명단공개 도입 등 이행률을 높이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했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 관련 법도 현재 상임위에 계류된 상태다. 이는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에게 대신 받는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도 21대 총선 공약으로 이를 다시 내걸었다. 관련 개정안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커 21대 국회에서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피해 아동 보호 법안도 20대 국회에서 다수 발의됐다. 아동학대를 당해 비밀리에 전학한 피해아동의 인적정보가 가해자인 부모에게 전달돼 아동에게 2차 위협을 가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학교장 등에게 정보 비밀엄수 의무를 부과하는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국회 국민동의 시스템에는 본인을 '피해 아동이었다'고 밝힌 이가 친족 주소지 조회 등 권한 금지, 학대 감시 인력 및 예산 증강 등을 요구하는 청원글도 올라와 있다. 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피해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위해 필요한 상담·치료프로그램을 제공토록 하거나, 체류자격 없이 국내 체류하고 있는 2만 여명 아동에게 건강보험 등 공적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도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인 '아동인권법 제정'도 아직까지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놀 권리 보장'과 '영유아 대상 과도한 사교육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아동인권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놀이 범위와 적정 학습에 대한 정의 등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게 어려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여야는 8일 국민 개헌 발안제에 대한 표결 절차를 밟기 위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확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아동 관련 법 등을 포함해 20대 국회 남은 법안 처리를 위한 추가 본회의 개의 여부는 조만간 새로 선출되는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원내지도부 손에 달렸다.
◆ '어린이국회' 통해 목소리 담지만 반영 절차 없어
국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국회'는 2005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지만 실제 법안 반영 절차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8월 7일 열린 제15회 어린이국회에서 어린이국회의원 대표가 선서하는 모습. /국회 제공 |
아동 관련 법안은 입법 추진 속도가 더디다는 점 외에도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만18세 미만 아동·청소년들이 배제되기 쉽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회는 입법 과정에서 아동들의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도록 2005년 이후 매년 정례적으로 '어린이국회'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8월 21일 열릴 예정이다. 매년 국회의원 선거구별 각 1개 초등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대상학교별로 지도교사 1인과 6학년 학생 10인 내외로 구성되는 방식이다. 이들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문제점을 찾고 지도교사를 통해 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다.
제출한 법률안들을 보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색적인 내용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제15회 어린이국회에서 선정한 '도시와 시골 초등학교 교류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은 "많은 시골 지역 초등학생들은 도시에 비해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회 흐름의 주류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며 각 학교에 도시 시골 초등학교 교류 활성화 위원회를 설치해 문화적 교류, 농촌체험, 생태체험 등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부모교육 의무화 법률안'은 "부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아동 학대를 예방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결혼 임신 등 시기에 아동 양육과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보건소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은 당사자들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법안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 인권 보호를 위한 일요일 사교육 금지 법률안'은 "어른들도 일주일에 2일은 법정휴일을 누린다. 법적으로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어린이의 휴식권이 보장되도록 사교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제안 배경을 밝혔다. 일요일에 실시하는 어린이 대상 사설 학원 영업과 개인 교습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1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규정까지 담겨 있다. 지난해 9월 UN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UN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대한민국 보고서에서 아동의 쉴 권리와 놀 권리 보장을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지만 실제 입법 과정에서 반영될 가능성은 낮다. 국회 관계자는 "교육부에서 (어린이 국회 개최 당일) 같이 참석해 참고하는 정도다. 국회 차원에선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라며 "어린이들이 정치경험을 하게 하고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보니 (실제 반영은) 미약하다. (어린이국회에 참석한) 학교 선생님들이나 어린이 국회의원들에게 '향후 어떤 부분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라는 의견 정도만 받고 있다"고 했다. 이어 "(어린이국회에서 제안한 우수 법안들이 실제로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적극 추진에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21대 국회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아동인권법'이 제정될지 주목된다. 이는 영유아 사교육 금지와 아동의 놀 권리 보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2017년 5월 5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시스 |
◆ "사후약방문식 대처 그만 해야"
21대 국회에서 추진할 아동 정책 방향은 아동의 놀 권리 보장과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조성 등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동옹호대표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2만 명 아동의 목소리를 모아 △아동 놀 권리 보장 △안전한 통학로 구축 △아동폭력예방시스템 강화 △아동주거복지실현 △학생중심 학교 조성 등 5대 분야의 총선 정책공약 제안서를 각 정당에 제출했고, 최근 회신을 받았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놀 권리 보장'과 관련해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에 아동이 즐길 권리를 명시하고 정기적인 아동 놀이 실태조사와 놀이기본계획을 수립해 이행 할 것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재단에 따르면 민주당은 회신서를 통해 "21대 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답변을, 통합당은 "검토중", 정의당은 "개정 동의"라고 회신했다. 놀이공간 확대와 관련해선 민주당은 "도심 폐교를 활용한 지역 아동센터, 아동 놀이센터 건립 추진"이라고 답했다. 통합당은 "필요성에 공감하며 신중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또한 교통안전을 위한 제반 시설 전수 조사에 착수해 개선 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요청에는 민주당과 통합당이 공약에 모두 반영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어린이보호구역 지정 관리 대상에 '통학로'를 포함시켜 보도 없는 도로 1800여 개소에 순차적으로 보도와 보행로를 설치하고 안전표지·미끄럼방지포장·과속방지턱·옐로우 카펫 등 안전시설을 정비하겠다고 총선 공약에 담았다. 향후 3년 간 4650억 원을 투입해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카메라와 신호등을 설치하고, 통학버스 배치도 확대한다.
다만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어린이보호구역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요청에 대해 민주당은 "금연구역 일괄 지정은 적합하지 않고 학교 외 금연구역, 금연놀이터 등 금연구역 지속적 확대와 관리 강화 시행 중"이라고 답했다.
민법 915조를 개정해 징계권을 삭제해달라는 제안에 대해 민주당과 통합당은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공약에는) 미반영했지만 동의한다. 향후 정책 추진과제로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통합당은 "민법 개정은 신중 검토 중"이라고 회신했다. 정의당은 공약에 이를 담았다. '징계권'이 자녀와 친권자 관계를 수직적인 상명하복 관계로 왜곡하고, 아동에 대한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다. 여야 입장이 다른 만큼 향후 21대 국회에서 실제로 추진될지 주목된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약속한 공약들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의원실 질의 및 정책현황 분석 등을 통해 꾸준히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며 "아동들에게 한 약속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공약 이행의 첫 번째 순서로 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그 동안 아동 관련 강력범죄들이 터지고 나서야 법을 개정하는 일들을 지켜봐왔다. 피해아동들이 남긴 상처와 눈물을 발판 삼아 대안을 마련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5,6차 국가보고서 최종견해를 통해 밝혔던 권고사항들을 최우선적으로 살피고, 아동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법률들을 제·개정하는 데 매진해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