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오거돈 성추행 파문과 정치권 '추태'
입력: 2020.04.30 00:00 / 수정: 2020.04.30 00:00
20대 국회 임기 약 한 달을 남겨둔 여야 국회는 오거돈(사진) 전 부산시장 성추문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여당이 총선을 의식해 덮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20대 국회 임기 약 한 달을 남겨둔 여야 국회는 오거돈(사진) 전 부산시장 성추문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여당이 총선을 의식해 덮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알지 못했다고 부인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최악의 20대 국회, 마지막까지 정쟁만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만약 ㅇㅇ했다면 ㅇㅇ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만약'이라고 가정한 후 이런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요즘 '만약'이라는 그 전제가 있었다면 과연 결과가 달라졌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의 전제가 '부정(不正)'이었다면 결과는 뒤집혀야 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은 경우의 '만약'이라는 전제는 자기 위로를 위한 수단과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야 정치권도 요즘 '만약'을 전제로 입씨름 중이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때에 국회 본연의 역할보다는 이 '만약'이라는 가정을 놓고 정쟁 중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3일 여직원 성추행을 이유로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 시기를 문제 삼고 있다. 오 전 시장이 성추행을 저지른 날이 지난 7일인데, 총선이 끝난 후 사퇴한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성추행을 알았지만, 총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사퇴 시기를 총선 이후로 정했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28일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가운데)와 곽상도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단장(왼쪽) 등이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28일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가운데)와 곽상도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단장(왼쪽) 등이 국회에서 열린 당선자 총회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통합당은 오 전 시장이 피해 여성과 사퇴 각서 공증을 문 대통령이 만든 법무법인 부산이고, 현 대표인 정재성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며, 오거돈 캠프에서 인재영입위원장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임을 이유로 들었다. 이른바 오 전 시장과 문 대통령 주변인과의 특수관계다.

그렇다면 '만약'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총선 전에 공개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통합당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만약을 전제로 해도 영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과를 크게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통합당은 아마도 오 전 시장 사건이 총선 당시 불거졌다면 부산 등 일부지역에서 지금보다 몇 석은 더 가져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통합당의 이런 만약은 선거를 뒤집는 반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본다.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도 27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성추행 사건이 총선 전에 밝혀졌다 해도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부산 민심에는 큰 영향을 줬을 거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부산지역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통합당이 가져갔지만, 그래도 적은 표차로 낙선한 후보들 같은 경우에는 억울할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야는 서로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국회 본회의장에 텅빈 의원석. /더팩트 DB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야는 서로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새다. 국회 본회의장에 텅빈 의원석. /더팩트 DB

민주당은 통합당의 의혹 제기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발 빠르게 오 전 시장을 27일 제명 처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사건과 이후 불거진 성추문으로 '더불어미투당'이라는 오명을 쓴 민주당이다. 총선에 압승한 민주당은 오 전 시장 문제를 길게 끌고 갈 경우 당에 미칠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총선 당시 알았다면? 승리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민주당은 총선 중 이런 사실을 밝히고 제명 처리했을까. 고민에 또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통합당의 주장처럼 민주당이 오 전 시장의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선거 일정에 맞춰 사퇴시기를 조정했다면 논란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라면 민주당은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 사건에서 피해자인 여성 인권보다 총선 승리라는 목적을 우선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몰랐다'는 주장을 믿어야겠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에는 명확한 해명이 있었으면 한다.

정치권이 오 전 시장의 사퇴시기를 놓고 '알았을 것' '알지 못했다' 논쟁을 벌이는 지금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인 여성이다. 피해 여성의 인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데도 정쟁의 도구로 삼는 한심한 정치권이다. 약 한 달의 임기를 남겨둔 20대 국회의 추태를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만약 당파적 이익에만 집착하는 정당 해산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국회가 좀 달라질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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