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를 놓고 당정 엇박자가 나오는 가운데, 당내 일부 친문 핵심 지지층들은 당이 정부 발목잡기를 하면 안 된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에 여당은 정부 주장대로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며 '자발적 기부'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배정한 기자 |
민주당, 재난지원금 100% 지급 후 고소득자 자발적 '기부' 독려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전 국민 4인 가구 기준 100만 원 지급' 방침을 유지하되, 고소득자 등이 기부할 경우 연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으로 22일 최종 결정했다. 당 내부 핵심 지지층 사이에서 "대통령과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를 하지 말라"며 반발이 거세지자 고심 끝에 찾은 '묘안(?)'이다.
민주당의 이런 결정에 재정 여력을 이유로 '100% 지급'에 반대해온 정부 입장이 사실상 꺾였다는 평가다. 야당도 민주당의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안"이라고 반발, 2차 추경안의 이달 말 처리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긴급성과 보편성의 원칙 하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사회 지도층과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재정부담을 경감할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존대로 '4인 가구 기준 전 국민 100만 원 지급' 방침은 유지하되, 정부 우려를 감안해 재정 부담은 국민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줄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긴급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이들에겐 기부금을 세액공제 해주겠다는 법적 방안도 검토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가 대상 기부는 법정 기부금이기 때문에 소득세 개정안이 꼭 필요한지, 예규나 훈령으로도 조정 가능할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세액공제율은 약 15%다. 100만 원을 지급받는 4인 가구는 15만 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은 기부 독려를 위한 캠페인 추진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안은 전날(21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재원 마련이 어려우면 지급액을 조정해서라도 전 국민에게 먼저 지급하고 사후 환수하는 것이 답"이라고 주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나름대로 지혜를 모은 묘안이다. 신속성과 보편성 개념의 재정 목적을 달성하고, 재정 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는 균형잡힌, 합리적이고 좋은 방법"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우선 국민에게 100% 지급하는 것으로, 현재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7조6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안 증액이 불가피하고, 기부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존 여당 입장과 달라진 게 없으며, 정부가 요구해온 재정 부담 최소화를 위한 대안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2일 자발적 기부 제도가 마련되고, 여야가 합의한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국무총리가 3월 15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이덕인 기자 |
민주당이 이 같은 절충안을 내놓은 배경엔 당 안팎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이른바 '친문재인'으로 추정되는 열성 당원들이 당원 게시판을 통해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여당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22일 현재까지 올라온 게시글들을 살펴보면 "정부와 힘겨루기 그만하고 이해찬 사퇴하라" "민주당이 미래통합당보다 못하다. 정부에 반기 들지 말고 일 똑바로 하라" "민주당을 뽑은 이유는 문 대통령께 힘이 되어 드리라고 뽑은 것이지 이런 식으로 반대하라고 뽑은 적이 없다" 등으로 여당을 몰아붙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문 정부가 결정한 소득 하위 70% 재난 지원금 지금은 필요성, 효과성 등을 검토해 결정한 사안"이라며 "누가 총선 때 마음대로 100% 준다고 공약하라고 했나. 어려운 재난일수록 정부가 힘껏 일할 수 있게 여당은 도와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올랐다.
내부 분위기와 관련해,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70%지급이냐 100%지급이냐를 두고 국민 간에도 정당 간에도 갈등이 있고, 얼마 전에는 '문 정부가 70%를 제안했는데 민주당이 왜 발목잡기 하느냐'는 문자도 많이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친문 지지층의 반발 뒤에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처음 공론화했던 대권 잠룡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견제가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이 지사는 이날 MBC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100% 지급을 반대해온 기획재정부를 겨냥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다"며 "(기재부가) 국민들한테 현금 지원을 하면 국민들이 나쁜 습관이 들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청와대에 대해서도 "국가 모든 정책 결정권은 청와대가 갖고 있다"며 "(청와대가 나서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내홍을 수습하는 가운데 '긴급재난지원금' 관련해 당정협의안을 만들고, 국채발행이 아닌 세출 조정 등을 통한 재원마련을 여야 합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웠다. 민주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전 국민 100% 지급'과 함께 자발적 기부를 대안으로 제시한 가운데 통합당이 이를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원내대표가 4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전화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당 내부 반발에 해명이라도 하듯 이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당초 긴급재난지원금 '70%지급'에서 '100% 지급'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통합당 때문이라고 떠넘겼다. 그는 이날 당 회의에서 "처음 모든 국민에게 50만 원씩 주자고 소리 높여 주장한 건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였다"며 "민주당은 이런 야당 요구를 전면 수용해 정부·청와대와 합의했던 70% 지급 약속까지 번복하고 전 국민 지급으로 방침을 바꿨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통합당에 당론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며 "70% 지급으로 바뀌었다면 민주당도 거기에 맞는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통합당 측은 재원 마련 방식으로 국채 발행은 불가능하며, 지급 액수와 범위도 당정이 먼저 협의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일각에선 '전 국민 100% 지급'을 주장했던 민주당이 당 안팎 여론이 불리해지자 통합당에 책임을 떠넘기고 출구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당의 대안에 대해 정부 반응도 깔끔하지 않다. 조 정책위의장은 이견을 보인 정부에 대해 "당의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고 당정 간 공감대 마련하는 데 있어서 정세균 총리가 역할을 해줬다"고 말했다. 발표 직후 정 국무총리도 "여·야가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방안에 합의한다면 수용하겠다는 뜻을 민주당 지도부에 오전에 전달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취재진이 '정 총리 입장문이 기획재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지'를 거듭 묻자 "그렇다. 총리가 부총리와 다 협의한 것"이라며 에둘러 말했다.
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2차 추경안은 긴급재난지원금이라 신속하게 지원할 수밖에 없는 성격이다. 국회에서 4월 중에라도 심의를 마쳐 최대한 조속히 확정해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며 "이 시기에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말을 아끼겠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여야가 '지원금 100% 지급'에 협의할 경우,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이미 제출한 2차 추경안에서 증액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부에 '증액동의권'을 받아야 한다.
궁지에 몰린 여당이 정부를 압박해 이 같은 대안을 제시하며 통합당에 공을 넘겼지만, 2차 추경안 국회 처리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재원 통합당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의 절충안에 대해 "구체성이 없고 기존에 주장하던 내용에서 총리가 발표한 것 이상도 이하도 없는 것 같다"며 "자발적 기부 캠페인을 하겠다는 건데 자발적 기부로 3조 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해 어떻게 갚겠다는 건가. 국채상환운동이라도 하겠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이어 "3차 추경을 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국채 발행을 할 거다. 그런데 이번에 국채발행하고 다음에 또 한다면 재정 여력이 없으니 재정당국에서 반대하는 것"이라며 "우리 당은 국채발행은 현 상태에서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