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을에서 배현진 후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익숙한 맛'이었다. 오랜 앵커생활로 인지도는 높았고, 2년 전 낙선 이후 꾸준히 지역구를 살핀 흔적이 묻어났다. /배현진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
4.15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 선거로 여당은 남은 임기의 안정적 운영과 차기 정권 재창출 기틀 마련을 위해, 야권은 정권 심판과 차기 정권 탈환을 목표로 한다. 후보들은 한 표를 위해 전통시장부터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한다. 후보들이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후보와 마주한 시민은 억지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렇게 밀물처럼 왔다 썰물처럼 빠지기 일쑤다. 선거운동의 기본 패턴이다. <더팩트>는 총선 정국에서 각 후보들이 거쳐 간 장소를 다시 찾는 [후보의 맛]을 통해 '플레이팅(첫인상)' '레시피(정책능력, 숙련도)', '리오더(추가주문, A/S)' 등 음식 맛으로 진짜 민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익숙함'으로 '국민 대변인' 등판…공약·전문성 요구 목소리도
[더팩트|송파구=문혜현 기자] "국민 아나운서한테 한 표 몰아드려야죠."
"MBC에 있었을 때 일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요."
"(길에서) 본 적은 있는데 공약 같은 건 못 봤어요."
'MBC 역대 최장수 여성 앵커'로 일한 배현진(37) 미래통합당 송파을 예비후보에 대한 시민들의 끝맛은 강했다. 얼굴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호불호 또한 명확하게 갈렸다. 배 후보가 남은 기간 동안 풀어나가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배 후보는 뉴스데스크의 '대표'로 얼굴을 알렸고, 2018년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손을 잡고 송파을 당협위원장으로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재보궐 선거 당시 '신인'이었던 배 후보는 3선 중진 의원이었던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겨뤄 낙선했지만, '첫 지역구'를 떠나지 않았다. 송파을 지역구민들은 배 후보의 꾸준한 지역구 활동을 눈여겨봤고, 그 시간의 농도를 높게 평가했다.
오는 4·15 총선에서 최 후보와 '리턴 매치'를 벌이는 배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오차범위 안에서 선두를 달려 화제가 됐다. 지난 13일과 14일 중앙일보가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송파을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4·15 총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물은 결과 배 후보라고 답한 비율이 40.3%로 집계됐다. 최 후보는 37.5%로 배 후보보다 약간 뒤쳐졌다. (오차범위는 ±4.4%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송파을은 17대 총선부터 보수 성향 정당이 지지를 받다가 20대 총선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당시 당선됐던 최명길 민주당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며 다시 치러진 2018년 재보궐 선거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남북관계 개선 등의 영향으로 보수 정당의 험지로 불렸었다. 당시 최 후보는 54.4%를 득표하며 배 후보(29.6%)를 거뜬히 눌렀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그때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2년이 지난 송파을 주민들은 배 후보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더팩트>는 지난 23일 송파을을 찾아 주민들의 솔직한 후기를 들어봤다.
◆ '아나운서 했던 사람' 배현진…"이제 익숙하다" 플레이팅 | ★★★★☆
배 후보는 송파을에서 더 이상 '신메뉴'는 아니었다. 주민들은 앵커 시절 배 후보를 기억하면서도 2년 전부터 꾸준히 지역 바닥을 훑은 점을 들어 "친숙하다"고 입을 모았다. 배 후보의 유세에 대해선 긍·부정의 목소리도 있었다.
잠실동 새마을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 A 씨는 배 후보에 대해 "우리는 이제 익숙하다. 9시 간판 아나운서였지 않느냐"라며 "부담없이 대답도 잘 해주고 하더라. 거리감 없이 잘 하는 것 같다"고 호감을 드러냈다. 그는 배 후보가 "(당선)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며 "꾸준히 잘 하더라. 부지런한 것 같다"고 호평했다. 다만 주변 분위기 등에 대해선 "(최 후보와) 막상막하"라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좀 더 봐야 한다"라고 신중함을 보이기도 했다.
25년간 시장에서 유제품 판매업에 종사한 70대 여성 B 씨는 2년 전 배 후보를 기억했다. 그는 "먼저 번에 나왔을 때도 봤다. 저번에 반응이 좋았었는데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또 나온다고 하더라"며 "살림은 여자가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제가 듣기로 이번엔 (분위기가) 조금 좋은 것 같다. (호감도가) 올라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전망했다.
송파 헬리오시티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C 씨는 "차를 타고 가다가 (배 후보가) 거리에서 인사하는 것을 봤다"며 "아직 정치적으로는 잘 알지 못하고, 그분이 뉴스하실 때 모습만 봤다. 저희 남편은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좋아했다"며 웃었다.
석촌호수에서 만난 60대 남성 D 씨도 "배 후보가 이번에 돼야 한다"며 "저번에 최 후보한테 안 되지 않았느냐. 송파 토박이로서 국민 아나운서한테 한표 몰아줘야한다"고 말했다.
배 후보의 선거 캠프 인근에 위치한 잠실동 새마을시장의 맛 평가는 다소 나뉘었지만 배 후보를 기억하는 이들은 "부지런한 것 같다"고 호평했다. /문혜현 기자 |
반면 배 후보 이력에 부정적인 기억을 꺼내든 이도 있었다. 헬리오시티에서 거주 중인 50대 여성 E 씨는 "배현진 씨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한다. MBC에 있었을 때 (배 후보가 했던) 일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상을 찌뿌렸다.
그러면서 "배 후보가 몇개월 전부터 여기 와서 인사를 많이 했다. 저는 보지 못했지만, 여기 입주민들이 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부정적인 글을 올린 것을 봤다"며 "건널목에서 아침에 출근할 때 인사를 하는데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여기는 후보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왜냐하면 최 후보가 봄에 학부모를 대상으로 주민들에게 뭔가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무언가 했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사람들이 '그 사람이 한 게 뭐가 있느냐', '본인이 잘 한 건가'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다"고 지적했다.
새마을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20대 남성 F 씨는 "저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지금 미래통합당이 되고도 좋은 생각은 안 든다"며 "일단은 전에 있으셨던 최 의원이 너무 잘해주셨다. (2년 동안) 바뀐 건 많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30년 간 장사를 해온 50대 여성 G 씨는 "저는 배 후보에게 굳이 정치를 왜 하시냐고 물어봤다"며 "그냥 편한 길 가시지, 그 어려운 세계에 왜 갔나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배 후보는) 저번에 한 번 보고 한 번도 안온 것 같았다"며 "최 후보는 거의 매일 오시다시피 한다. 그런데 배 후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G 씨는 "여기는 최 후보가 압도적이긴 하다"며 "정말 제일 싫은 게 선거철에 와서 바짝 악수만 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배 후보의 레시피는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공개될 전망이다. 송파을 주민들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미래통합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문혜현 기자 |
◆ '진영 대결' 색채 짙은 송파을…"공약은 잘 몰라요" 레시피 | ★☆☆☆☆
배 후보 측에 따르면 아직 공식 공약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송파을에선 미래통합당의 '레시피'에 대한 기대감과 현정권 심판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이력과는 별개로 강한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송파을에 거주하며 택시를 운행하는 70대 남성 H 씨는 '배 후보를 아느냐'는 물음에 "1번인가, 2번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엔 무조건 2번을 찍어야 한다. 1번 하면 망한다"며 "현 정부 들어서 북미 관계도 잘 챙기지 못하고 경제도 어려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 대학 후배라서 좋게 생각했는데, 밑에 사람을 잘못 쓴 것 같다. 쳐내야 할 사람을 둬서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마을시장 청과가게 주인 70대 남성은 배 후보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며 "나이 든 사람들은 다 좋아하고, 젊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안 찍을 수도 있다. (당선될) 가능성이 있긴 한데, 나이 많은 사람이 투표를 포기하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다"고 밝혔다.
헬리오시티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주변 중소상공인들은 아무래도 보수 쪽을 많이 지지하는 것 같다"며 "저도 마찬가지다.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E 씨는 자신이 '민주당만 빼고'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 대통령을 너무 지지하는 극성팬들, 그런 사람들이 사람을 아주 질리게 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민주당에서 잘못하고 있는 정책들이 나와도 그 사람들이 너무 밀어줘서 그걸 믿고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저는 원래는 진보였다가 조국 사태 이후로 바뀌었다. 갈아탔다"며 "그렇다고 저쪽(보수)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은 안 됐으면 좋겠다. 보수도 잘한 건 아니지만 잘못하면 선거에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보수도 잘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문정 2동에서 거주하는 40대 남성은 "배 후보를 본 적은 있는데 공약같은 건 보지 못했다"며 "(선거는) 마음 내키는대로 하려고 한다. 어떤 후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다 똑같은 이야기들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파을 지역구는 '부동산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개발 및 재건축 문제 등 풀리지 않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 또 2018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헬리오시티'도 이목을 끈다.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9510세대의 지지 성향이 뚜렷하지 않아 '헬리오 민심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배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부동산 분야에 더욱 힘을 실을 전망이다. 유 전 부총리는 송파을에서 18대,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 국토부 장관·경제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지역구 현안이었던 탄천 유수지 개발과 탄천 동측도로 지하화 및 지상공원화, 잠실새내역 리모델링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왔던 만큼 유권자들의 관심도 더해질 전망이다. 유 전 부총리는 지난 23일 배 후보 캠프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면서 "배 후보가 요청하는 지역의 굵직한 지역현안 사업과 경제 민생난 해결에 대한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총선 10대 핵심 공약에서 '자유시장 내집 마련'을 목표로 대출 기준 완화, '내 집 증세' 방지, 3기 신도시 건설정책 전면 재검토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 법인세 인하, 상속증여세제 개선 등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어 민심을 공략할 계획이다. 배 후보도 부동산 보유세, 재건축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공약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송파을엔 재건축을 둘러싼 주민들과 지자체의 갈등 등 현안이 산적했다. 교육, 주거, 코로나19 사태 등에 대한 복안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다수 이어졌다. 사진은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 /문혜현 기자 |
◆ "공약집 보고 판단하려고요"…집값·경제·교육 등 과제는 산적 리오더 | ★★★☆☆
송파을을 둘러싼 현안은 다양하다. 주공 5단지 재개발부터 오랜 시간 갈등을 겪고 있는 송파시립실버케어센터 건립 문제까지 송파을 주민들의 의견이 나뉘고 있는 가운데 배 후보를 향한 기대감도 포착됐다.
송파을에선 지난 시간 동안 오래된 현안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또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책, 집값 안정 문제 등 유권자들의 관심은 정치성향에만 있진 않았다.
C 씨는 "원래 성향은 보수 쪽이지만 이번엔 보수와 진보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공약같은 것들을 보고 판단하려 한다"며 "(헬리오시티에)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값 안정 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거보다 요즘 몇 달 동안 상황이 이렇지 않느냐"며 "아이들 학원도 오다가 못 오게 하고 계속 그렇다. 처음에 이곳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바로 여기랑 옆 아파트만 학원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기분이 나빴는데 저도 다른 엄마였으면 싫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정치보단 그쪽으로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시장 활성화'를 주문했다. 그는 "지금은 시장을 살려야 한다. 너무 안 되지 않느냐"며 "지금 이렇게 지붕을 해놨으니 조금 살 것 같긴하다. 하지만 아직 마무리가 안 됐다"고 했다.
주공5단지에 거주하는 70대 남성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치동과 이곳의 재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아 못하고 있다"며 "집값이 뛸까봐 못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주민들 반발이 심한가'라고 묻자 그는 "많죠. 생각을 해 보시라.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근다는 식'으로 한다. 여기 옆에 한 동은 기념품으로 놔두자고 한다. 그럼 이 한 동에 사는 150세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국회의원들을 싹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파을 주민들의 다양한 평가 속에 배 후보는 플레이팅 면에서 월등한 강점을 보였다.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고 펼쳐지는 '리턴 매치'에서 배 후보가 실속있는 레시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유권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moon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