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선거구 획정 1년 뭉갠 여야, '밥그릇' 앞에선 한목소리
입력: 2020.03.05 05:00 / 수정: 2020.03.05 05:00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4일 선거구획정위에 전날 제출한 획정안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정 제출시한이 1년을 넘긴 늑장 대응이면서 오히려 획정위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영 민주당·심재철 미래통합당·유성엽 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안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4일 선거구획정위에 전날 제출한 획정안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정 제출시한이 1년을 넘긴 늑장 대응이면서 오히려 획정위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인영 민주당·심재철 미래통합당·유성엽 민주통합의원모임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선거구획정안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뉴시스

목소리 높이고 어르며 '획정안 수정' 압박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4·15 총선을 40여일 남겨둔 여야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가 제출한 선거구 획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검토를 요청했다.

인구기준이 적절치 않고, 농어촌 등의 지역 대표성 배려가 없는 기계적·관료적인 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지난해 3월 15일)을 1년 넘게 미뤄오던 정치권이 선거가 닥치자 획정위를 닥달하고 급조하듯 획정기준을 마련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엉터리 선거구" "굉장히 무책임" 획정위 압박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획정위에 획정안이 공직선거법 제25조 1항과 2항을 어겼다며 재의 요구를 의결했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들이 획정안이 공직선거법상 정한 인구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점,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 반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법 규정을 위반했다며 재검토를 요청키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회의는 여야를 불문하고 의원들이 획정위의 제출 안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내며 성토장이 됐다.

선거법상 획정위는 통상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안위가 시·도별 국회의원 정수 등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총선 13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즉, 지난해 3월 15일이 획정안 제출 법정 시한이었다. 하지만 각 당이 조국 사태, 패스트트랙 사태 등으로 역대 최악의 협치를 보이면서 지난달에야 선거구 획정 논의를 본격화했다. 그러나 여야가 끝내 시도별 정수 등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획정위에 '선거구 최소 조정 원칙' 등을 전달하며 직접 선거구 획정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획정위가 지난 3일 안을 제출한 것이다.

물론 이날 여야 다수 의원들이 "국회에서 합의하지 못한 우리 책임도 있다"고 사과했지만, 이날 회의의 방점은 획정위 질타에 있었다.

선건구획정으로 지역구 합구가 예고된 현역 의원들은 획정안을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 /더팩트 DB
선건구획정으로 지역구 합구가 예고된 현역 의원들은 획정안을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 배지. /더팩트 DB

특히 지역구 합구가 예고된 현역 의원들이 반드시 획정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양수 미래통합당 의원(강원 속초시 고성군 양양군)은 김세환 획정위 위원장을 향해 "획정위 위원들이 철원에서 고성까지 차를 타고 가봤으면 한다. 총 4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지역구 관리를 하라고 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한 것"라고 비판했다. 1차 획정안에 따르면 강원도에선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6개 시군이 1개 선거구로 묶이게 됐다. 그는 또 "이런(획정위) 안은 기계적이고 산술적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강원도에선 보이콧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강원도를 찬밥도 아니고 언밥 취급한다는 말도 나온다"며 자신이 직접 마련한 획정안을 소개했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전남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의원은 "그동안 여야가 지속적으로 합의해왔던 조정대상 지역구 최소원칙을 송두리째 무시했다"라며 "획정위가 어떻게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농촌지역구 5개를 난도질하는, 비유하자면 초등학생 숟가락을 빼앗아 고등학생 밥 먹여주는 꼴"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 의원의 지적에 김 위원장이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수용할 수 없다. 농산어업 배려 규정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생활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결과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전남 재조정안을 검토하겠느냐"고 물었고, 김 위원장이 "그건 검토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자 재차 재검토 해달라고 요구했다.

양측 사이에 언성이 커지자 전혜숙 행안위 위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이론과 실제가 다른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반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홍익표 의원도 "선관위 위원들이 관료주의적 접근을 하고 사전적 판단을 하니 이렇게 엉터리 선거구가 나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에서 시도별 정수를 획정위 측에 전달하지 않았지만 '세종 한 곳을 분구하고 서울은 한 곳을 조정하겠다'는 기존에 밝힌 입장대로 획정안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추가 조정 지역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홍 의원은 또, 획정위가 향후 인구 추이를 고려해 강남구가 아닌 서울 노원갑 합구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선관위의 재량을 넘어서 판단한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같은 당 김병관 의원도 "그것(향후 인구 추이) 자체도 정무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경우에 따라 특정 정당과 특정 위원과의 결탁으로 왜곡돼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양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4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획정안에 대해 반발하며 강원 지역 선거구 재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획정위 제출안(왼쪽)과 이 의원이 제안한 재조정안(오른쪽) /국회=박숙현 기자
이양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4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근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획정안에 대해 반발하며 강원 지역 선거구 재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획정위 제출안(왼쪽)과 이 의원이 제안한 재조정안(오른쪽) /국회=박숙현 기자

◆획정위 6일 이후 처리 불가 입장..."이미 유권자 권리 침해"

행안위는 5일 본회의 전 오전 10시에 전체회의를 열어 획정위가 다시 제출한 안을 의결 방침이다. 실무적으로 재외국민 투표 및 국외 부재자 투표 등 재외선거인명부 작성이 오는 6일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일 본회의에서 획정안이 처리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획정위 김 위원장은 행안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원안 조정 가능성에 대해 "행안위가 요구한대로 선거법상 25조에 어떤 게 위반됐는지 알아야 변경할 건지 말건지 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고 말을 아끼며 자리를 떴다. 법상 행안위는 획정안에 명백한 위법 요소가 있을 경우에만 한 차례 획정안 재 제출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부랴부랴 선거구 획정 기준과 시도별 지역구 의원 정수에 합의했다. 서울 노원과 경기 안산 지역을 통합하지 않고, 경기 화성 분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또, 공룡 선거구를 탄생시킨 강원도 춘천과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대해서도 분구 대신 일부를 분할해 인접 선거구에 속하는 방식으로 예외를 두기로 했다. 해당 지역 의원들이 "생활문화권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지역구와 묶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아울러 인구편차 허용범위를 1차 획정안 때 적용했던 하한선 13만6565명, 상한선 27만3129명에서 하한선 13만 9000명 이상, 상한선 27만 8000명 이하로 정했다. 이에 따라 획정위는 새로 마련된 인구 기준을 바탕으로 획정안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당초 여야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6일까지 획정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늦어지는 획정안에 유권자의 알 권리와 후보자의 참정권은 침해되고 있다. 전혜숙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당초 여야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6일까지 획정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늦어지는 획정안에 유권자의 알 권리와 후보자의 참정권은 침해되고 있다. 전혜숙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획정위가 여야가 합의한 선거구 획정 기준 내용을 반영해 수정안을 가져온다고 해도 각 당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해야 하는 관문이 또 남아 있다.

이에 대해 획정위 관계자는 "6일 이후 처리는 선거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대한 내일 본회의 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통과하도록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도 비상이다. 1차 획정안에서 합구된 지역구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는 선관위 획정안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보고 현재 선거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걱정스럽긴 하지만 향후 어떻게 대응할지는 획정안이 마무리된 후 생각해볼 것"이라고 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국회의 늑장 선거구 획정으로 유권자와 후보자의 참정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은 이번에도 나왔다.

전남도당 한 관계자는 "지난번에도 선거를 몇 달 앞두고 거대 선거구가 탄생했었다. 그때도 황당했는데 이번에도 당장 경선이 60~70% 진행된 상태에서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지역 주민들도 선거구가 매번 바뀌니 황당해한다"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행안위 관계자도 "법에서 획정위를 무조건 언제까지 마련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미 마련됐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예를 들어 어느 동에 살고 있는데 내가 어느 지역구에 속할지를 알아야 한다. 선거 준비와 유권자의 알 권리, 후보자 유세의 참정권 문제는 (획정안이 마련되지 못한) 지금도 침해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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