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비례 전략공천' 깜깜이 불가능해졌다?
입력: 2020.02.15 12:00 / 수정: 2020.02.15 12:00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공직선거법에 따라 21대 총선부터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출할 때 당원이나 대의원 투표를 거치고, 구체적인 선출 방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알려 공정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지난해 6월 2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제1소위원회 회의 모습. /배정한 기자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공직선거법에 따라 21대 총선부터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출할 때 당원이나 대의원 투표를 거치고, 구체적인 선출 방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알려 공정했는지 입증해야 한다. 지난해 6월 2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제1소위원회 회의 모습. /배정한 기자

공천 책임은 정당 몫…'민주적 절차' 한계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1대 총선부터 비례대표 후보를 뽑을 때 당 지도부의 깜깜이 공천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의 영향이다. 각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 과정 절차가 국민에 공개된다는 점 자체가 갖는 의미가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6일 정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 등을 통해서만 비례대표 후보자와 순위를 결정하는 이른바 '전략공천'은 적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말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개정된 공직선거법 47조 2항에 따라서다. 해당 조항은 '민주적 심사 절차를 거쳐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에 따라 추천할 후보자를 결정한다'고 규정한다.

◆ 정개특위 "공천 책임은 결국 정당 몫…전략공천 배제 못해" 공감대

비례대표 공천이 민주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조항은 법 개정 전에도 있었다. 다만 '민주적 절차'는 말 뿐,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그동안 비례대표 공천이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정무적 판단'이라며 정청래, 이해찬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고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치하는 '셀프 공천'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2018년 말 선거제 개혁을 논의하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위원들과 전문가들은 비례대표 의석 수가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공천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하지만 동시에 당원과 국민이 과하게 참여하는 공천이 과연 민주적이고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2018년 11월 14일과 21일 정개특위에서 개최한 공청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김종민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는 "공천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설계를 하지 병행하지 않고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병립형이든 비례제 확대 자체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유섭 정개특위 한국당 간사도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하는 데 각 당의 지금까지의 행태가 당 대표 독선이라든지 일부 계파의 독선으로 공정하지 못하다는 걸 국민들도 분명히 알고 저희들도 많이 느끼고 있다"며 "국민들이 비례대표(선정을)를 '진짜 제대로 했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를 참석한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이 직접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서 순위 변동시키는 것까지 한다고 했을 때 수십 명의 비례대표 후보자들을 판단해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공정함은 신화다. (문제는) 불공정함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도로 설명될 수 있는가"라며 "학계냐 정치권 바깥에서 '이 방법이면 국민이 만족한다' 하는 공천 방식 제시는 불가능하고 각 당의 입장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박상훈 (사)정치발전소 학교장 역시 "책임정치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정당 지도부가 공천에 책임지게 해야지, 공천제도를 당 밖에 있는 제도로 한다는 건 민주주의 이론에 맞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효과도 많지 않다"고 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도 "공천의 민주화는 신화라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당원 구조가 정상적이지 않은데 이런 구조에 의지해 뽑는 게 맞느냐, 또는 일반 국민에게 물어 참여시키는 게 맞느냐(의 문제가 있다)"며 "경선을 통해서 뽑았을 때와 지도부가 책임지고 뽑았을 때를 따져보면 꼭 선거나 경선 통해서 뽑힌 사람이 낫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이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2019년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공직선거법 합의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47조 2항을 추가했다. 이후 관련 조항에 대한 정개특위 차원의 후속 논의는 없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패스트트랙 선거법 합의안을 마련하기 전 논의를 통해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공천의 투명성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당의 자율성도 보장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2018년 10월 30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왼쪽)과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인사하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패스트트랙 선거법 합의안을 마련하기 전 논의를 통해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공천의 투명성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되 당의 자율성도 보장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2018년 10월 30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왼쪽)과 박영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인사하는 모습. /국회=이새롬 기자

◆ "절차 공개와 입증이 핵심"

여야의 추가 논의가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비례대표 공천' 문제가 각 당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을 살펴보면 비례대표 공천은 '민주적 절차'에 따르되 추천절차의 규체적인 사항은 각 당의 당헌·당규로 정하도록 돼 있다. 당은 마련한 추천절차의 구체적인 사항을 선관위에 서면으로 제출하고 선관위는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린다. 이를 통해 국민이 각 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어떻게 정했는지, 후보자 공천방식이 옳았는지 평가토록 하는 돕기 위해서다. 당은 또 후보자 추천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과 증명 자료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정당의 자율성을 살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독일에선 이미 이처럼 시행하고 있다.

당이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은 다양하다. '민주적 절차'를 충족하기 위해 당원이나 대의원 투표, 일반 유권자 참여를 허용해 경선을 치르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례대표 1번과 3번에 영입인재를 넣고 당원 투표에 OX로 부칠지, 비례 순번 하나하나에 투표할지, 만장일치로 할지 등등을 당헌당규에 담아야 한다. 바꿔말하면 선거인단 투표 전에 추천·심사 기준만 잘 마련하면 이전처럼 당 지도부의 '정무적 판단'대로 전략적으로 특정인을 밀어주는 의미의 '전략공천'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오히려 바뀐 선거법은 '절차 공개'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선거법 전에도 이미 각 당에서 비례대표 관련 대의원 등이 참여하는 '민주적 절차'는 마련해뒀기 때문이다. 이전 선거에선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중앙당 공천위원회 심사-국민공천배심원단 후보자 적격여부 심사-최고위원회 의결, 더불어민주당은 중앙당 공천위 종합심사-중앙위원회 순위투표 등 나름의 절차가 있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관계자는 "개정 선거법에선 '비례대표 공천을 민주적 절차로 해야 한다'는 조항을 명확히 한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절차를 선관위와 국민에 미리 공개하고 선관위에 당이 정한 절차를 준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서류를 내도록 한 게 가장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는 이들은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촉구하는 동시에 공천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2018년 10월 2일 시민단체와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 /더팩트DB
선거제 개혁을 촉구하는 이들은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촉구하는 동시에 공천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2018년 10월 2일 시민단체와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 /더팩트DB

◆ 정치권, 뒤늦게 '비례 공천 절차' 고심

선거법 개정으로 지난해 떠들썩했던 정치권이지만, 정작 '비례 공천 절차' 관련 당헌당규 개정 작업은 이제야 착수했다.

민주당은 당헌 90조 3항 '당 대표가 비례대표 당선안정권의 20% 내에서 선거 전략상 특별히 고려가 필요한 후보자를 선정하고 그 외는 중앙위 순위투표로 확정한다'에 대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상태다. 선관위는 비율과 상관없이 대의원 투표 등 절차와 증명자료 공개가 없는 공천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므로 이 조항은 삭제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밝힌 '완전 개방형' 비례대표 후보 심사제도가 개정된 선거법 조항에 배치되지 않는지도 고려할 부분이다. 민주당은 당원과 국민으로 구성된 '국민공천심사단'이 온라인 투표로 비례대표 후보자를 결정토록 하고, 일반 국민 200~300명의 '숙의심사단'이 후보자 공개 면접을 실시하게 할 예정이다. 두 결과를 합산해 최종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확정한 두 당 중앙위원회를 통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다.

한국당도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 관련 내부절차에 대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전부터 당원 직선 비례대표 후보 선출 방식을 채택해온 정의당은 이번에 새로 마련한 '만 35세 이하 청년과 장애인 비례대표 명부 일부 할당 방침' 부분에 대한 유권해석을 구했다.

관련법이 '비례 선출 방식'과 관련해 명시하지 않고 있어 이처럼 당분간 당이 절차를 마련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행안위 관계자는 "당원이나 대의원 대회의 투표가 있어야 한다는 걸 정해놓은 것일 뿐 어떤 방법으로 할지에 대한 건 법에 없다"며 "비례대표 후보자 순위를 무조건 선거인단이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건지, 각 당 지도부가 순번을 정해놓고 이를 선거인단이 승인하는 구조로 해도 되는지 등 당이 유권해석을 요청하면 선관위가 판단을 내리는 방식일 될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의 판단에 따라 당헌당규를 고쳐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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