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이 민중당 당색(주황색)과 비슷한 '오렌지색'으로 당색을 결정하면서 한차례 논란이 됐다. 지난 9일 국민당 창당발기인 대회에서 안철수 창준위원장 발언 모습. /이새롬 기자 |
민중당 "안철수 면담 거절…'진보' 코스프레용 결정 아닌가 의심"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안철수 창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당이 당색을 '오렌지색'으로 결정하면서 때아닌 '색깔 다툼'이 벌어졌다. 주황색은 원내정당인 민중당이 사용하고 있던 색으로, 당 대변인은 "주황색 가로채기를 그만두길 바란다"고 항의했다.
지난 9일 국민당은 창당발기인 대회를 열고 당명을 '국민당'으로, 당색을 '오렌지색'으로 정했다. 현장에선 오렌지색 넥워머를 발기인 및 관계자들에게 나눠주고 착용하도록 했다. 이후 국민당은 당 현수막 등을 오렌지색으로 꾸몄다. 안 위원장도 오렌지색 니트를 즐겨 입었다.
그러자 민중당은 입장을 내놨다. 이은혜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원내정당인 민중당이 3년 째 사용해오고 있는 색임에도, 국민당은 단 한마디의 상의나 양해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선포했다"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소식을 듣고 민중당은 매우 당혹스러웠지만, 먼저 대화로 설득해보려 했다"며 "어제(11일) 우리당 이상규 상임대표는 안 위원장에 관련한 문제로 면담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위원장 측은 "민중당은 주황색이지만 우리는 오렌지색이다. 그런 일로 대표 간 면담은 불필요하다"고 거절했다.
이를 두고 이 대변인은 "우리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도 '오렌지는 주황색'이라고 되어있다"며 "이걸 다르다고 주장하시는 안 위원장께 초등학교 미술수업부터 다시 듣고 오라 해야 하나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민중당이 사용하던 색은 주황색으로 국민당이 선정한 색과 비슷하다. 지난 6일 민중당 김종민 동대문을 후보 등 출마 후보들과 정태흥 정책위의장 등이 노동관련 21대 총선 공약 발표 기자회견. /뉴시스 |
그러면서 "민중당은 지난 3년 간, 당원들의 피땀으로 바닥에서부터 당을 일궈왔다. 지역사회에서는 이제 '민중당은 주황색'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국민당의 주황색 가로채기는 영세상인이 닦아놓은 상권을 재벌대기업이 와서 침해하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소수정당이 가꿔온 이미지를 '안철수'라는 유명세를 이용해 앗아가 버리다니, 대기업 갑질과 무엇이 다른가. 그게 안 위원장이 떠들던 공정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황색은 민주노동당부터 민중당까지, 진보의 대표 상징색"이라며 "국민의당 시절에는 녹색당의 초록을, 이번에는 민중당의 주황을 가져가는 안 위원장을 보면 '진보' 코스프레용 결정이 아닌가 의심된다. 주황색 가로채기, 그만두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 안 위원장이 지난 2016년 창당했던 국민의당의 당색도 녹색으로 결정되면서 녹색당 당색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국민의당 박찬정 홍보위원장은 "새누리당의 빨강색에서 정의당의 노란색,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까지 스펙트럼을 살펴보면 중요하게 빈 지점은 녹색"이라며 "녹색은 희망, 젊음, 생명 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때도 '녹색당과 중복 논란'이 일자 박 위원장은 "같은 녹색임은 분명하지만 색상 중에선 정확하게 다르다"고 해명한 바 있다.
국민당은 "(국민당색이) 주홍에 가깝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국민당(가칭) 창당준비위원장이 12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당 창당준비위원회 제1차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국민당의 설명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당 홍보팀장은 이날 오전 열린 창준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오렌지색을 '새희망'을 뜻하는 거고, 정열이나 열정, 희망과 같은 단어들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누군가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색도 직접 소유권이 제한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색이 좀 밝다"며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색을 정하기 전에 민중당 색과 비슷하다는 점도 고려했느냐'는 물음에 "그 이야기는 들었다"면서도 "그런데 민중당은 주황에 가깝고 저희가 완전히 데이터를 정하진 않았지만 '주홍'에 가깝다. 저희가 더 비비드(vivid, 선명한)하다. 조금 더 명쾌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양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색은 톤에 따라서 다른 색이 나오지 않나"라며 "색의 배합에 따라 같은 주황색 톤이라고 같은 색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고나 색과 같은 외관보다는 안에 내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민중당이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당색이나 로고가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며 "(국민당이) 잘 몰랐을 수도 있다. 색은 사실 다 비슷하다. 색을 가지고 민중당이 너무 민감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국민당의 '애매한 상황'을 색깔 논쟁이 보여지는 상황"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통화에서 "지금은 당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정체성을 쉽게 대중에게 표현해야 한다"며 "사실 색이 몇 개 없다. 통합진보당 시절 보라색을 썼던 적이 있는데, 선명한 색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었다. 초록색도 지난 국민의당 때 썼고, 나름 궁여지책으로 오렌지색이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최 평론가는 "사실 오렌지색이 산뜻하고 괜찮은 색이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들도 '오렌지 군단'이라고 불리지 않나. 그래서 마케팅에서도 그 색을 고급스럽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 대표 신당은 워낙 후발주자로 총선에 끼어들어서 치임이 있다. 총선 공약도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굉장히 발언을 세게 했는데, 이미 야당에서 다 제기된 것"이라며 "너무 늦게 뛰어들어서 색도 애매, 총선 공약도 애매, 입지나 호감도, 선호도도 애매한 상황이 오렌지색 논쟁으로 보여지는 상황 아닌가. '안철수 국민당'의 표류하는 현 포지션을 나타낸다"고 했다. 다만 그는 "사실 더 중요한 건 아젠다다. 색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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