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9대 국회에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소속으로 '대한민국 최초 귀화인 국회의원' 타이틀을 얻었다. 8년 뒤에는 진보당으로 당적을 옮겨 또 한 번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정의당 당대표실에서 질문에 답하는 이자스민 위원장. /국회=남용희 기자

"다문화, 선택의 문제 아냐…이주민 문제 피할 수 없어"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다만 여러분과 그렇게 되는 과정이 달랐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여러분과 같습니다."

이자스민 정의당 이주민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 귀화인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보수 정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비례대표 의원 출신이 완전 반대인 정의당 입당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치권의 화제였다.

따가운 시선은 더 많아졌다. 그런데도 다시 전면에 나선 이 위원장이 정의당에서 그리려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더팩트>는 지난 15일 국회에서 이 위원장과 만나 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 위원장은 정의당 입당 후 각 지역 이주민들과 당의 지역 리더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새누리당에 있을 때와 지금 정의당에 있을 때의 다른 점을 "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남용희 기자

◆ "입당 후 달라진 점? 다시 욕먹기 시작했죠"

이 위원장은 '정의당에 입당한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 수 차례 질문을 받아온 듯했다.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그는 "19대 국회의원 끝나고 굉장히 조용하게 살았다. 뉴스 관련 앱도 다 지우고, TV도 거의 안 보고 방송뉴스도 안 봤다. 안타깝게도 다문화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가 제자리걸음이거나 어떤 부분은 한 발짝 뒤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다문화 정책과 관련해 공론화해야 한다고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9월 말인가 10월 즈음 심상정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 대표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주민 정책 활동을 위해 누가 적합한지 물었는데 대부분 저를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활동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처음에는 '생각해보겠다'고 한 후 세 번 정도 뵙고 결정하게 됐다"고 입당 과정을 설명했다.

새 보금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종횡무진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당의 의제가 너무 많아 이주민 관련해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주민 관련 활동 내용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없었다. 조직 자체도 없었다. 이 위원장은 당과 이주민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각 지역을 다니면서 이주민 리더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주민들은 '정의당이 뭐에요?'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알려지면서 이주민들이 페이스북 통해서도 들어온다. 정의당 행사 때 이주민들이 나타나는 것도 새로운 모습"이라며 "제게 시급한 일은 지역 위원장과 이주민들 그리고 당원들이 만나는 기회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심상정 대표의 사진·연설문집 '길' 북 콘서트에서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과 포즈를 취하는 이 위원장. /이새롬 기자

정의당 입당 후 달라진 점을 묻자 이 위원장은 "다시 욕먹기 시작했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당시 논란은 △위안부 기림비 설립 반대 의혹△아들의 담배 절도 의혹 △2013년 필리핀 태풍 피해 지원 결의안 논란 △본회의 중 음식물(초코바) 반입 위반과 스마트폰 게임 등 '국회법' 위반 등 사실과 다른 의혹만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

달라진 점은 또 있었다. 이 위원장은 "입당 후에 민주당에서도 이주민 정책 얘기가 나오고 신문에서도 다시 다문화 정책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거봐. 누군가 나오니 다시 (이주민 다문화가)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하더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극과 극'의 정당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만큼 새누리당과 정의당의 다른 점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위원장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당만이 가진 힘인 것 같다. 청년들이 많고 장애인, 성소수자분들, 여성운동 하는 분 등을 뵙게 된다. 거대 당에 있다 보면 국회의원도 많다 보니 각자의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라며 "(정의당에 입당한 뒤에는) 전국위원회도 한 번 참석했는데 정말 오랫동안 한 의제를 갖고 토론하면서 충분히 목소리를 들어서 결정하는 걸 많이 봤다. 그게 새누리당에 있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 것 같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다문화 사회'는 선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다문화와 이주민에 대한 문제는 시장이 아닌 인권 개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용희 기자

◆"다문화 사회로 갈 것이냐의 문제 이미 떠났다"

이 위원장은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 후 8년이 지난 현재 우리 사회의 이주민과 다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을까. 그는 "많이 바뀌진 않은 것 같다"라고 했다.

그는 "2012년에 했던 정책들이 현재도 똑같다. 작년에 부산 아세안 정상회의 포럼에서 외국에서 살았던 이주민들과 얘기했는데 제가 십여 년 전에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던 걸 똑같이 말했다. 오히려 인식 자체가 훨씬 (부정적인 것 같다)"라며 "예전에는 이주민이나 다문화에 대해 좋고 나쁘다가 아니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였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반이민 정서가 강해지면서 전통적인 이민 국가에서도 반이민자 정책이나 제도를 펼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겪어보지 않아도 '미국이나 유럽도 안 하는데 조그만 나라가 왜 해' 이렇게 된다"라고 했다.

또 "예전에는 '저 사람들(이주민)을 도와야겠다'는 동정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고 틀어막지 않는 한 사회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재외동포가 750만 명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민들은 250만 명이다.

그는 "가끔 재외동포분들을 만나면 '한국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나라다. 나도 해외에서 살고 있어 어려운 거 아는데 한국은 훨씬 더 어렵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라며 "한때 한국이 어려웠던 시절 해외에 나가 일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듯 한국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오는 분들이 많다. 이런 점을 뒤돌아보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이어 "사실 이주민들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데려왔다. 제조업은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데려오고, 국제결혼도 지자체의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데려오니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갈 것인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예전에는 시장 개념으로 (이주민을) 바라봤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에 같이 숨 쉬고 어떻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인권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며 "다문화 사회를 할까 말까(의 문제)는 이미 떠났다. 이제는 다문화 사회로 갈 수밖에 없고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의 문제)"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소통과 설득으로 차근히 해나가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했다. /남용희 기자

이 위원장은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선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정책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 위원장은 19대 국회 임기 동안 이민과 다문화 정책 활동에 주력해왔다. 그가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불법체류자의 자녀인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안이다. 우리 정부가 비준한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서 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불법체류 아동에게 지원되는 교육비와 생활비를 왜 우리 세금으로 내야 하느냐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민·다문화 정책 컨트롤 타워 설치를 핵심으로 하는 '이민사회기본법'도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었다.

이 위원장은 정의당이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주아동권리법'과 '이민사회기본법'의 본회의 통과 가능성에 대해 "잘 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설득이 필요하다. 이민사회기본법을 만들 당시는 임기 막바지였다. 시간이 지나 설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계속 강연회를 잡고 두 법안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이민사회기본법과 관련해 "(이민 관련 법은) 정책들이 중구난방 매번 바뀐다. 심지어 비자 관련 서류들도 기준치가 매번 바뀌어 이주민들이 헷갈린다.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이주민 정책은 10년, 20년 길게 내다보고 대한민국의 다문화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할지를 봐야 하는데 그런 기관이나 기구가 없다 보니 계속 반창고 정책이다. 문제가 생기니 붙이자 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비레대표를 위해 당적을 옮겼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에서 지역구 출마를 권유받았었다고 털어놨다. 지역구 출마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용희 기자

◆"지역구 출마 생각해본 적 있어…굉장히 어려운 일"

정치권은 이 위원장의 정의당 입당이 곧 비례대표 도전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이 위원장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당내 비례대표 경선이 만만치 않다며 주어진 활동을 우선으로 하겠다면서도 총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당이 비례대표를 경선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 (심 대표도) '보장할 건 없다'고 했다. (당에 들어온) 목적은 지역마다 이주민들을 끌어내고 연결해 정의당원과 만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다시 국회에 들어와 정의당이 그동안 놓친 우리나라 5%의 이주민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를 개방형 경선제도(당원 70%, 시민 30% 반영)로 뽑는다. 당원 모집은 지난해 10월 완료돼 뒤늦게 합류한 영입 인재들은 경선에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비례 때문에 당을 갈아탄 게 아니냐' 비판도 나온다.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라며 담담하게 인정했다.

지난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당시 이 위원장. /더팩트 DB

이 위원장은 "사실 새누리당에 있을 때 왜 지역에 안 나가냐는 말을 들었다. 지역구는 본인의 고향이나 학교 그런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제겐 그런 배경이 없었고, 또 우리나라에선 이주민 정책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라며 "이런 정책을 안 하고 바로 지역으로 나가게 되면, 지역 현안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저 말고 다문화 정책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19대 때 이주민 다문화 관련된 것은 어느 당 상관없이 '이자스민이 이 질문은 훨씬 잘 이해할 거야'라고 해서 다 우리 의원실로 보냈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지역으로 가게 되면 (이주민) 정책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9대 국회가 끝나고 가장 아쉬웠던 건 본인의 소극적인 자세였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한 탓에 늘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생각과 공부할 시간이 필요했다"라며 8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한번 비례대표에 도전해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쳐가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수준급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인으로 지낸 세월이 더 길지만, 여전히 외국인 생김새를 지닌 그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이 위원장은 '나중에라도 지역구 출마를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네"라고 답했다. 그는 "지역구는 비례대표 이후 다음 단계잖아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주민들은 흩어져서 살고 있어 투표권을 갖는 사람들이 한 지역에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준비돼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며 "가능성을 버리고 있지는 않다"고 수줍게 웃었다.

☞ 이자스민 정의당 이주인권특별위원장은 누구? 필리핀 태생으로 1998년 귀화한 뒤 결혼이주여성 봉사단체인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을 맡아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을 했다.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외국인생활지원과 주무관으로 일하며 외국인공무원 1호가 됐고, 여러 방송과 영화에 출연해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20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고, 이어 한국당 탈당 후 지난해 11월 정의당에 입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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