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靑, 美 파병 요청에 "신중히"…복합적 요소 작용[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미국의 이란 군부 실세 피살과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양국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재보복을 한다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중동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를 두고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란 남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일 호르무즈 파병과 관련해 "상황이 엄중한 만큼 신중하게 대처하려고 한다"며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다.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중동 오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일본의 유조선 2척이 피격당한 일이 발생한 뒤로 미국은 이란을 배후로 지목하며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했는데,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기존 입장이 그대로인 것이다.
해리 해리슨 주한 대사가 7일 공개적으로 한국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한 나라의 대사가 한 말에 대해서 청와대가 일일이 다 답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와대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 우리 선박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국익의 관점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파병을 검토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방침을 고수해왔다. 우리나라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기 때문에 다각도로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말 한미 방위비 분담금 갈등으로 아덴만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해군의 청해부대를 호르무즈로 보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정부의 기조는 변함이 없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는 영향이 크다.

청와대가 가장 우려한다는 교민의 안전과 경제 영향이 고민되는 부분이다. 정부가 우리 군을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다면 이란과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 자국 군부 실세가 피살된 이후 미국에 대한 이란 국민의 분노가 더 커진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파병 요청을 수락한다면 불똥이 튈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이란 현지 교민은 물론 중동 지역 교민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란은 미국이 공격하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등을 공격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이 국내 해운사들의 주요 항로이자 전 세계 유조선의 길목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민간 선박과 원유 수송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있으며 자칫 전쟁에 휘말릴 위험도 있다.
이란이 러시아와 중국과 우호적 관계라는 점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잠재적 위험부담 요소로 꼽힌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든든한 '뒷배'라는 측면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란과 밀착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두 열강의 이해를 끌어낼지도 미지수다. 특히 최근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교착상태인 북미 대화에 중국의 역할이 기대되는 점도 의식되는 부분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23일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한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데 동력을 불어넣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또,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촉발된 한한령과 미세먼지 문제 등을 풀기 위한 한중 간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결정은 자칫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거듭된 파병 요청을 무시하기도 힘들어 청대의 상당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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