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범여권 연대가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공직선거법 수정안을 가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육탄저지까지 불사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국회=박숙현 기자 |
'놀먹 국회' 제대로 보여준 한 해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여야 정쟁이 극에 달했던 2019년이 저물어간다. 정쟁으로 시작해 정쟁으로 끝났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심한 갈등이 내내 이어졌던 한 해다. '놀먹 국회'(놀고먹는 국회)라는 신조어가 따라다닐 정도다. '정치'가 실종됐던 올해 정치권의 주요 장면들을 되돌아보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들어봤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이 제기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으로 올해를 시작한 정치권은 사안을 바꿔가며 일 년 내내 여야 정쟁이 지속됐다. 특히 올 2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선출된 이후 제1야당이 국회 안팎을 오가는 강력한 대여 투쟁을 지속하며, '극단의 정치'가 이어졌다.
◆정쟁으로 시작해 정쟁으로 끝난 한 해
지난 4월 말 국회에서 펼쳐진 선거·사법제도 개혁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은 '동물국회'라는 오명과 함께 정쟁의 끝을 보여줬다. 여야 국회의원 100여 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으로 고소·고발됐다.
우여곡절 끝에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은 30일 처리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또다시 동물국회 모습이 연출됐다.
패스트트랙 저지에 나선 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4월 26일 오후 국회 7층 의안과 입구를 막고 있는 모습. /배정한 기자 |
4월부터 내내 이어진 패스트트랙 정국 속 '조국 사태'는 정쟁에 기름을 부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한 8월부터 아직까지 조국 사태는 진행형이다. 조 전 수석 일가의 비리 의혹을 둘러싼 대대적 검찰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조 전 수석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없이 장관으로 임명됐고, 35일 만에 사퇴했지만, 그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조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 27일 기각됐지만, 내년 초까지 수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형 이슈들이 잇달아 터지며 국회는 본연의 업무를 다하지 못했다. 올해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은 △1·2월 '0건' △3·4월 '395건' △5·6월 '0건' △7·8월 '353건' △9·10월 '459건' △11·12월 '530건'(12월 29일 기준) 등 총 1737건에 그쳤다.
20대 국회 임기가 종막을 향해가는 가운데 총 2만3600건의 법안이 발의됐고, 처리된 것은 7375건, 미처리 법안은 1만6225건이다. 법안 처리율은 약 31%에 불과하다. '사상 최악의 입법부'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저무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며 "20대 국회 내내 정쟁으로 치달았고, 마지막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미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얻었고,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까지 무력화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며 "우리 정치가 가야 할 갈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는 올 하반기 정치·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의 감찰 무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6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는 모습. /임세준 기자 |
◆전문가들 "정치가 없었던 한 해" 한목소리 비판
전문가들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임론에 대해 일부 평가가 엇갈렸지만, 국회가 제 몫을 못 했다는 것에 대해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올해 정치는 극단의 정치, 진영 정치로 특징지어진다"며 "전체적으로 우리 국민을 대단히 실망시킨 한 해였다. 진영이 극단적으로 갈라져 정치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갔다"고 평가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정치가 없었던 한 해였다"며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여야 대립이 내내 지속됐고,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현 정권은 적폐청산을 하겠다고 했지만, 구적폐보다 더한 신적폐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라고 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난 2월 이후 한국당은 강력한 대여 투쟁을 전개했다. 황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
책임론에 대해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한국당의 책임에 무게를 뒀다. 하 공동대표는 "황 대표 체제가 들어선 후 한국당이 타협·협상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만 매달려 파행으로 일관된 한 해였다"며 "4월 국회 폭력 사태, 지금도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여당과 제1야당이 협상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데 혼란의 의회정치의 끝판왕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분열이 극으로 달한 한 해였다"라면서 "패스트트랙에 반대할 것 같은 의원을 내리고, 찬성할 것 같은 의원을 올려 밀어붙였는데, 이건 선거의 기본 취지에 완전히 어긋났다"라고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주도 국회운영을 질타했다.
신 교수는 이어 "선거는 찬성하기 위해, 찬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4+1이 선거법을 마음대로 한 것은 유권자의 3분의 1이 지지했던 한국당을 제친 것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도 "정치가 난장판이다. 처음부터 패스트트랙에 태운다고 33년 만에 국회 경호권을 발동하고 여야 의원 100명이 고발됐다"라며 "조국 사태 즈음엔 난장판이 심화됐고, 막판에는 (야당 쪽에서) '문희상 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회와 국회의장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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