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중국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외교 결례'가 과연 의도적이었는지 단순 실수인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두(중국)=뉴시스 |
"실수 " vs "의도"… 전진 외교관들의 엇갈린 분석
[더팩트ㅣ외교부=박재우 기자] 일본과 중국이 지난 23~24일 중국에서 열린 정상회담 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외교 결례를 범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한·일, 한·중관계가 민감한 상황에서 이같은 결례가 과연 '실수'인지 '의도'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선 주최 측인 일본은 문 대통령의 공개 모두발언 중 기자단 철수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의 발언이 중단됐다. 외교행사에서 상대국 정상의 발언을 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우리 정부가 일본에 항의하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또한 중국은 공식 채널을 통해 지난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문 대통령이 홍콩과 신장 문제를 중국 내정이라고 말했다"며 인권 문제에 있어 중국을 지지한 것처럼 입장을 왜곡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시진핑 주석의 언급을 잘 들었다는 취지로 발언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해 외교 결례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월 푸트라자야 총리실에서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와 환담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우리 측 외교 결례 사례 대부분은 '실수'
앞서 우리 정부도 정상회담 등 주요 행사에서 상대국에게 범하는 '외교 결례'가 있었지만, 외교 절차상의 '실수'라는 평이 많다. 다만 우리 내부를 질타하는 언론보도, 국회의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를 앞두고 우리 정부는 참석 국가인 캄보디아 국기 문양이 부산 아세안로와 아세안문화원 전시장, 초등학교 국정교과서에까지 잘못 표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또한 지난 3월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했다는 외교 결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슬라맛 소레'가, 말레이시아에서는 '슬라맛 쁘땅'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지만문 대통령은 '슬라맛 소레'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의 '실수'를 대부분 상대국은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마하트리 말레이시아 총리는 회담 당시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 했고, 말레이시아 장관들은 웃었다고 전해졌다.
현재 한중관계는 사드 배치 이후 회복돼 가고 있지만, 최근 우리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가능성으로 다소 껄끄러운 상황이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베이징=뉴시스 |
◆실수라기엔 민감한 상황의 한·일, 한·중관계
현재 국면의 한·일, 한·중관계에선 이같은 상황이 다소 민감할 수 있다. 지난 7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인 상황이다. 아울러 중국과의 관계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사드)' 배치 이후 회복돼 가고 있지만, 최근 우리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가능성으로 다소 껄끄러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우리와의 외교전에서 말을 끊는 경우가 이전에도 있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고노 다로 일본 전 외무상은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면서 남 대사의 말을 작심하고 끊고 발언하는 외교 결례를 보인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일본 측의 실수가 다소 의도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일방적인 발표에 대해서도 상대국 정상의 발언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해석대로 '내정' 발언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의 입장이 난감하게 된다. 미·중 사이에서 중국에 더 힘을 실어준 듯한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 내용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외교 결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4일 중국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두(중국)=뉴시스 |
◆전문가들의 분석 "실수" vs "있을 수 없는 일"
전문가들은 이번 외교 결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일본의 '외교 결례'에 대해 동북아과에서 오래 근무했던 외교관 출신인 A 전 영사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일본이 이번 한일정상회담의 주최 측으로 발언이 끝나면 정리하는게 일본의 역할"이라며 "일본이 실수라고 한 만큼 의도적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 '실수'인 것 같다"며 "그렇지만 우리 언론이 지금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불쾌하게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아세안 국가 주재 대사를 지낸 B 전 대사는 통화에서 "일본 관계자 누구도 이 상황을 저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는 '실수'가 아닌 것 같다"며 "모두발언에서 한쪽 발언만 듣고 언론을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그게 '실수'였다면 그 일본 담당 관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일방적인 대변인 성명에 대해선 두 사람 다 해석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A 전 영사는 "회담이 끝난 뒤 합의하지 않으면 발표 내용이 다르다"며 "조율이 안 됐을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B 전 대사는 "대통령이 '내정'이란 단어 썼겠는가"라며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대변인이 자해석대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