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악몽' 영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 기억날 정도로 국회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에 반발, 자유한국당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크리스마스 내내 진행한다. / 크리스마스의 악몽 스틸 컷 |
'행복·평화·사랑' 대신 '악몽' 선물한 20대 국회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모두 잘 들으세요. 크리스마스 마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곳은 너무나 기묘한 것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곳은 내가 지금껏 보아 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에요. 마치 가장 허황된 꿈처럼 묘사하기가 어려운 곳이죠. 하지만 이것만은 믿으셔야 합니다. 그곳은 내 해골이 실존하는 것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자, 이걸 보세요.'
1993년 제작된 영화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의 주인공 잭 스켈링턴이 핼러윈 마을 주민들에게 크리스마스 마을을 처음 보고 설명한 내용이다. 소름 끼치는 존재들이 모여 공포의 핼러윈 축제를 여는 이들에게 잭이 설명한 크리스마스 마을은 생경함 그 자체다. 사랑, 웃음, 행복, 평화는 낯선 감정이다.
잭은 크리스마스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산타클로스를 납치한다. 산타클로스 대신 아이들에게 기괴한 선물을 주고 마을은 난리가 난다. 심지어 경찰은 가짜 산타 주의보가 내려진다. 크리스마스가 악몽으로 바뀐 순간이다.
크리스마스 시즌 악몽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또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23일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 상정에 항의하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했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필리버스터를 옆에서 지켜봐야 할 이들에겐 악몽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국민 역시 마찬가지다.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항의를 받는 모습. /남윤호 기자 |
8박 9일, 192시간 25분, 12시간 31분. 2016년 2월 47년 만에 부활했던 필리버스터 기록이다. 20대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법 본회의 의결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를 했다. 3년 10개월 후 진행되는 필리버스터의 차이는 여야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선거제도 개혁의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고, 비례의석 한 석도 늘리지 못하겠다는 미흡한 안을 국민들께 내놓게 된 것에 대해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말이다. 지난 4월부터 약 8개월간 다툰 결과가 이런 상황이다. 여기에 또, 필리버스터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이 지경인 걸 보면 '놀먹(놀고먹는)국회'를 스스로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국민이 많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에 웃지 못하는 국민이 상당하다.
크리스마스가 우리 고유의 명절은 아니지만, 마음을 담은 카드와 작은 선물을 주고받으며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날로 본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보좌진, 국회 직원들 등등. 필리버스터가 가족의 시간을 빼앗았고, 국회를 지켜보는 국민에겐 '크리스마스의 악몽'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