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세금 도둑'은 의경이 아니라 국회
입력: 2019.12.19 05:00 / 수정: 2020.01.31 18:05
여야가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하는 가운데 보수정당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입구 곳곳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하는 보수정당 지지자들. / 배정한 기자
여야가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하는 가운데 보수정당 지지자들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입구 곳곳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 16일 국회 본관 진입을 시도하는 보수정당 지지자들. / 배정한 기자

최악의 20대 국회, 마지막까지 추태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17일 오후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두 개만 열렸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왜 왔는지와 신분을 밝혀야만 한다. 겨울 찬바람 맞으며 국회로 향하며 든 생각은 '어쩌다 이 지경일까'였다.

평소 같으면 버스에서 내려 늘 들어가던 입구로 가면 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벌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국당은 투쟁에 나섰고, 지지자들은 국회를 점령했다. 국회는 문을 틀어막았다. 폭력 사태 등 혹시나 벌어질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상황이 이런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걸었다. 인도 옆 차도에 경찰차가 늘어서 있다. 인도에는 의경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면서도 낯선 건 광화문광장이 아닌 국회의사당 사방이 이런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는 길이 불편해서인지 한국당과 일부 보수지지자들의 행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공교롭게도 집회에 참가한 보수지지자들과 함께 걷게 됐다. 용기가 부족해서 좌우 앞뒤로 함께 걷던 그들에게 '그만 좀 하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경찰은 일부 극성 보수지지자들의 국회 난입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 외부 사방으로 의경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17일 일부 보수지지자들은 의경들이 먹다 남긴 도시락을 보면서 세금 도둑이라며 거친 욕설을 쏟아냈다. /국회=이철영 기자
경찰은 일부 극성 보수지지자들의 국회 난입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 외부 사방으로 의경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17일 일부 보수지지자들은 의경들이 먹다 남긴 도시락을 보면서 '세금 도둑'이라며 거친 욕설을 쏟아냈다. /국회=이철영 기자

본의 아니게 그들과 동행하게 된 그 길의 어색함은 어느새 부아를 치밀게 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국회를 향한, 아니 여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거친 말들을 연신 쏟아냈다. 걸음이 빨라지고 동료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더 거칠었고, 그들이 쏟아내는 거친 언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 짜증이 밀려왔다.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길을 함께 걷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것이 불쾌했다.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이곳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엔 의경들에게 욕지거리가 쏟아졌다. '세금 도둑'이라는 말이 그들에게서 계속 나왔다. 또, 버리기 위해 모아둔 일회용 도시락에 남은 음식을 본 그들은 "내 세금으로 뭐 하는 짓들이냐?" "배때기에 기름이 차서 저 귀한 음식도 남겼다"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의경은 죄가 없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젊은이들이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수주의자라면 의경들을 향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됐다. 만약 그들이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도 손자뻘인 의경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정작 그들의 주장처럼 세금 도둑은 국회에 있는 그들이다. 진영 논리에 빠져 진짜 세금 도둑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의경들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비판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 국민의 비판은 놀고먹으며 죽어있는 식물국회를 향해야 한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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