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필리버스터'에 멈춘 국회 어디로 가나
입력: 2019.12.03 05:00 / 수정: 2019.12.03 05:00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경태 최고위원, 황교안 대표, 나 원내대표. /효자동=남윤호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경태 최고위원, 황교안 대표, 나 원내대표. /효자동=남윤호 기자

여야 '네 탓' 공방 속 예산안·패스트트랙·민생법안 올스톱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2020년도 예산안 처리, 각종 민생·경제·안전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인 20대 국회가 또 다시 멈췄다. 지난달 29일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열리기로 한 본회의 직전 자유한국당이 상정이 예고된 199개 안건 전부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한 게 계기가 됐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저지하기 위해 다른 정당들이 국회 본회의에 불참하면서 이날 본회의는 열리지도 못했고, 향후 일정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2일에도 각 정당은 좁혀지지 않는 이견만 확인했다. 예산안 처리는 법정시한(2일)을 5년 연속 어겼고, 시급한 민생법안들도 오는 10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오신환, '원포인트 국회' 제안도 무산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긴급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대결 정치 선언을 철회하고, 한국당은 민생법안들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을 철회하는 신사협정을 오늘 하루만이라도 맺자"라며 "오늘 안에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 유치원 3법, 데이터 3법 등 민생법안을 우선처리하자"고 중재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필리버스터 철회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개최한 문희상 국회의장·민주당 본회의 봉쇄 규탄 대회에서 "민주당에 원포인트 민생국회, 원포인트 민식이법 처리, 필리버스터 보장을 요구한다"라며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놓고 공개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 원내대표는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모든 국회 저항수단을 앞으로 써갈 것"이라며 "합법적인 국회 저항 수단까지도 봉쇄하는 독재 의회를 만들어가는 국회의장은 사과하는 것을 넘어 사퇴해야 한다. 민주당도 독재의 모습을 만든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라고 더 강한 국회 투쟁을 예고했다.

자유한국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개최한 긴급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자유한국당이 2일 오전 국회에서 개최한 긴급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허주열 기자

이에 이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에서 "오 원내대표의 제안대로 하기 위해선 이미 제출된 199개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을 한국당이 취소해야 한다"며 "이후 같은 법안에 대해 다시는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분명히 해야 한다"라고 한국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4+1 협의체(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통한 국회 운영을 고심 중이다. 정기국회 회기 내 본회의를 열어 처리할 법안들을 상정한 뒤 한국당 필리버스터로 시간을 보내다 정기국회 종료 후 1~2일짜리 임시국회를 계속 열어 일부 법안을 통과시키는 전략(살라미 전술)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버스터가 회기 종료로 끝나면 다음 회기 때는 해당 안건을 곧바로 표결에 부치도록 한 국회법에 기반한 전략이다.

한국당이 결사반대하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선거법 개정안 1건과 공수처 설치법 2건, 검·경수사권 조정안 2건, 유치원 3법 등 총 8건이다.

이와 관련해 이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국회에 한국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정치 세력이 연합해 국회를 민주적 운영하고 정상화할 방안도 얼마든 열려있다. 한국당이 빠지니 국회가 더 잘 돌아간다는 평가를 받는 기회를 우리가 만들 수도 있다"고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다만 이날 의총에서 한국당과의 협상의 문은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3일까지는 협상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살라미 전술이 통하기 위해선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 있다. 사전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4+1 공조를 통해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예산안·패스트트랙·민생법안 가결을 위한 의석수를 완벽하게 확보해야 한다.

또한 문 의장의 전면적 협조도 필요하다. 임시회 의사 일정은 국회법상 교섭단체 정당 간 협의 불발 시 의장이 결정할 수 있지만, 관례적으로 교섭단체 정당 간 합의로 정해왔다. 즉, 한국당을 배제한 임시회 개의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가운데 오른쪽) 대표와 이인영(가운데 왼쪽)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가운데 오른쪽) 대표와 이인영(가운데 왼쪽)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여야, 강 대 강 대치 지속에 정기국회 파행

결국 각 당이 제각각 주장만 내세우며, 2일 원포인트 국회는 무산됐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법안들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해 흥정거리로 전락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 처리에 반발하는 한국당이 민생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건 것을 계기로 본회의가 무산돼 민식이법 등 시급한 현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안타까운 사고로 아이들을 떠나보낸 것도 원통한데 '우리 아이들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지 말라'고 (부모들이) 절규까지 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며 "아이 부모들의 절절한 외침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국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것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헌법이 정한 2020년도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이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국회 스스로 헌법을 어기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여야 정쟁으로 2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것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더팩트 DB
문희상 국회의장은 여야 정쟁으로 2일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긴 것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더팩트 DB

전문가들은 향후 정국 운영에 대해 엇갈린 의견을 내놨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한국당이 선제적으로 199개 민생경제안전법안에 필리버스터를 건 것은 무리수였다고 본다"며 "국회를 봉쇄한 것은 민주당이라 얘기하고 있지만, 국회 본회의 무산에 대한 책임은 한국당 7, 민주당 3 정도로 한국당에 있다"고 말했다.

최 시사평론가는 이어 "지금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협치, 합의 의사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 마비된 국회에 대한 책임을 따질 때 악화된 여론이 한국당으로 쏠릴 것이다. 이 경우 연말 국회 마비 정국이 오래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오는 10일 정기국회가 끝나지만, 곧바로 임시국회가 열릴 것이고 결국 패스트트랙안 등은 통과될 것"이라며 "한국당은 당직자가 총사퇴하고, 장외 투쟁에 올인한 황교안 대표에게 충성서약까지 하는 모양새인데, 지금은 당직자가 사직하고 할 때가 아니다. 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무리수' vs '여당 탓'…엇갈린 전문가 평가

반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지금 상황에서 타개책은 여당이 세워야 한다"며 "처음부터 무리하게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워서 처리하려고 해 이 사달이 났다. 199건 필리버스터라는 배수의 진을 친 한국당은 더 물러날 곳이 없다"고 말했다.

황 정치평론가는 이어 "살라미 전술 얘기도 나오는데, 4+1 회동으로 합의해 법안 처리를 밀어붙인다고 해도 필리버스터를 건 법안을 먼저 해야 한다"며 "여당이 유효한 대안을내지 않으면 시간만 계속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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