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된 이후 남북 접촉, 북한 방문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요동친 남북관계 반영…'2018 급증→2019 감소'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된 이후 남북 접촉, 우리 국민의 북한 방문이 대폭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 2년 6개월 동안 북한을 방문한 국민은 모두 7867명으로 조사됐다. 특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막을 연 2018년에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박근혜 정부의 연간 방북 숫자보다 100배가 넘는 6689명이 방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더팩트>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석현(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통일부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달까지 방북한 우리 국민의 수는 7867명으로 나타났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2016년 2월 이전까지만 해도 매달 수천 명의 국민이 방북했지만, 폐쇄 이후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는 총 52명이 방북하는 데 그쳐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에도 단 한 명만 방북했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8년에는 총 6689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무려 2207명이 방북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월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다시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월 북미 제2차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월 평균 세 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방북 국민이 두 자리 숫자로 줄어들었다. 남북관계의 정세 변화에 따라 방북 국민 숫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남북 접촉과 교류는 남북관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남북 해빙무드를 보였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전 정부보다 방북 국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최대한 정국과 상관없이 접촉과 교류가 이뤄지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2년 만에 효과 상실
방북 국민의 숫자를 늘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국민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린 정책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45%) 이유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7%를 차지했다. 반면 부정평가(47%) 이유에도 '북한 관계 친중/친북 성향'이 9%를 기록했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북한과 관계 개선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비슷한 숫자를 보인다는 점은 그만큼 남북관계가 복잡한 문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다이내믹 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도보다리 산책' 장면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올해 들어 계속되는 북한의 발사체 발사 소식은 '북한은 바뀌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을 주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는 현재까지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남북관계는 최악이었다. 같은 해 9월 3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로켓(ICBM)장착용 수소탄 시험, 즉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에 따른 평창 동계올림픽 무산 위기에 문 대통령은 9월 21일 열린 UN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제안했다.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11월 29일 북한 ICBM(화성-15형) 발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제재 압박에 입장을 바꿔 2018년 1월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남북 대화 용의를 표명했다. 이후 북측 대표단의 평창 올림픽 참석(2.27), 판문점 1차 남북정상회담(4.27), 2차 판문점 통일각 남북정상회담(5.26),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6.12),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9.18~20) 등이 이뤄지며 급변했다.
순풍에 돛단 듯했던 남북관계는 올해 들어 급격히 경색됐다. 지난 2월 27~28일에 진행된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직원들을 철수(3.22)하며 엄포를 놓았고, 이후 올해 총 12차례나 발사체 발사를 감행했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깜짝 회동이 있었고, 지난달 5일에는 스톡홀름에서 북미실무협상이 성사됐지만, 유의미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 '훈풍'에 2018년 우리 국민 북한 방문 최대
우리 국민이 북한을 방문하기 위해선 통일부로부터 '북한방문증명서'를 발급받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판문점을 통해서 남북을 직접 왕래하는 것은 물론, 제3국을 경유해 남북한을 왕래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통일부 답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던 지난 2017년 북한을 방문한 우리 국민은 총 '52명'이다. 3월에 여자 축구대표팀의 평양 여자아시안컵 예선 및 월드컵 예선 참가차 51명, 11월에 1명으로 다른 기간에는 한 차례도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된 이후 우리 정부의 방북 승인은 6689건으로 2017년 대비 약 129배 증가했다.
대표적 방북 사례를 살펴보면 민간인 방북은 2018년 3월 31일 평양에 도착한 '봄이 온다’ 예술단과 태권도시범단이다. 방북단은 가수들, 태권도시범단, 취재진, 정부 지원인력 등 120명으로 구성됐다. 당시 유명가수 레드벨벳과 김 위원장의 기념 사진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8월에는 2207건의 방북이 승인됐다. 당시 우리 측 유소년 축구선수단 84명을 포함한 151명이 육로로 방북해 평양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했고, 8월 20~26일에는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졌다. 1, 2차로 나뉘어 우리 측 534명이 금강산을 방문해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났다. 현정은 현대 아산회장이 고(故) 정몽헌 전 회장 15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100여 명의 방북단을 꾸려 북한을 찾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18년에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6.15 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차원에서의 민간단체 방북이나 문화·체육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지난달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린 가운데 한국 손흥민(왼쪽)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하노이 협상 결렬 이후 방북 감소…'깜깜이' 축구경기 논란도
2019년에는 베트남 하노이 협상 결렬(2월)을 기점으로 전년에 비해 대폭 줄었다. 10월까지 방북 인사는 1177명을 기록했다. 2월 전까진 매월 세 자리 수의 방북이 이뤄졌지만, 3월부터는 계속 두 자리 수를 유지하고 있다. 소강 국면의 대표적인 방북 사례는 5월 3일 법륜 스님의 방북이다. 그는 북한의 식량부족 소식에 방북단을 꾸려 대북 옥수수 지원을 위해 중국을 경유해 북한에 들어갔다.
같은 달 평양에서 '2019 아시아주니어카뎃 탁구선수권대회 동아시아지역 예선전'이 열려 우리 주니어 대표팀도 참석했다. 당시 동행한 대한체육회와 정부 관계자들이 2020년 도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북측과 논의하고자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복귀했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나왔다. 통일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관계 소강국면에서 경기 참가 이외에 남북 간 다른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아시아 주니어 역도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선수단의 방북으로 숫자가 193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경기가 '무관중, 무중계, 무득점'의 '3무' 경기로 끝나면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더팩트>가 최근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석현 의원실로부터 통일부 관련 자료를 입수한 2017년 이후 방북 국민의 월별 숫자. 문재인 정부의 평화프로세스 이행 이후 남북 주민 접촉과 우리 국민의 북한 방문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석현 의원실 제공 |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하면서 정부 간 관계가 남북교류에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해서는 남북교류를 시스템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곽길섭 원코리아 센터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방북자 수는 당연히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는다"며 "북한에서 공식적으로도 김 위원장이 남쪽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곽 대표는 "우리가 보기엔 민간교류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쪽에선 정부기관과 당이 우리 민간과 접촉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며 "북한 당국의 지침에 따라서 교류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통화에서 현재의 소강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정 본부장은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정부가 무엇보다도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 국민의 신변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대북 개별 관광도 제한된 수준에서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연말까지 북미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북한이 내년에는 강경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북 관광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을 시험발사할 경우 중단하는 것을 전제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스톡홀름 북미실무협상 결렬 이후인 지난달 25일 우리 측에 금강산 관광 시설 철거 통지문을 보내왔다. 통일부는 '공동점검단'을 구성해 방북하겠다고 대북통지문을 발송했지만, 북한은 지난 11일 "남측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설 철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남북이 서로 합의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차분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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