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전 의원의 주미대사 임명으로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받아 11일부터 정식 국회의원이 된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더팩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치활동을 하며 추구해야 할 가치는 '다양성'이라고 강조했다. /국회=김세정 기자 |
"막내지만 경력은 16년 …세대교체 아닌 세대공존"
[더팩트ㅣ국회=박숙현·문혜현 기자] "살이 찌더라고요. 하하하~" 20대 국회 늦깎이·워킹맘·지방대학 출신·하버드 석사 등 수식어가 붙는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 입성 소회다.
정 의원은 지난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지난 14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시작했다. 이수혁 전 의원으로부터 의원직을 승계받은 정 의원은 1983년생이다. 최근 흥행 중인 영화 <82년 김지영>보다 한 살 어리다. 정 의원은 128석의 민주당에서 단 한 명뿐인 30대 국회의원이다. 14개월 딸아이를 둔 엄마이면서 지방의 신라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과정을 마친 젊은 정치인이다.
지난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645호실에서 <더팩트>와 만난 정 의원은 바쁜 일정 속 들뜬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바쁘긴 한데 2~3시간 잤던 국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느껴지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민주당 최연소 국회의원이지만 정치 경력은 16년으로 길다. 당내 연구원 인턴과 다수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며 인맥도 넓혀왔다. 그는 20살부터 당에서 활동하며 일찌감치 정치인을 꿈꿔왔다. 그는 "고등학교 때 적성검사에서 정치인이 99%가 나왔었다"라며 웃었다.
막 국회에 입성한 정 의원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다양성'이라고 했다. 그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받는다고 하자 어떤 기사에 '이 전 의원은 외교 전문가인데 특정 분야 전문가도 아닌 정은혜가 국회에 들어오는 것은 다양성이 커지는 것밖에 없다'고 하더라. 그 기자분은 비판하는 의도였을 텐데 저는 그 말을 오히려 되게 고맙게 생각한다. 다양성은 사회에서 개개인이 존중받고 소수가 배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다양성'은 제 정치 철학이자 미래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민주당의 가치"라고 했다.
'다양성'에 대한 신념은 미국 유학 시절 확고해졌다. 정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심사 때 '나는 한국에선 지방대 나오고, 할머니들 급식 봉사하고 미혼모들 병원 데려다주고 당에서 선거운동 하면서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일을 해온 아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일'을 미국에선 가치 있게 봤고 대학원 입학 때도 도움이 됐다"라며 웃었다. 현재도 그는 어렵다. 정 의원은 "후원계좌도 아직 안 열려있고, 세비도 아직 안 받아 당장 돈이 없다. 당장 종이컵 사는 것도 쉽지 않더라"며 "후원계좌가 열리면 당장 (의정활동을 더 잘 알릴 수 있도록) 카메라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더팩트>와 만난 정 의원은 약 1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질문에 속사포처럼 답변을 쏟아냈다. 늦은 만큼 해보고 싶고, 알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 보였다.
정 의원은 6개월 남은 의정활동 기간에 미혼모 보호법, 스토킹법, 공무원 시험 영어과목 폐지법 등 실생활과 밀접한 법안들을 묶어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세정 기자 |
늦깎이 정 의원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다. 짧은 의정활동 기간이지만, 다양성의 가치를 최대한 반영한 법안들을 입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 의원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것을 접근하고 싶다. 예를 들어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미혼모 보호나 스토킹법 등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슈는 아니다. 검찰개혁과 남북통일 등 큰 방향성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저의 의정활동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다양한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제 경험이나 생활 속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토대로 '정은혜 실생활 법'을 구상 중"이라며 발의 예정인 △미혼모 보호법 △스토킹 방지법 △부부 공동육아 지원 △층간소음 방지법 △공무원시험 영어 과목 폐지법 등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그는 우선 부부 공동육아 지원법에 대해 "제 아이가 돌이 지났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육아지원법은 잘못됐다. 제가 8월에 승계 결정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기쁘다'가 아니라 '아이 어디다 맡기지?'였다"라며 "국회 어린이집도 알아봤는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우는 게 가슴이 찢어지더라. 눈물이 나서 못 보냈다. 한 살짜리 아이를 왔다 갔다 두 시간 차를 태워야 한다. 제가 출근을 아침 6시, 퇴근을 밤 12시 정도 하는데 그 시간까지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토로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편이 3개월 육아 휴직해 아이를 보고 있다. 정 의원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필요한 정책은 다르다. 현재 정부에서 아이 한 명당 어린이집에 95만 원을 지원하는데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20만 원이다. 그걸 왜 어린이집에 줘서 부모와 아이를 떼어놓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제가 제출할 법은 어린이집에 주는 지원금을 가정에 주고, 동시에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특혜 의혹을 둘러싼 청년층의 분노 모습에 공감의 뜻을 밝히며 문제는 입시제도가 아닌 학벌중심사회이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고교무상교육 등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김세정 기자 |
듣다 보니 지극히 현실적이고 젊은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정은혜 실생활 법'이라는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니었다.
정 의원은 또 6년간 스토킹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 경찰서도 다니고 법원도 다녔는데 저를 스토킹했던 사람은 벌금 5만 원 내는 것뿐이더라. 스토킹을 당했던 시간 동안 제가 감정적으로 피폐해진 건 보상받을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개정법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공무원 시험 영어 과목도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세금 관련 공무원은 세법을 배워야 하는데 선택과목이다. 정작 합격해도 세법을 모르니 교육을 위해 2~3주간 자리를 비워야 한다. 그러면 다른 직원들이 그 사람 일까지 해야 한다. 너무 비효율적"이라며 황당해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한 생각도 궁금했다. 그는 민주당 내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청년 몫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았다. 민주당 내에서 조 전 장관과 관련 문제 제기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 의원의 생각이 궁금한 건 청년이면서 누구보다 힘들게 현재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기회의 공정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했다. 정 의원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등 학생 때 학원에 다니지 못했다. 또, 유학 준비를 위해 28살에 영어 학원을 처음 가봤다. 본인 주변에 유학을 다녀온 이가 없어 준비도 막막했다. 하버드 졸업생을 인터뷰한 기사들을 보고 기자를 통해 졸업생에게 이메일로 도움을 청하며 유학을 준비했을 정도였다. 사실상 흙수저라고 볼 수 있다.
정 의원은 "(최근 조국 장관 사태로)청년들이 실망한 부분은 있는 건 사실이고, (떨어진 지지율은) 우리 당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한다"라며 "제가 정책으로 대변할 수 있는 여성, 아기 엄마, 소외당하는 미혼모나 청년들, 취업준비생,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 위주로 정책이나 법안을 만들고 세미나도 많이 가질 생각이다. 무조건 많이 들을 생각이다. 현장에서 청년들의 얘기를 듣고 이를 지도부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나이, 성별, 전문 분야 등에서 국회가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며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당의 판단에 따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김세정 기자 |
특히 그는 조 전 장관 사태의 핵심은 '입시제도가 아니라 학벌 중심사회가 근본적인 문제'로 보았다. 그는 "대학교에 잘 간다는 건 10여 년간의 노력을 평가하는 건데 이 학교가 내 평생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상에서 제가 제출한 논문에 맞춤법이 틀렸다고 뭐라고 하는데, 어느 책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서울대 사람이 맞춤법을 틀리면 실수라고 하고, 지방대 나온 애가 맞춤법을 틀리면 공부를 못해서 틀렸다고 한다"고 했다.
학벌 중심사회가 공고해 지방대 출신들이 하버드에 갈 생각을 아예 안 했을 뿐, 소위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만 똑똑해서 하버드를 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학벌 중심사회를 깨트려야 함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라에서 반에서 한 명씩 어려운 아이들에게 분기마다 내야 하는 등록금 20만 원을 면제해줬다. 저는 3년 내내 등록금도 안 내고 급식비도 보조를 받고 다녔다"라며 "그렇게 한 반에 한 명씩 도와주는 정책은 전체 예산 규모에서 보면 작다. 그런데 그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저 같은 경우도 상업고등학교로 편입해 바로 은행에 취직할까도 생각했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저는 '고교무상교육'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강조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의정활동을 고려할 때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출마할까.
그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선거인단도 7월 1일로 모집이 끝났다. 그래서 제가 지금 어떤 지역을 택해 나가겠다 할 순 없다"면서도 "선거 즈음 당에서 청년이나 여성이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의 판단에 따라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불출마를 검토 중인 원혜영 의원의 지역구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 정 의원 출마설이 나온다. 그의 의정활동이 6개월 후 끝날지 아니면 21대에도 이어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정은혜 국회의원은 누구?
서울 출생인 정 의원은 신라대 국제관계학과, 연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10년간 준비해오던 유학길에 올라 하버드 케네디 스쿨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민주당과는 20살 대학생 열린우리당 인턴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민주정책연구원 미래기획실 인턴연구원 △민주통합당 19대 총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투표참여운동본부장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 캠프 부대변인·청년정책단장 △민주통합당 상근부대변인 △18대 대선 캠프 부대변인 △당 여성리더십센터 부소장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 부대변인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