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확대경] 文대통령, '공정 사회' 화두 던진 까닭
입력: 2019.10.23 00:05 / 수정: 2019.10.23 00:05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27차례 언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불거진 불공정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배정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27차례 언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불거진 불공정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배정한 기자

공정만 27번 언급…'조국 사태'로 촉발된 불공정 해소 측면

[더팩트ㅣ청와대=신진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무려 27차례 언급했다. 29번 나온 '경제' 다음으로 높은 빈도다. 그만큼 '공정'을 비중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입법부의 한복판에서 집권 4년 차 국정 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왜 공정 사회를 외쳤을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은 지명된 뒤 약 2개월 동안 정국의 '핵'이었다.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터지면서 적격성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우리 사회는 양분되며 큰 혼란을 겪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 분노가 컸다. 조 전 장관의 딸의 특혜 입학, 논문 의혹, 부정 채용 논란 등이 불거진 영향이다. 조 전 장관도 과거와 현재의 말이 다른 점도 논란을 키웠다. 일례로 지난 2007년 특목고를 비판했던 그의 자녀는 모두 외고를 나왔다. 이 점에 대해서 부와 지위가 대물림되는 현상으로 받아들인 젊은 층은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국민들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이라고 언급한 배경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학생부종합전형 전문 실태조사 엄정 추진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및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에서도 조 전 장관 임명으로 불거진 입시 논란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다.

채용과 관련해선 "앞으로 채용비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강도 높은 조사와 함께 엄정한 조치를 취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면서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탈세, 병역, 직장 내 차별 등 국민의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불공정을 과감하게 개선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22일 시정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는 발언은 사실상 국민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14일 사퇴한 뒤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는 조 전 장관. /이덕인 기자
문 대통령은 22일 시정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는 발언은 사실상 국민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14일 사퇴한 뒤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는 조 전 장관. /이덕인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부를 돌아선 민심을 보듬은 측면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사실상 조 전 장관을 임계점까지 끌어안아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중도층 이반이 상당했다. 이로 인해 취임 이후 지지율이 최저치를 찍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 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고,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다"고 말했다. 시정연설에서 직접적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사과는 없었지만, 이 말을 통해 사실상 국민에 고개를 숙인 셈이다.

현 정부에서 '공정'은 중요한 축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공언했다.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흔들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임기 반환점을 앞둔 문 대통령은 공정 사회를 비중 있게 다룰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공정 가치와 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 갈등을 봉합하려는 강한 의지도 엿보인다. "보수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생각이 실용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짐작된다. 지난 14일 조 전 장관이 전격 사퇴한 뒤 이제는 대결과 분열을 끝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로도 읽힌다.

특히 "저 자신부터,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스스로를 성찰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불과 보름 전 했던 말과 뉘앙스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은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라고 발언한 이후 보수 진영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낮춘 배경에는 갈등과 반목 양상에 대해 일종의 책임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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