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넘게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조국 사태'는 진보 정권이라 불리는 문재인 정권이 제대로 된 '진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더팩트>가 지난 8~9일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을 만나 진보와 문재인 정권의 행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갈월동=임세준 기자 |
"문재인 정권은 '수구적 진보'...오만·독선·무능 응징해야"
[더팩트ㅣ갈월동·방화동=박숙현 기자]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 정권'이라 칭해지는 현 정권은 제대로 된 '진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조국 사태'는 이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가와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표면적 이유는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 개혁가이자, 진보 인사였던 조 장관은 '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번갈아가며 진행되고 있는 보수·진보진영의 대규모 집회는 그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갈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팩트>는 지난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민주화 운동 원로 중 한 명인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국민의소리 공동대표)을 만나 '진보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서울 남영역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고, 이야기가 길어져 인터뷰는 다음날 추가로 진행됐다. 2차 인터뷰는 장 원장이 강연을 위해 제주도로 떠나기 전 김포공항에서 이뤄졌다.
장 원장은 진보에 대해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사회주의, 평등주의, 혁신주의를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준에 비춰봤을 때 문재인 정권의 개혁 세력과 지지자들이 믿고 있는 사회주의는 '수구적 진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 세력들은 '사회주의자'보다도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사회주의자'라고 직접 소개한 조 장관이 사모펀드에 투자하거나 자녀들의 표창장을 위조하는 건 다른 의미로 사회주의자스럽지 않다고 꼬집었다. 장 원장은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 운동 세력, 당시 진보 세력들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 기득권이 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 원장은 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은 극단적 지지층을 버리지 못해 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나 이는 문재인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에 대해 '국론 분열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데 대해서도 '유체이탈', '국민 무시', '황당무계'한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조 장관을 해임하는 게 차악의 선택"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정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장 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지난 8일 서울 남영역 인근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지난 4월 '국민의소리'라는 정치결사체를 구성했다. 정당은 아니지만 정치를 지향하는 단체를 결성해서 정치결사체 회원도 모집하고 한편으론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을 규탄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계속 집회를 하고 있다. 조국 사건 이후 '조국·문재인 퇴진 국민행동'이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나는 진보 인사이지만 문재인 정권의 오만과 독선, 무능, 횡포를 규탄하고 이를 응징하는 데는 '反문재인 정권 세력'이 결합될 필요가 있어서 보수단체와도 함께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오만과 독선'이라고 표현한 건 '조국 사태'를 두고 한 말인가.
조국 사태는 적극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조 장관을 임명한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나 이는 문재인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아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보통은 경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도덕은 더 중요하다. 이 사건은 도덕을 황폐화시킬 수 있고, 더 중요한 건 국민을 완전히 분열·대립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열린 집회에 대해 '국론 분열이 아니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했다'고 했다.
완전히 유체이탈, 헛소리하는 것이다. 전혀 본질과 상관없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이게 왜 '국론 분열'이 아닌가. 서울에 200만 명 넘는 사람이 '조국 파면'을 외치는데 그걸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고 말해서 (수습)될 수 없다. 서초동에서도 많이 모였는데, 각자 모인 사람들이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정책을 갖고 어느 게 옳으냐 다투는 정도가 아니다.
또 대통령이 자기를 향해 물러나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론 국민을 더 화나게 만들고 있다. 나와줘서 고맙다고 하니 앞으로 데모를 더 해야겠다. 자기한테 물러나라고 하는데 '감사하다'고 하면 되나. 황당무계한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조국 일가 수사에 대해 '검찰개혁 저항이다 vs 잘하고 있다' 평가가 엇갈린다.
검찰개혁은 해야 한다. 밤새워 조사하는 것도 옳지 못하고, 피의자도 체력의 한계가 있는데, 자기가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체력도 있을 때 해야지, 하루 15시간씩 넘게 조사하면 말이나 제대로 나오겠나. 피의사실 공표도 그동안 지나치게 되어온 점이 있다.
그러나 자기 실세가 수사받고 있지 않을 때 말해야 한다. 정부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서초동 대중들은 검찰을 대통령의 협박에 놀아나도록 요구하는 것이니 검찰개혁에서 거꾸로 가는 것이다. 조 장관을 제대로 수사하는 게 개혁된 검찰이다.
-검찰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제도적 측면에서 집권 세력은 검경수사권 분리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검찰개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볼 땐 그건 검찰개혁이 아니다. 현재의 경찰 실정에 수사권을 넘긴다고 하면 온갖 부탁이 다 들어간다. 굳이 검경수사권 분리를 한다고 하면 '수사 경찰'을 따로 둬야 한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경찰로 채용해서 수사만 전담케 하는 방식이다. 이런 주장을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못한다. 압도적인 수의 경찰들은 모두 검경수사권 분리를 바라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권력형 부정부패를 무마하는 기구가 될 것이다.
장 원장은 "특히 촛불집회에 100만 대중이 나와서 '조국 수호'를 외치는데 조국을 사퇴시키면 곤란하다. 그런데 사퇴를 안 시키면 더 망하게 돼 있다"라고 우려했다. |
-'조국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 같은가.
문재인 정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조국 같은 사람을 임명하면 안 되는데 임명해서 지금 엄청난 비난을 듣고 있다. 심지어 좌파 세력에서도 진중권 등 비난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이탈자는 계속 나올 것이다.
정권은 조국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유시민이나 공지영 등이 수호해 왔는데, 지금 사퇴시키면 멍청해진다. 특히 촛불집회에 100만 대중이 나와서 '조국 수호'를 외치는데 조국을 사퇴시키면 곤란하다. 그런데 사퇴를 안 시키면 더 망하게 돼 있다.
조국을 해임하지 않으면 광화문 집회는 더 커질 것이다. 광화문에서 계속 100만 명 이상이 열 번만 모이면 정권이 유지되기 어렵다. 거기다가 대통령과 이 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게 확인된 다음에 선거를 치르면 선거에서도 지게 돼 있다. 총선에서 지면 레임덕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국에 반대하는 국민 뜻을 받아들여 해임시키면 어떨까.
그게 이 정권의 딜레마다. 그래도 해임 시키는 게 낫다. 그러나 해임 시키면 좌파 진영 내에서 굉장한 분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전 노무현 정권 때도 노동운동단체들이 노무현 정권 지지를 철회한 일이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이 몰락한 건 '좌파진영의 민주노총이나 노동운동 세력이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봐서 '이번에는 그걸 안 해야겠다'고 판단해 지금 이렇게 나가는 것 같다. 그러나 뭐든지 다 정도가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한다.
-적극 지지층들은 조 장관에 대한 입장이 확고한 것 같다.
서초동에 가면 '조국 수호'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팻말도 많다. 조국이 저지른 부정은 자기도 저질렀고, 조국 정도는 깨끗한 축에 속한다는 것.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렇게 볼 만한 처신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겪지 않은 세대는 민주화 세력은 '정의롭고 도덕성이 투철하다'는 인식과 함께 '민주화 세력=진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좌파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는다.
이 사람들(민주화 세력)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부터 기득권층이 됐다. 권력을 얻고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도덕심이 둔해진 정도가 아니고 불감이다. 또 '문재인 정권도 꼭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유한국당이 집권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들 한다. 겉으론 '한국당은 더 나쁜 정치 세력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한국당이 집권하면 자기들 이익 차리기가 어려우니 반대하는 면도 있다.
저들은 진보가 아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100년 전에는 진보였지만, 지금은 틀린 주장이다. 실제로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프랑스에선 사회주의가 사회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사회주의는 곧 공산주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다. 또 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선 복지를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주장은 틀린 것이다. 복지는 오히려 사회주의를 방지하는 정책이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지난 8일 <더팩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이번 정권을 가리키며 한 '수구적 진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는 이미 진보의 이념이 될 수 없다. 러시아에 가서 '아직도 공산주의 한다'고 하면 지금 보수로 취급받는다.
-장 원장은 당을 여러 번 창당하며, 기존 정당의 한계를 지적해 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문명이 바뀌면 이념도 바뀌고 정책도 바뀌어야 하는데, 기존의 정당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이런 새로운 문명시대를 '정보문명시대'라고 이름 붙였다. 이에 따라 사회운영원리로서의 이념과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이에 맞는 새로운 진보 이념이 '민주시장주의'다.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 활동 속에서 자아실현을 해야 행복하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자아실현을 하면서 그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정치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민주시장주의를 주장하니 변절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저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했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를 나눌 수 없다. 옛날처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구분될 땐 진보·보수로 나뉘는데 지금은 한 사람 안에서도 어떤 정책은 보수적으로, 어떨 땐 진보적 정책을 취할 수도 있다. 보수주의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개량주의'를, 진보주의는 '사회주의', '평등주의', '혁신주의'를 합친 개념이다.
-조 장관에 반대하는 세력을 모은다면 '보수통합'이 떠오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진보 개혁 실현에 목말라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적인 세력을 만들어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며 통합한다는 게 참 어려운 과제다. 참신하고도 개혁적인 세력이 나와야 국민 지지를 받을 수가 있고, 그러면서 같이 하자고 해야 압력을 받아 여러 세력이 따라 올 것이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은 누구?
▲1945년 경남 김해 출생 ▲마산공업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민중당 정책위원장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개혁신당 부대표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전태일재단 이사장 ▲사단법인 백범정신실천겨레연합 상임공동대표 ▲한국사회민주당 대표 ▲녹색통일당 대표 ▲사단법인 신문명정책연구원 이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