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서초동 '촛불'이 '어둠'을 이기려면
입력: 2019.10.01 05:00 / 수정: 2020.01.31 18:02
서초동을 밝힌 촛불은 단지 수사를 받는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한 촛불이 돼야 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 /이효균 기자
서초동을 밝힌 촛불은 단지 수사를 받는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한 촛불이 돼야 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 /이효균 기자

2016년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이어지면서 많은 국민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직면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방향은 좀 다른 것 같다. 최근 조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입에선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의 이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일까.

사실 요즘 사태를 지켜보면 그동안 삶의 상식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상식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조 장관 문제의 본질은 여야의 이념, 진영 논리를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정의'와 '공정'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상식의 선에서 말이다. 따라서 조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도덕적 흠결쯤 이해하자는 주장은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조 장관에 대한 비판도 그동안 그가 정의와 공정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동떨어져 있다고 보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일부 젊은 층은 조 장관의 과거 발언과 행적은 위선 그 자체였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 장관이 과거 장관 후보자들이나 장관들에게 들이댔던 도덕적 잣대보다 자신에겐 너무 관대한 이른바 '내로남불'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만약 조 장관의 과거 기준이라면 그는 사퇴했거나, 문 대통령은 임명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 찬반으로 극명하게 나뉘었고, 분단했다고까지 표현되는 상황이다. 조 장관 사태로 약 50일간 이어진 분열을 보며 느낀 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을 이용'하는 정치권의 정략적 움직임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 여야 정치권이 말끝마다 언급하는 '국민'에는 지지층 결집과 함께 물러나는 순간 우리는 끝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의 그림자만 보일 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양분된 국론은 검찰 개혁과 맞물려 극도의 혼란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민변 출신 김남준 위원장(왼쪽)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조국 장관. / 과천=배정한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양분된 국론은 검찰 개혁과 맞물려 극도의 혼란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법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2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민변 출신 김남준 위원장(왼쪽)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조국 장관. / 과천=배정한 기자

조윤민 작가의 '두 얼굴의 조선사'라는 책이 지적했던 훈구파와 사림파의 프레임이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정치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책의 내용을 보면 영남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인 사경 김일손이 성종(1491년)에게 "김종직이 가난하다"라며 가마 메고 갈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일손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김종직은 밀양뿐만 아닌 선산과 금산 지역에도 많은 토지를 보유했고, 가내노비와 외거노비까지 두고 있었다.

김일손의 발언은 '많은 토지와 노비를 보유한' 훈구파와 그렇지 못한 사림의 구도를 만들었다. 지극히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즉, 축재의 훈구파는 비도덕적 인물이며, 청빈한 사림은 도덕적 인물이라는 선악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사림과 훈구파의 다툼은 선과 악의 대립이면서 청빈한 사림과 축재자 훈구파라는 프레임이다. 지금 조 장관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본다.

하지만 작가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사림의 말과 행동은 '위선'과 '이중성'이었다는 점이다. 조 장관의 말과 행동이 전혀 정의롭거나 공정하지 못했다는 젊은 층의 지적과 대동소이하지 않은가 싶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군주민수의 역사를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 /더팩트 DB
2016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군주민수의 역사를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 결정을 축하하는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 /더팩트 DB

조 장관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조차 '적'으로 간주해 공격의 대상이 되는 지금이 과연 상식에 맞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지지했던 검찰총장마저도 조 장관을 향한 강도 높은 수사에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현실은 또 무엇인지.

지난 2016년 가을과 겨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은 왜 켜졌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사인과 나라를 함께 운영했다는 '무능' 그리고 '경제공동체'로 사익 추구 등이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촛불을 밝히고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분노였고, 상식에 부합해 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파면됐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지극히 단순한 말은 촛불을 모았고, '군주민수(君舟民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의 역사를 만들었다. 약 3년이 지나 다시 서초동으로 촛불이 모이기 시작했다. 조 장관을 향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이 촛불엔 검찰 개혁도 있다. 수사를 받는 법무부 장관 가족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역사를 만들었던 촛불이라면 조 장관만이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다는 확증편향적 지지가 아닌 진정한 검찰 개혁을 위한 촛불일 때 다시 한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지 않을까.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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